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흐트 뒤러의 ‘비탄의 그리스도’
알브레흐트 뒤러의 ‘비탄의 그리스도’
  • 임재훈 목사
  • 승인 2019.09.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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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자 개인의 경건생활을 위한 묵상화(Andachtsbild)로 제작된 ‘비탄의 그리스도’ (Christ as Man of Sorrows, c.1493)는 뒤러가 유랑도제시절 콜마르에서 남긴 작품이다.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어깨까지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그리스도는 관람자를 슬픈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오른 팔을 굽혀 무릎에 대고 머리를 괴었으며 왼팔은 고통으로 인해 지쳐 힘없이 늘어져 있다. 고문을 가했던 수난의 도구(Arma Christi) 매와 채찍은 무릎에 기대어져 있다. 그리스도 뒤편의 푸른 빛깔의 무덤 문 형상은 영원을 상징하는 황금빛 세계로의 입구를 의미하는 듯하다. 죽음을 통과해 도달하는 영원의 세계로의. 황금색 바탕에 나있는 수백 개의 바늘자국은 ‘고난의 종’의 대속의 신비를 묵상케 한다. 고뇌하듯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표정은 바라보는 신자의 마음에 충격과 슬픔의 감정을 일으켜 깊은 신앙적 명상의 침잠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스도 수난의 역사적인 순간을 묘사한 것이 아닌 묵상을 위한 Imago Pietatis 도상은 12세기 비잔틴 동방교회에서 전래되어 특히 북유럽의 대중들에게 선호되었다. 젊은 날의 뒤러는 알자스 지역의 대가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c.1495/ 50-1491)가 수년전 이미 사망해 그를 대면하지 못했지만 이 여행에서 전통적인 도상에 고뇌하는 자세, 멜랑콜리 이미지를 더함으로 독특한 작품을 이루어 내었다. 후에 뒤러의 정신적인 자화상으로 여겨지는 멜랑콜리의 사색에 잠긴 자세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북유럽미술의 고도의 자연주의 기법을 훈련받은 스물두 살 뒤러의 솜씨가 돋보인다.

비탄의 그리스도, c.1493, 패널에 유화, 30x19cm, 칼스루에 국립미술관
비탄의 그리스도, c.1493, 패널에 유화, 30x19cm, 칼스루에 국립미술관

2. 독일 뉘른베르크의 화가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북유럽 미술전통의 기반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수용함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북유럽 르네상스를 이룩한 인물이다. 그는 ‘북유럽의 레오나르도’라고 불릴 정도로 회화, 드로잉, 목판화, 동판화, 수학/미술이론 등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낸 북유럽의 르네상스인 이었다. 그가 활동한 신성로마제국의 제국도시(Reichsstadt) 뉘른베르크(Nürnberg)는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가 배태된 브뤼헤(Brugge)의 위상에 비견할 수 있는 곳이다. 도시의 인문주의적 분위기는 1525년 종교개혁을 수용한다. 헝가리에서 뉘른베르크로 이주해온 금세공사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화가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의 공방에서 미술수업을 받은 후 독일 서남지역 (Oberrhein)에서 유랑도제생활(Wanderjahre, 1490-95)을 한다. 이후 그의 생애는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베네치아 여행(1494-95) 후 1495년 자신의 공방을 연 뒤러가 몰두한 과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북유럽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여행(1505-07) 후의 과제는 대가로서의 원숙한 작품 활동과 종교개혁의 정신을 미술로 구현하는 일이었다. 16세기의 시대적 과제였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의 대면 그리고 그 정신을 구현한 창작이 그의 삶과 예술이었다. 생애 후반의 네덜란드 여행(1520-21)은 북유럽의 대가다운 발걸음이었다.

아담과 이브, 1504, 동판화, 24,8x19,2cm, B.1, 칼스루에 국립미술관
아담과 이브, 1504, 동판화, 24,8x19,2cm, B.1, 칼스루에 국립미술관

3. 뒤러는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작품을 남겼다. 첫 이탈리아 방문 후 남유럽 르네상스를 북유럽 토양에 수용한 동판화 ‘아담과 이브’(1504), 두 번째 여정의 열매로 자신의 미술이 초기 르네상스에서 전성기 르네상스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프라도 회화 ‘아담과 이브’(1507), 베네치아에 머무는 동안 베네치아 색채주의(colore)에 버금가는 색채감각이 담긴 ‘장미화관의 축제’(1506) 등 삶의 매 순간마다의 인식과 경험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무엇보다도 아직 공방을 정식으로 열기전의 유랑도제시절, 콜마르에서 남긴 젊은 날의 작품 ‘비탄의 그리스도’(c.1493)를 살고 있는 도시 칼스루에(Karlsruhe)에서 만날 수 있음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뒤러의 예술세계를 대하며 삶의 순간마다 어떤 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질문한다. 그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Imitatio Christi) 시늉이라도 할 수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다!

아담과 이브, 1507, 패널에 유화, 각각 209x81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아담과 이브, 1507, 패널에 유화, 각각 209x81cm,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장미화관의 축제, 1506, 패널에 유화, 162x194,5cm, 프라하 국립미술관
장미화관의 축제, 1506, 패널에 유화, 162x194,5cm, 프라하 국립미술관

 

 

임재훈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임재훈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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