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목회 ➃ 춤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춤과 목회 ➃ 춤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 이정배 교수
  • 승인 2019.11.18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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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습적으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사고하였다. 특히 플라톤주의자들은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시켜 정신을 존중하였다. 육체는 단지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고는 육체를 무시하거나 존중하는 극단적 태도로 발전하였다. 가나안 신들을 숭배하는 이들은 육체를 중시하였다. 한편 신약의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를 무시하였다.

육체를 중시하는 이들은 쾌락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고, 무시하는 이들은 금욕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육체를 중시하는 이들은 춤이란 육체를 즐겁게 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반대로 금욕주의자들은 몸 움직임이 정신 활동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중세시대까지 이어졌던 몸 움직임은 가톨릭 예전에 드물게 남아있고 개신교 예전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몸을 가리키는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신과 상대적 개념으로서 육체(肉體)인 ‘사륵스(σάρξ)’와 정신을 포괄하는 몸 개념의 ‘소마(σŵμα)’가 있다. 우리말 성서 번역자는 일반적으로 사륵스를 ‘살’로 번역했고 소마는 ‘몸’으로 번역했다. 사륵스는 구원과 상관없는 살덩어리를 의미하고 소마는 숨이나 영(靈)과 관련지어 사용하였다.

어떤 이들이 다시 태어났을 때의 몸에 관해 바울에게 질문했다.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고 영(靈)만이 남는다면, 다시 태어났을 때 우리의 몸은 어떻게 돌아오는가(고전15:35) 하는 물음이다. 바울은 소마(σŵμα)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바울은 몸을 다시 ‘생명(숨)만 있는 몸(σῶμα ψυχικόν)’과 ‘영적인(신령한) 몸(σῶμα πνευματικόν)’(고전15:44)으로 세분한다.

그렇다면 신령한 몸을 갖게 되었을 때, 구원받은 거룩한 몸이 되었을 때의 징조는 무엇일까? 성서는 거룩한 몸의 특징을 ‘기쁨’이라고 정의한다.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시68: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6:23).”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뛰놀다’는 단어는 히브리어 헬라어 모두 기쁨이란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껑충껑충 공중으로 솟구치며 뛰어다니는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기쁨은 몸의 움직임과 긴밀하게 상관이 있다. 우리는 성서 속에서 많은 이들이 승리와 기쁨의 춤을 추는 장면을 기억한다.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면 저절로 춤추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춤은 우리만의 추는 것이 아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하나님도 구원을 베푸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즐겁게 춤추신다고 성서는 고백한다.

신학자이며 영성가인 ‘헨리 나우엔’은 다윗이 춤을 추면서 노래한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의 구절을 모티브로 《춤추시는 하나님(Turn My Mourning into Dancing : Moving through Hard Times with Hope)》이란 책을 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슬픔 속에서 함께 춤추기를 원하신다. 삶의 고통을 인정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고난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통과할 때, 비어 있는 자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을 고통의 자리에 모셔 들일 때, 다시 기쁨과 희망으로 춤출 수 있다. 이것은 쉽지 않다. 연습이 필요하다.”

시인 ‘시드니 카터(Sydney Carter)’는 <춤추는 하나님(Lord Of The Dance)>이란 시를 통해 노래한다. “세상이 창조된 그 아침, 난 춤을 추었다/ 해와 달과 별에서 춤을 추었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나 태어난 베들레헴에서도// 춤춰라,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추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 모두 이끌련다, 너 어디 있든지/”

지금 여기,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춤으로 초대하신다.

 

 

이정배 교수
이정배 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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