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두 얼굴
일본의 두 얼굴
  • 안기석 장로
  • 승인 2019.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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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에 일본 오사카 지방에 가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외길로 치닫는데 그 외길을 따라 구태여 성급하게 다녀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묘한 이중성이었다. 현지에서 만나는 일본인들은 친절한데도 인간미를 느낄 수 없었고 비록 시골이라도 깔끔한 건물과 도로 주변 관리는 배울만하다고 느끼면서도 정감이 배어든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중적인 느낌은 편견과 현실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90년대 중반 첫 일본 도쿄 출장길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 선배가 야스쿠니신사 옆의 전쟁기념관을 반드시 들려보라고 권유해서 관람한 적이 있다. 전쟁기념관을 들어서는데 일본 시골에서 올라온 중년의 남녀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미카제 특공대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영화를 본 것이었다. 기념관 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여학생들이 수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어서 애틋한 편지와 함께 가미카제 특공대에 보낸 전시물로 가득 차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일본이 경제는 1등, 정치는 2등이라면 정신적으로는 자기성찰이 없는 3등 이하이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기독교인들과 함께 나가사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가톨릭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당 옆에 자그마한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일제가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억압했던 자료들을 모아 전시해둔 곳이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개인박물관이었다. 나오면서 만약 서울에서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어 민간인들에게 저지른 일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있다면 온전했을까 하는 자괴감이 생겼다.

집단적으로 자기성찰이 없는 일본인과 개인적으로 용기있게 자기성찰을 하는 일본인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아베정권의 저돌적 행태를 보면서 일본인들의 집단의식 밑바탕에는 신도로 포장된 샤머니즘적 집단이기주의가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었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이나 기독교인 중에는 그런 정신세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기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일 정부의 지도자들간에 어차피 기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밀려서는 안 되겠지만 일본을 만만히 봐서는 이길 수 없다는 뼈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종의 사전 행사로 국제 학술대회가 당시 수유리에 있던 크리스찬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렸다. 세미나를 마친 후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선생과 김지하 선생을 모시고 대담을 진행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분의 태도 차이였다. 오에 겐자부로 선생은 일본 작가이면서도 일찍이 서구 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고 천황제를 비롯해서 일본의 정치와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던 지식인이었다.

대담을 시작할 때 김지하 선생은 소파 의자의 등에 한껏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얹은 채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 오에 겐자부로 선생은 소파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앞으로 구부린 겸손한 자세였다.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김지하 선생이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 사물놀이의 꽹과리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몇 분의 몇 박자인지 아세요? 무한대분의 일박자입니다. 이런 신명이 넘치는 민족이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오에 겐자부로 선생은 다소곳이 숙였던 몸을 일으키더니 역질문을 했다. “김지하 선생님, 한국 사람 개개인은 일본 사람들보다 크고 강합니다. 그런데 양국 간에 정치든 경제든 협상을 하면 한국이 번번이 지는 것을 봤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오에 겐자부로의 역질문에 당당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안기석 장로도서출판 ‘세상의 모든 선물’ 대표
안기석 장로
도서출판 ‘세상의 모든 선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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