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윤화 찬양사역자 “약속의 땅 마음에 두며 일본에 복음의 씨앗을 심어요”
[인터뷰] 이윤화 찬양사역자 “약속의 땅 마음에 두며 일본에 복음의 씨앗을 심어요”
  • 권은주 기자
  • 승인 2019.11.02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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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 씩 일본 사역을 떠나는 이윤화 찬양사역자
일본에서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나님 사랑 깨달아
동일본 대지진 때 영혼들 마음 달래려 찬양사역에 매진
일본 교회, 찬양 부흥하며 자연스럽게 청년들 부흥으로 이어져

한 달에 한번 일본 전역을 돌며 찬양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가 있다. 이윤화 찬양사역자는 매달 일본 지역 교회들을 방문하며 자연재해로 피폐해진 일본 영혼들을 찬양으로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일본사역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그는 일본에 미남오빠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일본의 팬들이 그를 보러 한국에 오기도 하는 CCM계 한류스타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자신의 길을 따라오는 다음세대의 멘토가 되는 것, 일본선교를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시작한 그가 크리스마스에 받은 기적 같은 선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윤화 찬양사역자는 매달 일본 전역을 돌며 찬양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윤화 찬양사역자는 매달 일본 전역을 돌며 찬양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렸을 때 이혼한 부모님으로 인해 할머니 손에 키워졌다. 할 수 있는 건 노래여서 대회에 나가 상금을 타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2007년 대한민국 복음성가제에서 대상과 작곡상을 수상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찬양사역을 시작한 계기는 2010년 노문환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아는 지인을 통해 노 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목사님 마음에 들어 바로 일본선교에 동참하게 됐다. 그날 바로 캐스팅이 되어 한글로 쓴 일본어 가사를 받아들고 연습한 후 일본에 가게 됐는데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일본 찬양사역에 대해 받은 비전이 있나
어린 시절 낯을 많이 가려 나는 늘 혼자 공원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동네 형, 누나들이 말을 걸며 친해지면서 교회에 나가게 됐다. 중학교 1학년 처음 가본 교회는 꿈만 같았다. 크리스마스 문학의 밤 때 성극에서 아주 작은 엑스트라 역할을 맡았는데 나는 참 열심히 했다. 그때는 그게 정말 행복하고 좋아서 매일 문학의 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캠퍼스 사역을 마치고 금요철야 때 콘서트를 하는데 중학생 때가 생각이 나며 “하나님께서 일본에서 문학의 밤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게 콘서트를 준비하는 교회 집사님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마음에 소원하던 것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이 되었다. 그때 그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차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일본의 각지 교회에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일본 전역을 돌며 지금까지 찬양사역을 하고 있다. 나를 하나님이 일본 사역자로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일하고 계심을 알기에 늘 감격이 된다.

일본 교회에서 콘서트를 하고 있는 이윤화 사역자.
일본 교회에서 콘서트를 하고 있는 이윤화 사역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 났을 때 이윤화 사역자는 2주 후 바로 재해 현장을 찾아 찬양을 통해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 났을 때 이윤화 사역자는 2주 후 바로 재해 현장을 찾아 찬양을 통해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일본에서 또 다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들려 달라
2014년도에 아시는 일본인 사역자분이 쿠마모토에 교회를 개척하셨다. 작은교회에서 시작을 했는데 개척 기념예배 겸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날 불러 주셨다. 늘 하는 것처럼 전단지 돌리고, 콘서트 포스터를 동네에 붙었는데 그것을 보고 어렸을 때 떨어졌던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 이혼을 하시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간 어머니가 쿠마모토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계셨던 거다. 그런데 내 얼굴이 들어간 포스터를 보시고 그날 찾아오신 것이었다. 나는 찬양을 하고 있었는데 예배당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콘서트를 끝내고 어머니께 다가갔는데 눈물을 흘리시며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셨다. 그렇게 일본에서 두 번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됐다.

싱어송라이터로 곡도 만들고 계신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온 지 1년 후 어머니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검사를 받으셨는데 췌장암 말기셨다. 일본에서 치료를 받으시다 소천을 하셨는데 일본 장례절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 선교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모든 것을 다 도와주셨다. 장례 예배도 인도해주시고... 참 평안한 가운데 하늘나라로 보내드릴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간신히 어머니를 찾고 이제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발병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나보다 동생이 더 힘들어했다. 디셈버 윤혁이 동생인데 아직 신앙이 없어서 어머니의 죽음에 하나님을 원망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이 땅은’이라는 노래를 주셨다. 그 당시 일본은 봄이어서 벚꽃이 너무 아름다웠다. 풍경을 보면서 이 땅은 잠시 쉬어갈 정거장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라... 이 노래를 세상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들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센다이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일본인 전도사님이 계셨는데 집안이 300년 동안 불교를 믿는 집안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장례식 전야제를 하는데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셨던 찬양곡을 들려드리게 됐다. 그 자리에서 감동을 받은 아버지와 따님이 장례식 때도 불러 달라 요청해서 ‘이 땅은’이라는 곡을 불러드렸다. 찬양에 감동을 받으신 아버님께서 자신의 장례식에서도 찬양을 불러달라며 마음이 열리시는 것을 보면서 장례식이야말로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기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은
이 땅은 잠시 지나갈 계절과 같은 것
이 땅은 잠시 울다 갈 소나기 같은 것
이 땅은 잠시 쉬어갈 정류장 같은 곳
이 땅은 잠시 웃다 갈 드라마 같은 곳
이 땅에 소망 두는 자 편안할 것이나
하늘에 소망 두는 자 평안 얻으리
영원한 그 나라 서러움을 닦아줄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 마음두며 살아요

 

일본은 선교사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복음화 되기 힘든 나라다. 현재 일본의 영적 상황은 어떤 것 같나
동일본 지진 때 2주 후 일본에 들어갔다. 찬양사역을 하며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그런 영향인지 일본 사람들이 찬양을 대하는 마음이 많이 열려 있음을 본다. 예전에는 한류 음악을 할 때 사람들이 집중했는데 요즘에는 찬양을 부를 때 더 집중한다. 일본 입국심사 때 가스펠 콘서트하러 왔다고 하면 질문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가스펠가수라고 하면 그러냐며 고맙다는 얘기도 한다. 센다이에 지진이 났을 때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고 콘서트를 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스펠이라는 음악이 동북지역에 많이 흘러갔다. 그 흐름이 계속 이어지면서 부흥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에서 90년대에 복음성가가 부흥을 했던 것처럼 현재 일본에서 가스펠음악이 부흥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찬양을 번역해 많이 불렀는데 지금은 일본인 사역자들이 찬양을 만들면서 부흥의 불이 붙여지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는 ‘꽃들도’라는 찬양이 바로 일본 찬양이다. 지진과 쓰나미, 자연재해로 인해 낮아진 마음에 하나님께서 교회와 찬양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 같다. 지금 일본은 교회에 청년들의 부흥이 가장 크게 일어나고 있다. 일본인 교회들이 부흥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헌신하신 선교사님들 생각이 많이 난다. 그분들의 헌신으로 곳곳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다.

일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마지막으로 비전도 나눠달라
막연하게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하는 건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내 삶에서 오늘 하루 신앙을 잘 지켜 나가는 것, 하루를 잘 이겨내는 싸움을 잘 해내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때가 되면 가고 싶어지고, 사랑하고 싶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비전은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통해 다음세대들이 걸어 올 때 멘토가 될 수 있음 좋겠다. 유명하지 않아도 이 길을 가는데 기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부르심 같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또 일본선교가 내 비전이다.

 

화곡동역 근처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는 이윤화 사역자 부부를 찾았다. 이윤화 사역자는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고 했다. 옷가게 앞에서 예쁜 두 부부를 찍었다. 권은주 기자
화곡동역 근처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는 이윤화 사역자 부부를 찾았다. 이윤화 사역자는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옷가게 앞에서 예쁜 부부를 찍었다. 권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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