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 70~80년 전 악몽 현재진행형-②
위안부: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 70~80년 전 악몽 현재진행형-②
  • 김농률 지역기자
  • 승인 2019.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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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국가 문제 아닌, 아시아 전체의 문제
생생한 증언은 지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개인의 문제 너머 인류 보편의 가치 문제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 직후 필리핀 루손섬의 미군기지에 대한 공습을 시작해 1942년 1월 수도 마닐라를 점령하여 군정을 개시했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들은 일본군의 지배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에 일본군은 ‘소탕작전’을 펼쳤다. 그 와중에 많은 주민이 학살되고 여성들은 강간당했다. 납치, 감금되어 윤간을 당한 여성들도 있었다.

또한 일본군은 각 섬에 상륙함과 동시에 위안소를 개설하여 여성을 직접 연행하거나, 마을 유력자에게 모으도록 지시했다.

필리핀에서는 1992년, 한국의 김학순씨가 피해자임을 밝힌 것과 필리핀에서의 위안소 자료 발굴을 계기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 라디오로 피해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증언해주기를 호소하자, Maria Rosa L, Henson씨가 나섰다. 이후 피해여성들이 잇따르면서 400명에 이르렀다. 1993년에는 46명의 여성이 일본정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재기했다. 지금은 마닐라에 피해여성들이 모일 수 있는 ‘로라의 집’이 있다. 그곳에는 위안부박물관도 있다.

1930년 동티모르에서 태어나 1942년 13세의 나이에 위안부로 잡혀가 2년간 악몽을 겪어야 했던 Ines de Jesus씨는 당시를 이렇게 증언한다. “일본군이 많이 왔을 때 마을 촌장이 와서 나를 보냈어요. 끌려간 곳에 두 개의 집이 있었는데 나를 닭, 돼지우리 옆 방에 가두었어요. 낮에는 나무를 자르고 길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밤에는 많은 일본군이 왔어요. 적어도 4명, 많을 때는 8명 정도예요. 아래가 아파서 걸을 수 없을 만큼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일본 이름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요. 군인은 밥도 안 줬어요. 어머니가 매일 밥을 만들어서 가져다 주었어요.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몰라 비밀리에 왔어요. 임신한 여자들도 있었고, 아기를 낳는 사람도 많이 있었는데 나도 거기서 임신을 해서 딸 아이를 낳았어요. 아이를 낳고 3개월 있다가 일본군이 집으로 돌아갔어요. 나도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다 일본군을 만났는데 그 군인이 딸을 강제로 데리고 갔어요. 그 이후로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요.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에게 얘기 안 했어요. 20대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20년 전에 일본인 신부가 와서 다 얘기했어요. 허리가 아프고, 귀가 안 들려요. 집하고 돈이 필요해요.”

일본군은 1942년 2월 20일 중립이었던 포르투갈령 동티모르를 침공하여 호주군을 내쫓고 영토를 점령했지만 연합군의 반격으로 제해권과 제공권을 잃었다. 물자의 보급이 끊어진 1만2천 명이 넘는 일본군에 의한 주둔으로, 40며 만 명의 동티모르 국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의 죄수’가 되었다. 음식과 노동력 뿐만 아니라, 위안소나 장교용 여성의 조달도 명해졌던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동티모르는 1975년부터 인도네시아에 군사 점령되었기 때문에 과거 일본군에 의한 피해에 대해 호소할 기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군의 강간이나 위안소 설치에 의해서 동티모르 여성들은 또 다시 고통을 겪었다.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조사가 시작된 것은 유엔 잠정행정하 1999년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가를 결정했을 때부터였다. 이 법정에사 처음으로 피해여성 두 명이 증언에 나섰다.

또한 1925년 중국 하이난성에서 태어나 1940년 당시 15세의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貞天妹씨는 10대에 4년간의 악몽과도 같은 시간의 기억을 찾아 이렇게 증언한다. “9월에 일본군이 마을로 들어왔어요. 15살이 나를 강제적으로 붙잡아 데려갔어요. 그 곳에는 다른 여자 20명이 있었어요. 나를 데려갔던 통역자 매국노는 일본군을 위해 리족의 춤과 노래를 부르고 밤에는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고 했어요. 잔인한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출혈이 심했어요. 다음날에도 출혈이 계속 되자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러나 한 달에 4,5번은 일본군 부대에 가야 했어요. 한번 갈 때마다 4,5일은 머물렀어요. 낮에는 청소와 물을 기르고, 저녁에는 3,4명의 군인과 자야 했어요. 나는 임신이나 낙태를 한 여자들을 봤어요. 일본의 악마 몇 명이 여자를 성폭행하고 죽였어요. 넓은 방을 판자로 막아 3개로 나눴어요. 문은 밖으로 잠겨 있었고, 각각의 방에는 여자들이 있었어요. 1년을 그렇게 지냈어요. 그후 나는 철길에 까는 돌을 채석하는 산간도로로 보내졌어요. 낮에는 도로를 까는 일을 하고, 밤에는 성폭행을 당했어요. 3년 넘게, 그러고는 도망을 쳐서 산에 숨었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일본군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4년 동안 부모를 만날 수 없었어요. 나는 도망을 쳤기 때문에 또 붙잡힐 수 있었어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산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중국에서는 중일전쟁의 전면화와 함께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다발하여 1937년 난징대학살 당시에는 상당한 횟수의 집단 강간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인들의 반일감정 고조를 두려워한 일본군은 큰 부대가 주둔하는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위안소를 설치하여 일본이나 식민지 조선의 여성을 보냈고, 중국인 여성도 위안부가 되었다. 그리고 각 부대에서는 점령한 마을들에서 여성을 납치하거나 공출시켜 군의 거점에서 감금, 윤간을 행하며 ‘항일분자’나 그 가족에게 성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강간이나 위안부 범죄의 일부는 전범재판에서 재판이 이루어져 전쟁 피해의 실태조사가 행해졌지만 성폭력 피해 기록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에는 산서성의 완아이화씨가 처음으로 피해자임을 증언했으며, 산시성과 하이난다오의 피해자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시작했다. 그 후 중국 각지에서 피해자를 찾고 공문서의 발굴이나 위안소 흔적의 보존도 진행되어 4개의 위안소박물관이 세워졌다.

1937년 난징에서의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일본군에 의한 무차별적 강간이 일어나면서 일본군은 성병 방지를 위해 난징에 대규모 위안소 40여개소를 만들었고, 그중 리지상 위안소의 4개 건물에는 항상 200여 명의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또한 필리핀 로하스 시내에도 위안소로 사용하던 화려한 구조의 스페인식 폐건물이 남아있다. 주로 일본군 장교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세상을 떠났거나 80, 90대의 고령이 되어버린 이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픈 응어리는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버렸다. 일본군에 의해 강탈당한 비참한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전시관을 가득 메운 사진들은 그날의 상흔이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음을 실감케 한다. 이들의 가슴에서 울리는 한 맺힌 절규는 7,80여년 전의 과거가 지금도 잠들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종교적 냉대, 가해국만 아니라 자국까지도 외면하는 현실의 모든 것에 그녀들의 고통은 겹겹이 쌓여만 있다. 그리고 병들고, 혼자서는 무엇조차 할 수 없는 몸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므로 2차대전 당시 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했던 일본의 위안부 만행은 더 이상 타인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이제는 모두의 역사와 인권으로 남아야 한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문제이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로 이어가야 한다. 이것이 안 작가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겹겹프로젝트’의 의의일 것이다.

안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더 이상 왜곡, 은폐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고 기록을 해야 합니다. 개별 국가의 문제를 넘어 국제적 전쟁범죄의 관점에서 진상규명과 반전 평화를 위한 초석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겹겹프로젝트는 사진전과 강연회 활동을 통해 힘겹게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고통에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 활동한다. 전시장 한 켠에 마련된 그림엽서에 편지쓰기는 아시아 각국의 피해여성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관심을 전달하는 작은 행동이다. 프로젝트는 피해자와 시민들을 삼각형의 구도로 연결하여 소통하고, 피해자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집을 고쳐주거나 건강진단과 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

7,8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은 우리가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이다.

1. 하상숙

하상숙(B.1928-2017)
한국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남, 1944, 16세, 8개월간 동원.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성노예를 하던 우한에 남겨졌다. 그녀를 발견 당시 인근에서 4명의 피해자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후 한국에서 가족을 찾아서 귀국하였으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2. 루시아 루리즈(Lucia Luriz)

루시아 루리즈(Lucia Luriz)
필리핀 아라얏에서 태어남, 1942년, 12세, 2개월간 동원.
3명의 일본군에게 잡혀 당시 위안소로 사용하는 아랴얏중앙학교로 갔다. 지금도 일본말이 들릴 때면 악몽에 시달린다.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3. 주오티엔메이(貞天妹)

주오티엔메이(貞天妹)
중국 하이난에서 태어남, 1940년 15세, 4년간 동원
중국 하이난 섬에는 소수민족인 리족이 살고 있다. 일본군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요한 거점이다. 피해자는 낮에는 도로를 까는 부역을 하고, 밤에는 일본군의 성노예로 시달려야만 했다.

4. 난징 리지상 위안소

1937년 중국 난징에서의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무차별적으로 일본군에 의해 중국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 일본군은 사병들의 성병 방지를 위해 난징에 대규모 위안소 40여 개를 만들었다. 리지샹 위안소에는 4개의 건물 안에 상시 200여 명의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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