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국제사랑영화제 상영작인 ‘내 이웃이 되어줄래요’ 시네토크 행사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 영화가 담은 프레드 로저스 목사는 평생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성경적 가치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이 좋아”라 말하며 자신의 이웃이 되어달라고 얘기했다. 가난과 장애, 무한경쟁에 상처받고 있던 많은 미국의 아이들이 그의 프로그램에 치유 받았다. 그러나 당시 미국 사회는 ‘있는 그대로 모습’을 사랑하는 로저스 목사의 태도가 아이들이 성장과 발전을 막는다며 그의 태도를 비판했다. 물론 그 비판은 기도와 사랑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의 30년 장수를 막지 못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부른다. 털도 젖도 없는 어린양은 나약하고 무가치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굳이 우리를 어린양이라 하시며 사랑한다. 이처럼 주님은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이 모습 이대로의 무가치한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다. 로저스 목사가 평생 아이들에게 전한 사실도 이 간단한 성경의 진리였다.
사실 샬롬과 어원을 공유하는 이슬람이란 단어는 평화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슬람 신자이자 평화로운 사람들을 뜻하는 무슬림은 항상 평화를 이루려 한다. 다만 그들은 복종으로 평화를 이루려 한다. 무슬림의 이름에는 종을 뜻하는 압드(abd)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들어가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들을 ‘알라의 종(압둘라)’이라 규정하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역사에서부터 십자가 보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종 된 우리를 구하셔서 친구요 자녀로 삼으셨다. 그러나 로저스 목사를 반대한 미국 사회처럼 우리 세상은 여러 조건으로 우리를 종으로 만들려 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너무 많은 크리스천들이 스스로 종 되어 또한 종의 잣대로 하나님의 어린양들을 종으로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라 알라의 종이라는 무슬림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