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한 연예인 부부의 이혼 문제로 온라인이 떠들썩했다. 마음이 떠난 남자와 남자를 붙잡는 여자. 여자 연예인은 남편이 이혼을 요구한 이유에 대해 권태기로 인한 변심을 들었다. 부부의 문제는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겠지만. 사전적 권태의 의미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라고 나와 있다. 권태기는 부부가 결혼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권태를 느끼는 시기다.
열렬히 사랑했던 사이, 뜨겁게 사랑을 고백했던 사이일수록 권태로 인한 배신감은 더할 것이다. 사람과의 사이도 그러할진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어떠할까.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날 향한 그분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해 하고 감사해 하며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기. 어느새 마음은 식어지고 권태가 찾아와 매주 드리는 예배, 말씀, 기도에 나는 얼마나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지. 전능자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 나와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해서인데. 나는 결혼식만 올리고 신랑 되신 그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분을 향한 사랑고백, 헌신고백이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고 외면이 아니라 둘만의 은밀한 신혼 방에 온갖 더러운 우상을 끌어들여 순전한 신랑 앞에서 간음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통회하며 돌아볼 때이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한국교회는 과연 얼마나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을 지키고 있을까. 아니 각 교단 총회는 얼마나 신랑 되신 예수님을 향한 순결함을 지키고 있을까. 각 총회의 면면을 지켜보면 볼수록 작금의 한국사회가 망해가는 것이 과연 교회의 타락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내가 재를 뒤집어쓰고 통회하는 일밖에는 없다. 이제 각 교단마다 총회가 시작된다. 돈과 명예를 쫒는 총회가 아닌 거룩을 쫒고 마음을 찢는 총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