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④극단주의 극복과 하나님 나라 소명의식-下
[기획특집]④극단주의 극복과 하나님 나라 소명의식-下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9.11.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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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한국교계가 조국사태로 발발된 광화문의 ‘정권퇴진’ 운동과 서초동의 ‘검찰개혁’ 집회로 이어지면서 극렬히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매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각 집회에는 목회자 신분의 연사들이 발언을 이어가며 크리스천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광화문의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가 총괄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저녁 집회 후 밤 10시부터 철야기도회를 이어갔고, 전국에서 모인 수 천 명의 성도들이 밤을 새가며 기도회에 동참했다. 한국사회가 양극단으로 달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마땅한 책임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스펠투데이는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현 시류를 진단해 보고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교회의 정치참여, 선이냐 악이냐

2. 서구사회주의와 교회의 정치참여

3. 극단주의 극복과 하나님 나라 소명의식

‘극단주의 극복과 하나님 나라 소명의식’이라는 주제로 지난 8일 본보에서 좌담회를 열고 한국교회가 양극으로 갈라진 극단주의를 극복하고 어떻게 사회통합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는지 논의한 내용 중 마지막 시리즈다.

참석자: 이승열 목사(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

           박성철 목사(하나세교회, 교회와사회연구소 소장),

           박용권 목사(봉원교회, 장신대 겸임교수)

진행자 : 박진석 목사(가스펠투데이 상임이사)

왼쪽부터 이승열 목사, 박진석 상임이사, 박성철 목사, 박용권 목사 

기사연 조사 자료에 의하면 성도들은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독교를 표방하는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개신교인 79.5%가 반대하는 입장이다. 목회자 혹은 교회의 정치참여, 어떻게 해야 하나?

박성철 목사 : 교회 정치 참여, 엄격하게 목회자의 정치 참여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측면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첫 번째로 전통적인 정교분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과 두 번째는 독일식으로 말하는 교회정치화하고, 교회 정치 참여를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근대사회에서 일제, 개발독재라고 하는 두 가지 시간 속에서 한국교회 기독교 초기 역사를 보면 독립운동과 사회 변혁운동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3‧1운동의 실패로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분들이 만주로 떠나는 가운데 일제의 침략이나 학대가 계속되면서 신앙이 내재화되고 이원론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러한 의식이 개발독재로 이어지는 가운데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정교분리로 형성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보수 교회는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고 적극적으로 개발독재에 앞장섰다. 개발독재에 긍정적이거나 결탁을 할 때에는 국가를 위한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서 독재나 일제에 저항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반대했다. 이런 식의 정교 분리는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비논리적이면서 일관성이 없다. 교회가 교회의 이익을 위해 정치하는 것은 반대지만 정치적 디아코니아, 즉 사회적 약자를 섬기기 위한 정치는 해야 한다.

이승열 목사 : 예장총회 사회봉사부 총무로 있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문서가 ‘사회문제대책 지침서’였다. 2016년 총회 때 총회에서 채택했는데, 사회문제란 무엇이고, 총회가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느냐, 총회장 성명서, 총회장 담화문, 총회장 목회서신, 혹은 토론회 아니면 시국기도회, 그 다음에 시위, 가두행진 다양한 그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든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개교회의 목회자들이나 노회들이 입장정리하기 혼란할 때가 많다. 그래서 총회가 책임적으로 건강한 입장을 정리해서 개교회 목사들이 신뢰하고 받아들이면 성경공부나 다양한 토론회에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정치 참여문제가 복음을 전하는 문제와 더불어서 사회선교적인 개념으로 개교회가 확산시켜 받아들이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단을 막론하고 폭 넓게 수용돼야 하지 않을까.

박용권 목사 : 총회 차원에서 지침대로 정치 참여를 하는 것이 원칙일 것 같다. 선교사들이 처음 와서 교회에서는 정치 이야기 하지 마라, 목사도 정치참여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미국에서 세워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박해 받은, 특히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온 사람들이다. 종교개혁 이후로 자기 신앙을 마음대로 고백하지 못해서 죽은 사람이 영국에서 굉장하다. 국가하고 교회하고의 관계는 국가권력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한 국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태생적 한계다. 그래서 어쨌든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국가하고 깊이 연관돼 봐야 국가가 교회의 문제에 간섭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교회가 국가하고 거리를 두고자 한 것이다. 30년대 이후 신사참배 결의 그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교회가 국가의 모든 정책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조직이 전쟁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교회에서 헌금을 해서 전투기 사고, 교회 종을 다 떼어 바치는 게 한편으로 강요되었지만 자발적으로 한 게 많다. 교회와 국가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생긴 거다. 국가하고 긴장관계를 맺지 않으면 교회가 언제 국가에 이용당해서 국가의 목적으로 쓰여 질 위험이 있다는 거다. 1970년대 우리교단에서 ‘목사가 정계에 진출하면 모든 직분은 다 내려놔라, 그리고 다시 교회로 복귀할 때 결의를 통해 목사직을 복권할 수 있다’ 이런 결의를 했다. 이런 전통 때문에 이런 결의가 세워졌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나 교회가 정당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에는 맞지 않다. 교회를 순수하게 지킨다는 표현이 안 좋은 표현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교회가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는 일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총회장 성명서나 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한다든지, 정의 평화 창조질서에 대한 세 가지 큰 주제를 신학적으로 정리해서 발표하고 나갈 수 있도록 신학적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서구 사회주의와 한국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역사적 경험과 이해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승열 목사 : 공산당에 대한 역사를 말하면 1848년 3월 막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나오고 5월 달에는 프랑크푸르크에서 최초의 민주의회가 시작이 됐다. 공산당 선언의 원인과 배경 중 눈 여겨 봐야 될 부분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많은 무산자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많이 생겨나고 또 부르주아 계층이 생겨나면서 적은 투자와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 노동이라는 노동착취현상이 사회현상으로 생겨나고 이농현상과 도시현상이 유럽 전체에서 일어났다. 그로인해 생겨나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인 빈민들의 삶이 처참했다. 그것을 정부나 교회가 전체적으로 책임져주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나온 거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이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아 교회가 그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회선교 사회운동이 좌파운동이 아니라 말씀을 들어야 되는 사람들에게, 구석진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말씀 전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디아코니아 운동으로 발전한거다. 독일에는 기민당이나 기사당 기독교 정당이 두 개가 있지만 극우적인 정당이고 오히려 사민당 같은데서 사회주의 정책이나 정당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 전체는 기독교주의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인데 기본적인 정당정치 제도에 상당히 사회주의적이고 복지적인 배려가 깔려 있다. 주마다 집권여당이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회주택제도, 어린이 양육비도 제공한다. 약 63%까지 세금을 거둬간다고 한다. 사회주의 요소에는 빈곤층에 필요한 복지제도를 강화시켜 나가는 다양한 보험제도가 적용되어 있다. 서구의 사회주의는 본 받거나 배워야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한국은 사회주의를 배우지 못했고 경험을 못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인식됐다.

일본 명치유신 이후에 일본은 유럽으로 인재들을 보내 법 제도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래서 독일 헌법 체계하고 일본헌법체계하고 한국 헌법체계가 똑같다. 상징적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역사하고 동경의 역 역사하고 서울역 옛 역사하고 설계자가 한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사회 발전을 위해 일본과 독일의 것을 벤치마킹한 것들도 있다.

박용권 목사 :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100년 이상의 폐해가 누적이 됐다. 아동노동이나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났을 때 유럽 전체가 종교사회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같은 사회주의를 교회가 받아들여서 디아코니아사역이 시작됐다. 자본주의 폐해를 사회주의가 보완해주고, 국가운영원리에도 들어갔다. 그게 우리나라까지 전해져서 사회주의 요소가 많이 들어간 헌법이 지금 채택이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주의 경험은 소비에트 혁명 이후 그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던 때, 그 때에 3‧1운동이 일어난다. 3‧1운동 이후에 일본의 정책은 많이 완화된다. 강제로 억압했던 것들을 풀어주는데 그중 하나가 조선에서 고등학교를 나오면 일본의 대학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그러다보니 조선에서 특히 선교사들이 세운 중‧고등학교가 인정받는 운동이 일어난다. 총독부 인가를 받아야 일본의 대학을 갈 수 있고, 재산문제도 있었다. 그동안 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재산등록을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하다보니 횡령도 있었다. 유지재단 설립 문제에 있어서 총독부가 허가해주고 대학 갈 수 있게 하면서 총독부랑 친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교회는 국가하고 자꾸 가까워지고 반면에 사회주의 혁명 소식을 듣고 조선에서 공산당이 세워지면서 독립운동을 사회주의 세력이 이끌어간다. 주목할 만한 사건이 35년에 만주에 한경희 목사님이란 분이 순교를 한다. 그 당시 기사로는 ‘만주의 비적에게 목숨을 잃었다’라고 나온다. 나중에 순교사화 되면서 ‘공산당에 죽었다’ 이렇게 바뀐다. 사회주의와 공산당하고 연대가 되었다. 또 2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주의 사람들이 교회 비판을 많이 했다. 30년대 후반에는 사회주의는 교회를 해치는 세력이라는 생각들이 막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공산당에 의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목사들이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면서 공산당 세력하고 북한에서 엄청나게 싸우고 많은 사람이 죽고 남한으로 내려온다. 그게 반공세력의 기초가 된다. 특히 북한교회가 대거 남한으로 이주해서 우리 장로교회의 기둥이기도 하지만 장로교 안에 이북노회가 생긴다.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장로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독자세력을 구축한 것이다. 독자세력을 구축해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데 결국 이것이 한국교회의 반공주의를 형성하는데 근원이 됐다.

박성철 목사 : 우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자생적인 게 아니다. 서구에서 들어온 건데 문제는 서구에서 들어올 때는 다양한 형태의 왜곡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진짜 그것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사용하는 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지 의문이다.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문제가 있는 게 서구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출발점은 국가다. 근대 국가 시민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계약, 그게 홉스 로크 루소에 밀까지 이어진다.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에 기반으로 시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를 만들었다. 방법론적으로 사회계약이고 루소와 밀이 갈라지는 것은 더 나은 형태의 근대적 국가는 뭐냐, 직접 민주주의냐 간접 민주주의냐이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근대 정치철학적 의미의 자유주의는 아니다. 그분들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명예혁명 직전에 약간 왕은 존재하지만 권력을 나눠가지는 형태로 근대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분들의 의식 자체가 근대적이지 않고 근대적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의미는 아닌데 사용하니까 그 분들이 바라보는 사회주의도 재대로 안 보이는거다. 서구사회에서 공산당 선언 같은 경우에도 그 당시 공산당선언이 나올 때 공산당,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이상주의적 개념이었다. 초기 맑스주의의 특징이 뭐냐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한 게 대부분이었고, 초기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론은 초기 자본주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경재체제의 모순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학적 문제였다. 그러다가 이제 경제적 부분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부분과도 맞물려있으니까 후기 맑스주의로 갈수록 경제적인 문제에 이데올로기 문제, 정치적 문제, 사회적 문제가 합쳐져서 형성된다. 초기 맑스주의와 후기 맑스주이 모습이 굉장히 다르다. 정통주의 맑스주의라고 해서 스탈린이나 아니면 마오쩌둥에 의해 수용됐던 방식도 또 다르다. 크게 봐도 맑스주의는 세 가지 방식을 거치게 되는데, 한국에서 맑스주의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개념은 이후에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에 의해서 받아져서 발전된 정통맑스주의 개념이 강하다는 거다. 이런 맑스주의는 소위 말하는 철학적 측면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와는 굉장히 다른 측면이다. 이걸 먼저 구분해야 되는데 구분이 없다. 왜냐면 자꾸 자본주의를 신성화해서 그렇다. 막스 베버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문제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종교적 윤리를 필요하지 않는 자율적 기재에 움직여 간다. 하지만 노동윤리에서 만큼은 여전히 종교적 윤리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사이에서 착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막스베버가 칼뱅주의를 긍정적으로 봤지만 착취를 부정하지 않았다. 서구사회에서의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할 때 항상 착취의 문제가 들어가고 칼 맑스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초기 발전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 방법론이고 이것이 발전해 온 거고, 결국 후기자본주의가 등장한다. 맑스주의의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모양을 바꾸게 되고 후기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맑시즘 입장에서 후기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네오맑시즘이 등장하게 된다. 맑스주의든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굉장히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고 철학적으로 굉장히 차이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는 엄밀히 말하면 한국식으로 규격화 된 거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담론 자체가 싸웠던 대상이 일제,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볼 수 있는 독재,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담론은 투쟁을 위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철학적 담론은 서구자유주의 철학이 아니라 일제침략을 정당화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지배의 이데올로기로 사용 된거다. 문제는 정치철학적인 이념이 한 쪽은 지배의 이데올로기, 한쪽은 투쟁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니까 한국사회에서 사용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가 굉장히 투쟁 투사적인 측면을 가지게 된 거다.

과연 오늘날 21세기에도 이런 한국사회에 어두운 근대사의 어떤 철학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용어를 반복해야 되는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 먼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보다 원론적인 측면에서 철학적 담론이 필요하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조금 더 다층적 측면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맑스이론에서도 공산주의는 마지막에 거의 후기 맑스주의에서만 사회 실현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나오게 되는거지 초기에는 이상적 측면에서 있었다. 그것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쓰시는 분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야 되니까 이상화되었던 이데올로기를 기득권에 저항하려는 이데올로기로 고착화 시킨 것이다. 실제로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나 맑스주의를 연구하는 분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공산주의 개념에 동의하느냐, 개념이 완전 다르다. 다른 개념을 스스로가 만들어 놓고 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 헤게모니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나 투쟁 이데올로기나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다. 근본적으로는 철학적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극단주의 경향을 어떻게 사회통합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는지 찾아보고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박성철 목사 : 서구사회의 경험을 보면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 속에서 극우와 극좌의 문제는 영원히 풀 수는 없다. 내가 독일에 있을 당시 네오나치 정당인 AFD 정당 6.5%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에 보니까 9%에서 11%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 사회도 어쩔 수 없다. 네오나치가 강한 나라의 공통점은 나치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았던 나라일수록 네오나치가 강하다. 예를 들어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가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네오나치의 문제 자체가 서구사회에서 완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극우극좌세력은 프랑스도 마찬가지고 민주사회에서는 어쩔 수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양 극단 15%를 빼고 나머지 85%정도가 유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돌아가는 거다. 한국사회에서 태극기부대와 같은 극단적인 세력이 없어 질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긍정적인 한국사회 정치 모델은 80%로가 극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다양성을 두고 경쟁을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두고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든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회통합이다. 이것을 위해 한국교회는 섬김의 문제, 디아코니아적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 대상에 있어서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권익과 이익을 위해서 참여해야 한다. 물론 프랑스와 영국의 경험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감리교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존 웨슬리의 빈민구제에서 찾았다. 영국은 왕권자체가 강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오랫동안 절대왕정을 했기 때문에 다르긴 한데 존 웨슬리가 사회선교를 통해 약자와 빈민을 도와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많이 해소됐고 빈민을 도왔는데 정치적 갈등도 많이 해소됐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교회가 약자와 소수자를 돕는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면 당장은 느려보일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 사회 갈등을 없애는데 굉장히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그런 다양성과 경쟁 속에서 교회가 빈민을 돕고 약자를 돕는다면 교회가 충분히 남북의 문제도 껴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박용권 목사 :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다.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 사랑, 원수까지 사랑하고 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가지는 가난, 자본주의와 가난은 상극 같지만 한국교회가 오해하는 부분이다.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로 오해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는 물질주의고 맘몬주의 극도로 경계해야 될 이념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를 끌어들인다던지 신성시하는 교회로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발적인 가난을 실천할 때 통합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환경문제가 극심한데 가난이 아니면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자본주의만 붙들고 이걸 가지고 하려면 할 수 있는 집단은 교회 밖에 없다. 기업에게 자본주의를 포기하라고 할 수 없다. 교회만 자본주의 이념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교회 본질을 회복하는 모습이고 그리스도인의 길이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승열 목사 : 교회 본질에 충실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사명을 제 각기 전한다. 교회 본질적인 교회론을 잘 정리 해볼 필요가 있다. 목회자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사회통합적인 가치관을 가지는 그런 입장에서 교회의 토론문화를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가짜뉴스를 척결하는 운동과 더불어 사회전반이 진실 되고 평화롭게, 평화교육 자체가 교회학교 교육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토론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다. 한반도에 과제인 종전선언, 남북협력 이런 운동이 개교회에서도 공통적인 가치관으로 지속되면 좋겠다. 세계선교도 중요하지만 영적 구원에만 매몰되어 있는 이율배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시대에 맞는 한국교회 사명을 다시 한 번 인식하길 바란다.

정리=이경준 기자‧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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