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적 특권에 대한 분노
세습적 특권에 대한 분노
  • 문상현 교수
  • 승인 2019.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부종합전형 위촉사정관 역할을 6년째 담당하고 있다. 한 5년 전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인터뷰 대상에는 지방 일반고 학생도 있었고 외고나 자사고 출신도 있었다. 출신학교 여부와 상관없이 대다수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응답에선 출신고와 지역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방 일반고 출신 학생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학교와 교사들의 정보 부족과 무관심으로 동아리나 봉사 등 비교과 활동 준비가 무척 힘들었다고 답했다. 반면 외고나 자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각종 대회도 만들어 주고 동아리나 봉사 활동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해줘서 준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5년 전이면 경시대회 등의 교외 수상 실적, 교외 봉사활동, 연구 논문, 교사 추천서 등의 제출이 금지되거나 폐지된 이후라 그나마 이 정도였지 교외 대회나 활동 실적이 반영되던 입학사정관제도 초기에는 학교와 지역뿐 아니라 개인 간 정보 불평등이 매우 심했다. 학종이 ‘현대판 음서제’라든가 ‘금수저 전형’이라는 과장되고 왜곡된 시선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초기 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이기도 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자의 자녀가 외고, 대학, 그리고 의전원에 합격하는 과정을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현 정부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인 조국 지명자의 명운이 자녀 입시과정에 대한 의혹 해소 여부에 달릴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의 진위여부는 청문회에서 밝혀질 것이라 믿고, 이 모든 소동과 논란이 진영 간 정치공학에 어느 정도 기인한다는 사실 역시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입학사정관과 입학처장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할 때 현재까지 제기된 조국 지명자 자녀의 대학 합격 과정은 불법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010년은 수시전형제도의 초기로 수학경시대회나 학술 논문 등의 교외 스펙자료가 입시에 자유롭게 활용되던 때였다. 게다가 최상위권 대학들은 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의 지원을 늘리고자 노골적으로 이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입시전형을 설계하였다. 대학교수나 대학원생들과의 논문 공저, 부모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인턴십이나 봉사활동, 고액선행학습이 가능케 한 올림피아드 등의 경시대회 수상 실적, 심지어 유명 인사의 추천서까지 평범한 부모와 가정환경을 가진 학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스펙을 요구했다. 지금은 불가능하나 그 당시엔 명문대학입학의 보증수표였던 이러한 스펙들에 대한 접근기회는 사실상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즉 이러한 스펙들은 개인 노력에 의해 성취된 것이기보다는 부모로부터 세습된 것으로 봐야 한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적 속성이 자녀의 세습된 특권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조국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에서 우리는 세습적 특권이 이념마저 압도하는 힘이라는 슬픈 현실을 목도한다.

경쟁에서의 개인의 승리와 사회적 성공이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지위와 인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자본에 힘입은 바 크다면 대다수는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당연히 심리적 박탈감은 깊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조국지명자의 자녀를 둘러싼 논란은 법적이거나 이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심리적이고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분노는 이런 관점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는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이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며 자본주의가 세습자본주의로 변질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세습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해악이자 민주주의의 적이다. 자본주의 실험 역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세습적 특권의 만연은 한국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대기업,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그리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세습은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단지 특권적 지위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쟁에서 부당한 혜택을 누릴 뿐 아니라 부족한 능력과 품성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특권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이들이 소유한 특권의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존경을 못 받고, 때로는 조롱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세습적 특권이 갖는 허약한 명분과 정당성 때문이다. 손에 쥔 특권을 휘두르는 재미에 빠져 그 허약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가 서글프고 안쓰럽다.

문상현 교수 <br>​​​​​​​(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br>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문상현 교수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