[시론] ① 나무를 사랑한다면
[시론] ① 나무를 사랑한다면
  • 장준식 목사
  • 승인 2019.11.28 0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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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인도네시아 숲의 나무들이 불타고 있다. 지구의 허파들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가운 마음이지만, 발화의 원인이 자연에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니, 속상한 마음이 더하다. 고대인들에 비해 상상력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숲에서 불타고 있는 나무들은 그저 나무겠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나무는 그저 나무가 아니다. 고대인들은 나무에 대하여 어떠한 상상력을 가졌을까?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쿠피도(큐피드, 에로스)에게는 여러 종류의 화살이 있다. 쿠피도의 화살은 사랑에 목마르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랑을 지긋지긋하게 만들기도 한다. 쿠피도의 '사랑을 목마르게 하는' 화살에 맞은 아폴로는 쿠피도의 '사랑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만드는' 화살에 맞은 다프네를 사랑하게 된다.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쿠피도의 화살을 맞은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아폴로는 다프네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그녀를 좇지만 다프네는 아폴로의 사랑을 멀리하며 도망친다. 다프네를 향한 아폴로의 사랑은 뜨겁다. 다프네를 바라보는 아폴로의 시선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아폴로의 가슴은, 타작 마당에서 검불을 태우는 불길, 혹은 밤길 가던 나그네가 새벽이 되자 내버린 횃불이 잘 마른 울타리를 태우듯이 그렇게 타올랐다."

둘은 사랑의 경주를 시작한다. ‘사랑을 목마르게 하는’ 화살에 맞은 아폴로는 다프네를 따라잡겠다는 욕심에 가득 찼고, ‘사랑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만드는’ 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잡히면 끝장이라는 공포에 전심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둘의 어긋난 사랑은 아폴로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쿠피도의 날개가 함께 했던 아폴로의 추격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결국, 아폴로는 다프네를 따라잡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바로 그때, 다프네는 자신의 아버지 페네이오스에게 이렇게 기도한다. "아버지, 저를 도우소서. 강물에 정말 신력이 있으면 기적을 베푸시어 전신의 은혜를 내리소서. 저를 괴롭히는 이 아름다움을 거두어 주소서."

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다프네의 몸은 나무로 변하기 시작한다. 다프네가 나무로 변신했지만 그 아름다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폴로는 다프네를 여전히 사랑했다. 그는 나무로 변한 다프네에게 키스했다. 아폴로에게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 다프네였다. 나무에는 다프네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아름다움은 아폴로로 하여금 나무에게 키스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이런 상상력이 있다면, 우리는 함부로 나무에 불을 지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나무를 괴롭히는가. 나무에게서 무엇을 빼앗고 싶은 것일까. 나무의 아름다움인가? 그렇다면 나무는 도대체 무엇으로 변신해야 그를 괴롭히는 아름다움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나무가 다시 다프네로 변신한다면 그때서야 불 지르는 일을 멈출 것인가. 나무를 사랑한다면 나무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나무 안에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다프네’의 숨결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결코 나무를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러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아버지, 우리를 도우소서. 숲속에 정말 신력이 있다면 기적을 베푸시어 전심(轉心, 마음을 바꾸는 것)의 은혜를 내리소서. 우리를 괴롭히는 이 추악함을 거두어 주소서. 우리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추악함을 걷어내고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순결함을 주소서."

아마존과 인도네시아 숲의 나무들을 태우고 있는 불이 하루 빨리 소멸되기를 기도한다.

 

 

 

장준식 목사(북가주) 세화교회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장준식 목사(북가주) 세화교회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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