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와 세계주의 사이에서
애국주의와 세계주의 사이에서
  • 정종훈 교수
  • 승인 2019.08.2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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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의의 지평을 담고 있는 애국주의와
애국주의적 덕목에 충실한 세계주의를
동시에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나라는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녹록치 않은 상황에 있다. 평화체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는 듯 했던 남북관계가 한미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북미관계의 봉착 등으로 인해 정부 차원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교류조차 차단되고 있다. 한일관계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의 이유로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사드배치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는 한중관계는 미국이 만에 하나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한다면, 사드배치 당시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대립적인 관계로 나아갈 위험 앞에 있다. 그렇다면 동맹이라 말하는 한미관계는 어떠한가? 미국은 한미관계보다는 미일관계에 우선적 비중을 두고서 지소미아를 축으로 안보를 위한 한미일 군사관계의 결속을 요구하는 한편,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방위비의 증액과 이란 제재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며 한국을 곤란에 빠뜨리고 있다.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 있는 양국의 시민들은 적대적 관계를 강화하는 형국이다. 한국의 시민들 전반은 일본산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운동을 전개하면서 일본의 기업과 관광지역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의 우익단체 시민들은 반한혐오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며, 일본의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기어이 중단시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양국 시민들의 갈등과 대립은 예사롭지가 않다. 이러한 시점에 떠오르는 단어가 애국주의이다.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감정은 특정 국가와 대립할 때 생겨나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시민들이 보여주는 애국주의는 어떤 한국인들에게는 적대적인 반일의 형태로, 어떤 한국인들에게는 합리적인 극일의 형태로, 어떤 한국인들에게는 옹호적인 친일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애국주의의 명분과 달리 한국인들 스스로 입장과 주장의 차이로 인해 균열가운데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동일하게 창조하셨음을 고백한다. 예수께서 막힌 모든 담을 허물어 하나가 되게 하셨다는 보편적인 구원의 역사에 의지한다. 예수께서 교훈하신 평화의 사람이 되라는 팔복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원수 사랑에서 드러난다는 가르침을 주시한다. 그러한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까? 독일의 신학자 한스 큉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요구에 비추어 세계윤리를 제안한 바 있다. 세계적인 지평에서 자유와 함께 정의를 수립하여 가난한 자와 부자, 권력자와 사회적 약자의 차별을 타파하고, 기아와 궁핍과 죽음의 구조를 혁파하며, 인권침해의 요소를 극복하자고 한다. 동등성과 함께 다원성을 인정하여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인 배척을 타파하고, 다른 세계에 대한 멸시와 소외를 해소하자고 한다. 형제애와 자매애를 함께 강조하여 남성과 여성의 공동체성을 모색하고, 여성과 남성을 갈라놓는 차별을 척결하며, 여성에 대한 평가절하와 몰이해를 극복하자고 한다.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여 군비확장과 군사주의적 구조를 거부하고, 인권의 미명 아래 자행되는 전쟁을 거부하며, 갈등의 침묵에 머물기보다 평화를 증진하는 세계질서를 추구하자고 한다. 생산성과 함께 환경과의 연대를 모색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타파하고,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극복하며, 자연을 파괴하는 삶의 양식과 생산방식을 극복하자고 한다. 관용과 함께 일치를 도모하여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을 해소하고, 종교의 자유를 배척하는 편협성을 극복하며, 용서와 개혁을 이루자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국의 시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다. 한국의 국익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성서에 근거한 신앙인의 삶을 배제할 수도 없다. 한국인으로서의 시민권을 행세해야 하지만, 타국인의 인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보편 인권은 특정 국가에 귀속된 시민권보다 언제나 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국에 대한 애국주의를 소홀히 할 수 없겠지만, ‘한 지붕 아래 더불어 사는 인류’라는 인식의 세계주의도 함께 견지해야 한다. 극악하게 전개되는 한일관계와 녹록치 않은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만은 감정이나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고, 냉철한 이성 아래서 한스 큉의 제안처럼 그리스도인의 기준을 만들어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세계주의의 지평을 담고 있는 애국주의와 애국주의적 덕목에 충실한 세계주의를 동시에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그리스도인과 일본의 그리스도인이 그리고 미국의 그리스도인과 각국 나라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롬12: 2) 서로 연대하며 실천한다면, 작금의 많은 문제들이 많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정종훈 교수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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