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통신_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선교사통신_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3.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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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눈물 흘릴 때 꿈에서 만나주신 하나님
선교사의 길 담대히 갈 수 있게 격려
몽골전통복을 입고
몽골 전통복을 입고

영국 속담에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에 울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선교사로 눈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이 땅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이 땅에서 제일 먼저 흘린 것은 세상적인 눈물이었습니다. 마치 우주의 낯선 세계에 홀로 버려진 미아처럼 외로움의 눈물. 그리고 제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하는 자책과 분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눈물은 전혀 선교 준비가 안 된 못난 스스로에 대한 애증의 눈물이었지요. 그렇게 눈물로 지낸지 2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하늘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이 선교사로서의 첫 걸음을 걷게 하였습니다.

그날의 꿈을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밤 나는 1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오랜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 들었는데 꿈속에 어린 시절 살던 내 고향 동네에 가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이었지만 마치 처음 간 이국땅처럼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황량하기만 했다. 이어 잠들기 전 가졌던 걱정스러운 생각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전날 오후 새로 개척 중인 세상의 소금교회에 지난 여름 선교팀들이 지어준 몽골식 천막 노인정에서 교회개척을 위한 준비모임을 가졌었다. 그때 그곳에 모인 현지인들이 난방 용품과 석탄, 나무, 전기시설 등 겨울을 위한 준비시설을 부탁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모가 불평어린 핀잔을 한다.

“아니 지금 개척하고 있는 교회도 예배당이 없이 지내는데 그렇게 무조건 해준다고 약속만 하면 어쩌냐? 몽골 땅에서 사는 우리들의 처지가 지금 코가 석자인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대학 입학금도 해결 못하고 기도원에 계신 부모님께는 일절 용돈도 못 드리는 형편에. 그렇다고 남에게 도와달라고 말도 못하는 사람이 어쩌자고 대책 없이 자꾸 일만 벌이냐는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기에,

“아니 그러면 하나님의 일 하자고 몽골 왔지 먹고 살자고 몽골에 왔냐”고 큰 소리를 쳤지만 우리부부가 처한 삶의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한심한 대답이었다. 몽골로 떠나올 때 장남인 나는 아파트를 교회 건축비로 사용한 후 갈 곳도 없으신, 80세를 넘은 부모님을 자주 다니던 기도원에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뇌졸증에 치매 초기증세를 보이며 어린애처럼 우시는 어머님을 버리고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분들이 어떤 부모님인가? 이 못난 자식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들이 아닌가? 일생 두 번의 집을 가지셨는데 그 집 모두 주님의 교회를 위해 바치신 분들. 한 번은 모교회의 건축을 위해, 또 한 번은 아들의 개척교회를 위해.

이렇게 못난 놈이 하나님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나? 신학교 시절 나의 못남을 좀 알았기에, “주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이 부족하고 못난 저를 꼭 쓰시려고 하십니까?” 주님의 일 하겠다고 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골라 쓰시고 믿음이나 실력으로 치면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을 사람이니 자격미달로 좀 놓아주십사고 수없이 몸부림치며 울던 시절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걷던 낯익은 동네 신작로 길을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내 뒤에서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며 부모 자식 다 버리고 몽골로 간 한심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 귀에 못 박히듯 들렸다.

꿈속인데도 나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다고 괴롭게 느껴졌다. 거지같은 내 모습이, 목회에 실패한 내 인생이 마치 패잔병 모습처럼 비춰지며 나는 더 이상 고향동네에 있을 수가 없었다. 뒤 돌아서 나오려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입술에서 찬송이 흘러나왔다. 마치 죽어가는 벌레가 몸부림치며 퍼덕이듯이 맥없이 중얼거리는 노래였다.

“내 주 하나님의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마치 패잔병들의 노래처럼 읊조리고 있는데 갑자기 다 죽어가듯이 부르던 찬송이 하늘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대형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듯. 그리고 내가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나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시는 찬송으로 들려졌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주님이 부르시는 이 찬송이 계속적으로 내 심령을 뒤흔들며 울부짖듯이 울려 퍼졌다. 나는 흐느끼며 울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위해 부르시는 그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데 내 속에 있던 모든 아픔과 슬픔, 걱정과 염려가 다 사라지는 것 같은 감격에 빠졌다. 왜 낯설고 물 설은 이 황량하고 외로운 몽골 땅에 와야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주님이 나에게 외치시는 말씀이 “너는 이 땅에 왜 왔는지를 모르나 나는 너를 통해서 이 땅에 생명의 역사를 만들 것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저 큰 은혜의 바다를 향하여 나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부끄러워 울고, 감사해서 울고, 바보 같아서 울고,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울고 또 울었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며 비웃던 모든 사람들이 이 찬송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깨어보니 내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 영혼은 너무나도 평안하였다. 주일 설교 전 몽골 교인들 앞에서 늘 하던 것처럼 특송을 한 후 설교했다.

“내 주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 보다 넓고 바다보다도 깊다….”

저는 정말 부족한 사람입니다. 정말 현실을 모르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이 여기에 계시기에...

-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계절에

이 후로 저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제 자식보다 부모보다 더 사랑스러워지고 저들의 아픔과 괴로움이 제 것이 되어 갔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부터 이들이 저를 위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남 앞에 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강인한 자존심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지요.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던 당시 신학생으로 통역하던 잉케 목사님이 설교 통역을 하다 말고 갑가기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무슨 일인가 하는데 잠시 후에 눈물 젖은 얼굴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제 가슴이 흔들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교인들이 또 울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주체할 수 없는 울보가 되었지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울고 몽골 영혼들을 위해 울고. 교회를 위해 울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고.

2016년 4월 부활절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함께
2016년 4월 부활절예배를 마치고 교인들과 함께

그렇게 우리들의 믿음이 점점 아름답게 자라갔습니다. 모든 것이 애통하는 마음을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였지요. 몽골사람들 모두가 잘 아는 속담이 있습니다. “음메 음메 울다가 가축이 되고, 울고 울다가 사람이 된다”는 속담은 마치 저를 위해 만든 하나님의 말씀 같습니다.

시편126편의 말씀처럼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경험하였습니다. 결국은 주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모든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메마른 광야에서 눈물을 통해 열매를 맺어가지요.

눈물로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시고, 어찌할지를 몰라 어린애처럼 서럽게 울 때 주님이 그 자리에 와 계심을 보게 되지요. 오늘밤을 넘기지 못한다는 응급환자, 귀신에 붙들려 미쳐 날뛰는 사람, 화를 내고 싸우자고 덤비는 사람,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현지인 목회자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머리로는 이해 할 수도, 이해될 수도 없는 어리석고 거짓된 삶들, 교회가 무엇인지 목사가 누구인가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 선교사가 돈 보따리를 갖고 사는 사람인 줄 알고 무조건 1억이 넘는 엄청난 돈을 빌려 달라고 애처럼 매달리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일들, 한 번도 겪어보지도 상상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될 때마다 부족한 저는 두렵고 어찌해야 될지 몰라 어린애처럼 안절부절 하며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며 주님 앞에 울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열매들로 결실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무지한 저에게 놀라운 하늘의 꿈을 보여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명을 깨닫게 하신 후로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 우상과 미신으로 살며 죄와 고통가운데 힘들어 하는 몽골의 지체들과 영혼들이 제 자식처럼 불쌍히 보이고 저의 부족했던 모습들로 보입니다. 이들의 허물과 아픔이 마치 제 가슴 속에 담겨져 있는 고통처럼 아파하고 슬퍼하게 하심을 우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아멘.

주님께서 두 번째 복으로 하신 말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임이라” 아멘.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애통하는 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18년 봄바람을 기다리며
울란바토르 함팅토야교회에서 정광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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