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이냐, 중심이냐?
중간이냐, 중심이냐?
  • 손세용 목사
  • 승인 2019.11.30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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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좌로만도, 우로만도 아닌,
좌우를 함께 아우르며 중심을 세워나가기를 소망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4:27)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학훈은 ‘경건과 학문’이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단 신학교로서 영성과 지성을 겸전한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그런데 혹자는 비난하기를 “경건은 총신에 빼앗기고, 학문은 한신에 빼앗긴 채, 중간의 ‘과’자 하나만 움켜쥐고 있는 중간신학이다”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 대해 전 장신대 교수였던 김지철 교수는 “장신대는 중간 신학이 아닌, 중심신학이다”고 역설한다. 그렇다. 하늘의 계시에만 착념하는 듯한 총신대나, 역사 현실에만 몰입하는 듯한 한신대와 달리, 하늘의 계시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건’과, 이 땅의 역사의 현실을 탐구하는 ‘학문’을 균형 있게 추구하고자 하는 자세는 하늘의 말씀을 역사 속에 선포해야 할 목회자에게 균형 잡힌 중심신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은 언제나 중간의 회색분자로 매도되기 쉽다. 정치 세계를 보더라도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나 극렬한 진보주의자가 언제나 권력을 거머쥐었지, 전체를 감싸려는 중도파의 목소리는 좌우의 격한 고성에 묻혀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해왔다. 정치학자 신복룡 전 건국대 교수는 [해방 정국의 풍경]이란 저서에서 말한다. “해방 정국의 희생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념이 다른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된 것이 아니라 우익은 우익의 손에 죽었고 좌익은 좌익의 손에 죽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 안에서도 중도 온건노선을 배신이나 변절 또는 기회주의자로 보려는 극단적 도그마와 성숙되지 않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진우 장덕수 등 중도파의 비극적 운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세력은 우국적 고민보다 성급하고 충동적이었으며 광기와 무지에 사로잡혀 극단의 세력들은 백주 테러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김규식 등 중도 온건파는 설자리를 잃었고 그 뒤에 전쟁과 분단이 뒤따랐다. 이런 모습에 대하여 신 교수는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중도 온건파가 박해받는 사회의 말로는 비극적”이라고 개탄한다.

어느 목사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토론시험에 대한 글을 교계신문에 올렸었다. 학교에서 토론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 전에 토론할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대해 찬성 편과 반대편이 서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점수를 평가한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주제에 대해 찬성 편에서 토론을 할지 반대편에서 토론을 할지는 시험 전까지 정해지지 않고, 시험 당일 날 교수가 정해 주는 편의 입장에서 토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그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모두 완벽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모든 학생들은 각자가 나름으로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 토론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자기의 입장과 다른 입장도 열심히 준비하다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게 되어 자기와 다른 입장의 주장에도 상당한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의 분명한 입장과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기와 다른 입장과 주장도 존중해 줄 줄 아는 훌륭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연마하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하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수준은 OECD 27개국 중 2위로,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 다음으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연간 최고 246조원으로 추산했다. 삼성연은 사회갈등지수가 10% 낮아지면 1인당 국민총생산(GDP)가 1.8-5.4% 높아지고 OECD수준으로 개선되면 GDP가 7-21%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념대립으로 양분돼 있다 보니 사회가 이념적 논쟁거리가 아닌 것조차 이념적으로 몰고 간다”며 “과거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집권 이후 포용하는 모습이 보이지 못하면서 이념 대립이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성 괴테는 “태초에 갈등이 있었다”라고 말했다던가?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태초부터 갈등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갈등이 존재해왔기에, 갈등은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내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은 모두 ‘틀린’ 것으로만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장으로 인정하며, 그의 주장과 생각도 경청해보면, 그의 주장도 충분한 이유와 타당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어느 집사님이 목사 안수를 축하한다며 양복을 한 벌 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양복의 색깔이 회색이었는데, 이분이 양복 안에 이런 글을 써넣었다. “회색은 검지도 희지도 않아 색깔이 불분명하지만, 이 회색에는 흰색과 검은색 등 모든 색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목사님이 되시면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며 목회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때 교회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모두를 포용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목사님이 되시라고 회색으로 양복을 지어드립니다”라는 글이었다. 그 옷을 입으며, 속 깊으신 그 집사님의 마음이 내내 고마웠다.

시인 보들레르는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하늘은 피로해서 하늘이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는 낮도 밤도 있고, 아침도 저녁도 있다. 일년 중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있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 옳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필요하고 또 모두가 소중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도 이런 일, 저런 일 많은 일들이 다양하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했다. “사실 우리들의 선택은 대부분 옳고 그름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더 많은 경우에 그것은 보다 큰 악과 작은 악 사이에 선택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것은 선과 악이라기보다 적은 악을 선택해야 할 경우들이 인생에서는 훨씬 더 많다.” 우리 사회가 좌로만도, 우로만도 아닌, 좌우를 함께 아우르며 중심을 세워나가기를 소망한다.

 

손세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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