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그리고 한국기독교
컬링 그리고 한국기독교
  • 이치만 교수
  • 승인 2018.03.21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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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막을 내린 평창 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대제전이었다. 올림픽대회는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박빙의 실력 차를 겨루는 경기이니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도 모든 종목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는다. 비인기 종목은 관중도 많이 들지 않고 방송에서도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단연 주목을 끈 비인기 종목이 있었다. 바로 컬링이라는 종목이다. 컬링은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종목이었다. 올림픽이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경기 룰이 뭔지 어떻게 점수를 얻는지 잘 몰랐다. ‘동계 올림픽에 저런 종목도 있구나...’하는 정도.

그런데 우리나라 컬링 여자팀이 유럽의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이어가자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컬링 입문기가 훈훈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꿋꿋이 실력을 쌓아올린 그들에게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끈질기면서도 화끈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모습에서 고향 특산물 마늘이 팀 닉네임으로 따라붙었다. 그들이 치르는 경기가 열릴 때면 온 국민이 두 손 모아 응원했다. 컬링의 묘미에 대해서 잘 몰라도 그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표’가 되어갔다. 방송 카메라는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클로즈업하였다. 심지어 간식 먹는 모습도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주장이 스톤을 드로우하고서 외치는 소리, “영미, 영미”는 전 국민이 따라할 정도였다. 이를 본 딴 패러디도 등장했다. 외신도 연일 그들의 활약을 보도했다. 그리고 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에게 컬링은 이전과 전혀 다른 ‘그 무엇’이 되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가 좋아했던 스포츠인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한국기독교를 외래종교라고 여기는 인식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인다. 그런데 한국기독교는 전래된 지 130년 조금 지난 정도밖에 안 된 종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외래종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나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기독교는 한국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외래종교라는 외피를 벗을 만큼 오래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기독교는 외래종교라는 틀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제기된다. 즉 한국기독교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달리 외래종교라는 인식을 벗게 된 이유는 뭘까. 전래된 기독교가 그 민족사회 안으로 스며들어 갔으면 외래종교라는 틀을 벗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외래종교의 틀 속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리의 경우, 기독교는 어떤 사정으로 우리 민족사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한국기독교는 한국근대사의 흐름과 그 맥을 거의 같이 한다. 한국근대사는 우리 민족사에 가혹한 시련의 시간이었다. 외세의 침탈, 청일전쟁, 러일전쟁, 경술국치와 한일병탄 그리고 뒤이은 일제의 식민지배... 갓 전래된 기독교는 그 세력이 비록 미미하였고 ‘무명의’ 종교였지만, 우리 민족사회의 궁극적 가치가 위협받고 있을 때 앞장서서 함께 하였다. 세력이 미약하여 위력적이지는 않았지만 무명이어서 중심에 서지는 못했지만 한국기독교는 시련 속에 고통 받는 백성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했다. 우리 민족사회는 무명의 외래종교 기독교를 우리 안으로 조금씩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만 지키던 자들이 예수교에 투신함으로써 겨우 서양 선교사들의 혀끝으로 바깥 사정을 알게 되어 신문화 발전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예수교를 신봉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류이하로, 실제 학문을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선교사의 숙달치 못한 반벙어리 말을 들은 자는 신앙심 이외에 애국사상도 갖게 되었다. 당시 애국사상을 지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교 신봉자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신앙의 영역과 사회 영역을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신앙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나서서 거론하는 것을 배제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어차피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사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만약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있을 때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를 도외시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민족사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우리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삼일운동 · 물산장려운동 · 기독교농촌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런 역사에서 볼 때, 당대 사회의 궁극적 가치문제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마땅하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운동가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사회문제에 사사건건 나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문제를 배제하고 회피하니까 사회 영역에서 형성된 이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좌우하게 된 게 아닌가. 그 이념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가 반추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궁극적 가치가 위협받을 때 또는 우리 사회의 궁극적 가치가 변화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궁극적 가치인 예수님의 사랑을 표출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다.

이치만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및 동 대학 신학대학원

일본 동지사(同志社)대학 석·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한국교회사) 조교수

도림교회 협동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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