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호] 저널리즘은 지성, 야성, 상상력 가져야
[73호] 저널리즘은 지성, 야성, 상상력 가져야
  • 이창연 주필 장로
  • 승인 2019.11.08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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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이 로티사상의 핵심인 지성,
상상력, 야성을 지니고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문제, 신앙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글로써 벗을 사귄다(以文會友)는 말이 있다. 필자의 칼럼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해온다. 듣기 민망하지만 그로인해 많은 친구가 생겼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면서 “칼럼을 쓰는 그 많은 소재가 어디서 나옵니까?” 물어올 때마다 필자는 손가락으로 필자의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서 나옵니다”하고 웃고 넘어간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와 지식의 폭발로 글쓰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소재와 제목, 내용 등을 찾아 머리를 싸매고 사전과 문헌을 뒤지며 창의적으로 글을 써 놓아도 인터넷이나 SNS에 비슷한 글들이 난무한다. 그럴 땐 써놓은 글도 폐기처분하고 다시 글을 써야 한다.

“칼럼을 쓸 때 그 문제에 대한 완벽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지적(知的) 오만이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이 70세 기념 강연회에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을 필자는 진실로 공감하며 미국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은 세속적이고 평범한 일상의 문제를 풀고 치료하는 철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용주의(實用主義)학이라 할 수 있다. “저널리즘과 프래그머티즘 모두 하늘이 아니라 이 땅의 이야기란 말이다. 존 듀이와 리처드 로티의 프래그머티즘 속에서 저널리즘의 나아갈 길을 발견한다.” 자유주의 사회의 저널리즘은 거창한 토대주의(확실한 기초에 의존하는 인식론)적 근거나 형이상학적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작고 구체적인 경험들 속에서 태어나 성숙한다고 짚는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나 이념의 틀을 지니고 모든 것을 용광로처럼 통합하려는 언론의 계몽주의적 속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로티는 자유주의 유토피아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단 하나의 비전을 통해 서술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통합’보다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연대란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고통 받는 낯선 타인들을 우리와 마찬가지 존재로 볼 수 있는 상상력이다.’

이것을 저널리즘에 적용한다면? 독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사실보도와 분석에 그칠게 아니라 더 나은 자유주의 사회로 진보하기 위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저널리즘이 로티사상의 핵심인 지성, 상상력, 야성(두려움 없는 담대한 사고)을 지니고 구체적이며 일상적 삶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80년대 초반에는 입과 귀와 눈이 닫힌 사회였다. 언론도 지성 야성, 상상력을 지니기는커녕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그래서 모든 게 일사불란함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그때의 하루하루는 마음조차 스산한 추운 날씨뿐이었다. 사람들은 귓속말로 대화를 하고 신문에는 매일 수배된 사람의 사진이 실렸으며 거리에 깔린 경찰의 눈은 번득이었다. ‘자유’라고 발음하면 불온의 혐의가 씌워졌다. 캠퍼스는 숨을 죽였고, 학생들은 조용히 광장에 모여 들었다. 교수들은 텅 빈 강의실에서 니체와 하이데거를 말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학생들은 그냥 노래로 침묵을 채웠고 노래 끝은 행렬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세대는 다 그 축에 끼어서 그런 세상을 살아 왔다. 지금은 훌쩍 늙어 장년(노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이 된 우리는 설움의 침전물이 비장한 절제의 방식임을 확인하면서 그 시대를 그렇게 건너왔다. 그것이 다른 꿈을 꾸고 있던 필자를 저널리스트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이제 세상은 투쟁과 저항보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며 소수는 다수를, 다수는 소수를 포용하는 문화가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자들을 더 믿을 수가 없음을 필자는 수없이 경험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유익을 위하여 줄을 이탈하고 배신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실망했던 경험이 너무나 크다. 왜 그렇게 사람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 10절)를 암송해 본다. 세상 누구에게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지 않는 순간이 있다. 결론은 저널리즘이 로티사상의 핵심인 지성, 상상력, 야성을 지니고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문제, 신앙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길은 하나님께로 나있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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