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집-그곳에 가면 교회가 있다] 여수, 우학리교회, 비경의 섬에서 순교로 지킨 신앙의 절개를 보다
[여름특집-그곳에 가면 교회가 있다] 여수, 우학리교회, 비경의 섬에서 순교로 지킨 신앙의 절개를 보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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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풍목사순교기념관도 있어
금오도 성도들이 직접 세운 우학리교회. 교회 제공  

 

“쥐를 잡는 고양이는 못되지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서

쥐를 쫓을 수 있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우학리교회 첫 설교 중- 

여수시 남면은 11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그 중 금오도는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에 속한다. 여수에서 남쪽으로 차로 한참을 달려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다보면 금오도 여천항에 도착한다. 여수 연안여객선 터미널이나 백야도 선착장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이미 금오도를 여행한 이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여천항에서 해안선을 타고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이기풍목사순교기념관과 우학리교회(봉세환 목사)를 만날 수 있다.

우학리교회는 1908년 4월 5일에 세워진 교회로 당시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들과는 달리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세운 특별한 교회다. 보성군 벌교에서 곡물을 파는 이들이 여천군 남면에 속했던 금오도까지 왔다. 그들 중 예수를 믿는 이들이 있었다. 미신이 강했던 금오도 주민 중 유지인 안규봉 등이 명장순, 안정협이라는 두 청년을 벌교 무만교회로 파송해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1906년 안귀봉의 집에서 가정교회를 시작해 1908년 마을에 있던 제당을 철거하고 그곳에 예배당을 신축한 것이 우학리교회의 시작이다.

우학리교회 옆에는 이기풍목사순교기념관이 있다. 이기풍 목사의 일대기와 순교이야기를 사진과 모형들로 만날 수 있다.

우학리교회 옆에 세워진 이기풍 목사 순교기념비. 교회 제공

 

이기풍 목사는 1937년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자 우리나라 초대 목사 7인 중 한명이다. 최초의 제주도 선교사이면서 순교자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록’에 의하면, 당시 제주도의 교인은 410명, 예배당 3개, 기도회 처소가 5곳, 매주 모이는 남녀가 3백여 명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1918년에는 광주 북문안교회 초대목사로 부임해, 1920년 전라 노회장, 장로회총회 부회장, 그 다음해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병고로 2년간 휴양까지 했지만 1923년 전라남도 순천교회, 1924년 고흥교회, 1927년 다시 제주도 성내교회에서, 1934년에는 일흔의 나이에 여수의 남면 우학리교회에서 사역했다.

봉세환 목사는 “6년 전 우리교회 2대 장로였던 안기창 장로님이 90세가 되셔서 부부가 함께 이곳에 왔었는데, 이기풍 목사님이 우학리교회에서 처음으로 했던 설교 내용을 전했다”며 “안장로님은 청년이었던 그때, 일제강점기 시대에 70세의 나이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첫 설교에 ‘나는 쥐를 잡는 고양이는 못되지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서 쥐를 쫓을 수 있다’고 하셨다고 한다”고 말했다.

청년의 시기에 복음의 열정으로 남부지역에 선교하고 교회를 세운 이기풍 목사는 일흔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서라도’도 복음을 전하고자했던 열정을 보인 것이다. 봉 목사는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신사참배 거부도, 옥고도 이기고 순교하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기풍목사순교기념관에 전시된 이기풍 목사의 체포와 옥고 장면. 교회 제공

이기풍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는 물론 “일본은 곧 망한다”는 설교를 자주해 여수경찰서에 감금된다. 당시 72세로 최고령었다고 한다. 1938년 신사참배를 거부와 불경죄로 심한 고문을 당하고 병환으로 보석되었다. 이 목사는 우학리교회까지 돌아왔지만 교회에서 마지막 성찬예식을 하고 그 다음 주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1942년 6월 20일 우학리교회에서 별세했다. 이후 감옥이 아닌 사택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이 목사의 순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순교자로 추대된다. 이 목사를 기념해 1994년에는 제주 성안교회에 이기풍 목사 선교기념비가, 1998년 5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125에 이기풍 목사 선교기념관이 세워졌으며 2010년에 우학리교회 16대 조강석 목사가 교회 옆에 이기풍목사순교기념관을 세웠다.

우학리교회 17대 목사로 9년째 사역중인 봉 목사는 “이곳까지 많은 성도들이 찾아온다. ‘왜 왔냐?’고 물으면 ‘이기풍 목사님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왔다’고 답한다. 그러면 ‘이기풍 목사님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자세히 나와있다’라고 답해준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한국교회가 사람을 기념하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있지 않나’하는 우려에서다.

봉 목사는 “기독교 역사나 선조들에 대해 숨겨진 것이 더 발견되는 것도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순수한 신앙과 열정을 가지는 것”이라며 “당시 그분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이유를 생각하고 내가 오늘날 어떻게 쓰임 받을지 고민하고 기도해야 되는데 한국교회가 너무 과거 역사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오는 이들에게 꼭 이렇게 말한다. “이기풍 목사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목사의 행적을 통해 ‘교회에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약해지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는 오늘날 순교자가 없어서다. 물론 이기풍 목사님 때와 현저히 다르지만,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그분들의 신앙처럼 우리 자신들을 세워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된다.”

금오도에는 우학리교회와 이기풍순교기념관 외에도 우학리해변에서 남쪽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금오도는 ‘비렁길’로도 유명하다. 금오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배경으로 떠 있는 섬 해안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조성된 18.5㎞의 벼랑길이다. 남해안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단구의 벼랑을 따라 조성되어 비렁길이라 부른다.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의 벼랑길 사이에는 조선 왕실 궁궐 건축 목재로 사용됐던 황장목이 자라는 금오숲도 있다.

금오도 비렁길. 출처 여수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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