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장로님, 왜 그러세요!”
[독자기고] “장로님, 왜 그러세요!”
  • 손세용 목사
  • 승인 2019.11.09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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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로님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그 중 똑똑한 아들 하나가 일류대학을 나와 미국 MIT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 아들이 가문의 명예를 높여주리라 기대가 컸는데, 어느 날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저 신학공부해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은 모양이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기가 막혀 소리쳤다. “야이놈아, 너 정신 나갔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어쩌고…” 성공이 눈앞에 환한데 멍청하게 목사라니 웬 말인가 싶었다. 그러자 그 길로 아들이 미국에서 달려와 아버지께 다짜고짜 하는 말, “장로님, 왜 그러십니까?”였다. 그 장로님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큰 실수였다. 가슴깊이 회개했다. 아들 셋 가운데에 가장 똑똑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하는데 ‘똑똑한 녀석이 목사가 뭐냐?’고 했으니 말이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목사님께 찾아가 “제가 회개할 일이 있습니다”하며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시대 어디 이 장로님뿐인가? “목사님, 왜 그러세요?”“집사님, 왜 그러세요?” “권사님, 왜 그러세요?” 우리 모두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우리 시대 대표적 기독교 철학자인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 박사는 현대인들이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절망의 선’을 넘어섰다고 했다. 19세기만 해도 신자든 불신자든 공유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이 있어, 십계명중 5계명 이하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를 말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그것은 맞는 말이다’라고 동의했는데, 포스트모던 시대에 들어서, 세상은 그런 절대적 가치관을 포기함으로 이 시대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알키미데스는 ‘내게 지점(支點)을 다오. 그러면 세계를 움직이리라’고 했는데, 이 시대는 정신적인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절대가치를 잃어버렸다. ‘신(神)’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인간이 삶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으로 믿고 의지하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신에 대한 그 절대적인 믿음을 상실했다. C.S.루이스(Lewis)는 지적한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에 비해 훨씬 무지했지만, 신을 향해선 깊은 경외감이 있었고, 신 앞에선 언제나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았다. 고대인들에게 신은 심판자였고, 인간은 변함 없이 피고였다. 반면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지혜로워졌지만, 신을 향한 원망을 가지고 신을 피고석에 세웠고, 이제 인간이 오히려 심판자가 되었다.” 현대인들에게 신이란 존재는, 내가 아쉬울 때 불러내어 문제를 풀어줄 해결사나, 무조건 나를 위로하고 지지해줄 카운슬러쯤으로 여긴다.

이 시대는 가치관이 표류되어 이정표가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이 없고 확신도 안정도 없이, 늘 불안하고 피곤하기만하다. 이는 ‘절대란 절대로 없다’는 말처럼 절대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조석으로 변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의지했다가 니힐리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일을 위해선 이대로 마쳐도 좋다고 할 그 절대가치를 잃어버린 때문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하고, 이러다 죽어도 좋다’ 싶은 절대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이유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능히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주님이 죽음을이기고 부활하시자, 저들은 ‘죽음까지 이기신 분이라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수 있지 않으랴’하는 희망이 다시 싹터 올랐다. 그래서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다시 조심스레 질문한다. “주께서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런데 주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 당신의 방법으로 이루실 것이니, 너희는 성령 받고서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요즘은 참 정치적인 관심들이 많다. 그 누구도 정치 해설가 아닌 사람이 없는 듯 하고, 각자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는 번영로의 [논개]처럼 장렬하다. 그런데 때로 교회에서조차 여와 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성도간에도 논쟁하다 간혹 상처를 입거나 믿음에 시험이 드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왜 절대가 상대에게 휘둘려야 하고, 왜 세상적인 가치로 인해 천국의 가치가 훼손되어야 하는가?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며 비분강해했는데, 리처드 니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언급했듯, ‘문화의 변혁자’이신 그리스도를 어찌 문화와 상대로 삼거나, 문화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 같다.

E.기번(Gibbon)은 그의 책 [로마제국 멸망사]에서 천 년을 지탱해온 로마가 멸망한 것은 로마를 지탱해온 로마정신(그래버타스)의 해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는데, 기독교의 최대의 위기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앙이 시대의 풍조에 따라 상대주의와 인본주의, 실용주의에 의해 변질되거나 상대화되는 것이다. 카네기가 집을 지으면서 건축기사에게 거실의 벽난로에 [이 벽난로는 우리의 제단이고 불꽃은 우리의 희생이다]라는 글귀를 넣어달라고 말했다. 벽난로를 설치한 후 건축기사가 “글이 너무 길어서 다른 글을 선택하셔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카네기가 대답했다. “안되오, 글은 바꿀 순 없소. 벽난로를 더 크게 만드시오.” 건축기사가 “거실이 더 크기 전에는 벽난로를 바꿀 수 없는데요?”라고 난색을 표하자, 카네기가 “그러면 거실을 더 크게 만드시오”했다. “그럼 거실 크기와 집의 비율이 맞지 않습니다”라는 건축기사의 주장에, 카네기는 “그럼 집을 더 크게 지으시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에겐 세상 어떤 것과도 상대화할 수 없는 절대가치의 믿음이 반드시 요구된다.

 

손세용 목사(동문교회)
손세용 목사(동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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