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평양에서 학교를 세워
기독교 교육 개몽운동에 전념하였다."
다섯째, 정진 여학교이다.
1896년 평양시 대찰리에서 홀(R.S.Hall)선교사 자택에서 30명으로 정진여학교가 시작되었다. 보통과 4년, 고등과 3년 과정이었다.
1929년 6학년 6학급에서 12학급으로 확장하였고, 711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하였다. 1935년 교장은 보일두(H.E.Boyles)선교사였다.
여섯째, 삼숭학교이다.
1899년 평안남도 진남포시에서 노블(W.A. Noble)선교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1912년 남.여학교로 분립되어 남자학교 교장은 손정도 목사, 여자학교 교장은 로빈슨(H.P. bobbins)선교사였다. 보통과 4년, 고등과 3년제였으며, 1921년 용강에 4년제 분교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일곱째, 평양 연합기독병원이다.
1897년 감리교 선교사 홀이 개원한 기독교 병원인데 기홀(紀忽)병원 이라고 불렀다. 1920년 장로교의 제중병원(1895년 설립)과 합동 하였으며, 1923년 감리교 관계여원까지 합병하여 평양 연합기독병원이 되었다.
앤더슨(A.G. Anderson)이 원장에 취임하여 1938년 선교사들이 추방될 때까지 장기 봉직하였다. 한국 의사로서는 김애희, 유기원, 장기려(후에 부산 복음원장역임), 김명선(후에 연세대 부총장 역임) 등이었다. 815해방 후 공산 정권에 강압으로 결국 폐원되었다. 해방 후 민족 지도자 조만식 장로가 이곳에 위장 입원하여 반공 민족투쟁을 지휘 하기도 하였다.
여덟째, 광해여원(廣惠女院)이다.
1898년 6월18일 홀 선교사 부인에 의해서 세워진 병원이다. 여성환자 전용병원으로 불쌍한 한국 여성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다. 광해여원(廣惠女院)을 박해하던 평양 감사가 회개하고 지어준 이름이다. 최초 서양식 건물이었다.
감리교 선교 정책중 하나가 교육정책이었다. 그래서 평양에서 학교를 세워 기독교 교육 개몽운동에 전념하였다.
황기식 목사
총회역사 전문위원
현 아산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