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중국 3대혁명음악가 정율성, 그의 음악은 총칼보다 더 강했다.
항일운동 중국 3대혁명음악가 정율성, 그의 음악은 총칼보다 더 강했다.
  • 김농률 지역기자
  • 승인 2019.08.10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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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출신 ‘중국혁명음악의 대부’
작곡활동과 항일운동 병행 전개
‘연안송’‘팔로군행진곡’ 중국인들 지금도 애창
그리운 고향 땅 못 밟고 중국에서 영면
오페라 ‘망부운’ 광주서 57년 만에 첫 무대 ‘감격’
시, 광주 대표브랜드 오페라로 육성 계획
“본격적인 한중문화교류의 교두보 될 것” 기대
포스터
포스터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중국에서 활동한 중국 최고의 조선인 음악가(작곡가)이자 중국공산당의 100대 건국공신 중 한 사람이다.

광주광역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지난 713일부터 광주 근대문화유적의 성지이자 정율성 선생의 고향인 광주 양림동에서 근대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청년 정율성, 광주 음악으로 깨어나다!’ 음악회를 총 5회에 걸쳐 선보이고 있다.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 음악가의 고뇌와 아픔, 사랑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미래 섹션으로 나누어 시간 여행하듯 진행하는 이 음악회는 그의 음악을 시대별 장르별로 소개한다. 다양한 장르 음악가들의 협업으로 매회 출연진이 바뀌어 정율성의 색체를 다양한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했다. 무대가 마련된 오웬기념각을 배경으로 출연진들의 근대식 복장과 소품들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한다.

지난 713일 문을 연 첫 공연은 과거 섹션으로, 정율성의 초년시절 서양음악과 한국전통음악의 충돌과 융합을 피아노 트리오, 재즈, 국악퓨전으로 표현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선율로 평화의 비둘기’ ‘뗏목가‘ ‘연안송등 정율성의 대표곡들을 연주했고, 국악밴드 구각노리는 서양악기와 전통악기의 혼합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정율성의 음악세계를 재해석해 들려줬다.

두 번째 공연 20일에는 박지현의 피아노 반주에 테너 이상화, 소프라노 김지영이 연안송’ ‘매령삼장’ ‘물길에 내 마음을 싣고등을 노래했다. 이어 해금, 피아노/기타, 콘트라베이스, 드럼/대금으로 구성된 재즈밴드 모래가 정율성의 음악세계를 ASMR(바람 등 자연의 소리)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한시)와 멜로디로 표현했다.

27일 세 번째 공연은 현재 섹션으로, 그동안 꾸준히 연주되어온 정율성의 음악을 그랜드 오페라단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테너 송태왕, 소프라노 김선희, 피아노 김은희, 첼로 이후성이 매화를 읊노라’ ‘매령삼장등을 공연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하모니를 선사했다.

1930년대 양림, 당대의 양림을 배경으로 청년 정율성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당대의 청춘 이야기를 한 편의 뮤지컬같은 쌀롱 뮤직으로 재연했다.
1930년대 양림, 당대의 양림을 배경으로 청년 정율성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당대의 청춘 이야기를 한 편의 뮤지컬같은 쌀롱 뮤직으로 재연했다.

 

83일 네 번째 공연은 당대의 양림을 배경으로 하는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쌀롱 연극으로, 그동안 1930년대 양림의 근대 이야기를 다양한 시도로 펼쳐온 ‘1930모단걸다이어리가 무대를 꾸몄다. 양림쌀롱을 운영하는 마담L이 스토리텔러가 돼 음악가 정율성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당대의 여성과 청춘들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감상한다.

마지막 810일 선보일 다섯 번째 공연은 미래 섹션으로, 청년음악가들이 젊은 감각으로 정율성 음악을 재해석해 선배 정율성에게 헌정하는 무대로 꾸며진다. 재즈그룹 리페이지가 정율성의 물길에 내 마음을 싣고를 자신들의 편곡 버전으로 들려주며, 싱어송라이터그룹 라이브오는 정율성의 오페라 망부운을 새로운 시각으로 편곡해 노래한다. 어쿠스틱팝그룹 우물안개구리연안송을 재해석해 연주한다.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이번 음악회는 광주 출신 중국 3대혁명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음악세계와 삶을 조명함으로써 정율성의 브랜드화 및 문화상품화 가능성을 찾고, 근대 문화운동을 파급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신문화 발상지인 오웬기념각에서의 공연을 통해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정율성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호남 기독교의 근거지이자 독립운동 중심지인 광주 양림동에서는 정율성을 비롯해, ‘플라타너스’ ‘가을의 기도시인 김현승(1913~1975), 독립운동과 한센병 환자 구호에 평생을 헌신한 최흥종 목사(1880~1966) 등 광주 태생 근대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일제의 침략이 있고 난 4년 후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1914~1976)은 어린시절 외적을 물리칠 때 북과 나팔로 아군의 사기를 돋우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 했다. 항일 음악가가 되어 나라를 독립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율성의 의식세계 안에 있었던 음악을 통한 항일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후에 그의 삶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정율성은 큰 외삼촌인 최흥종 목사의 집에서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정율성은 외가의 영향으로 음악에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가 다니던 광주YMCA, 양림교회, 선교사촌에서 서양음악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의 부모는 지식인들로 자녀들을 항일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보낼 만큼 민족정신이 투철했다.

41녀의 막내로 태어난 정율성은 1933년 셋째 형 정의은이 중국 난징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2기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광주에 방문하자, 전주신흥학교를 중퇴하고 누나 정봉은과 함께 항일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로 향한다. 그리고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한다. 의열단이 부여한 비밀업무로 난징의 고루전화국에서 일본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했으며, 신분 은폐를 겸하여 상해를 오가며 소련 레닌그라드음악원 출신 여교수 크리노와에게 성악, 작곡,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배웠다. 정율성이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시기에 원래 이름이었던 부은(富恩)’ 대신 선율로써 성공하겠다는 의미에서 율성(律成)’으로 개명했다.

정헌기 감독은 한국의 근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광주의 민주화의 뿌리는 이 지역 의병들과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결합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어 그는 정율성 선생님이 1년여밖에 안 된 짧은 음악수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3대 혁명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사들에 의한 영적 감화력과 근대 개화사상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율성은 2005년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 중 여섯 번째로 거론될 만큼 중국혁명음악의 대부로서 우리나라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하고 존경받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팔로군 행진곡1949년 중국 건국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군가로 정식 채택되었고, 이어 88725일 덩샤오핑 주석의 직권으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지정됐다. 지금까지도 중국 군대와 학교 등 공식행사에서 이 노래가 불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이념의 벽 탓에 독립운동 역사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었다.

중국인으로 오인할 만큼 현대 중국역사에 깊이 개입한 정율성. 그의 고향 광주시 양림동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 정율성로가 있고, 흉상이 세워져 있다. 광주 사람들이 그가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으로 기념해야 할 인물임에도 국가가 하지 않으므로 그의 고향 광주가 나서서 한다. 매년 10월에는 광주시가 주최하고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해 사흘간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의 문화광장 코너는 정율성국제음악제에 대해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면서도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중국 3대 음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삶과 음악성을 재조명해 업적을 기리고...(중략)”라고 설명한다. 정율성의 항일투쟁과 음악적 성과가 음악제 개최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광주문화재단 김윤기 대표이사는 정율성음악축제가 한 단계 성장해서 광주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축제로 자리잡게 되길 희망한다.”고 뜻을 밝혔다.

팔로군 행진곡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작곡한 연안송연수요는 중국인들은 지금도 애창하고 있다. 매회 개최되는 전승절 행사는 물론,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그의 음악이 연주됐고 하얼빈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 내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중앙대 국악대학장과 한국음악학회장 등을 역임한 고 노동은 교수가 정리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항일음악 330곡집>을 보면 “‘연안송은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과 저우언라이(주은래) 주더(주덕) 등이 이끌었던 항일혁명의 성지 옌안을 찬양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중국인들에게 대표적인 항일가이자 서정적인 가곡으로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작곡 활동과 함께 정율성은 19417월부터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비롯해 이듬해(1942) 12월부터 타이항산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444월 다시 옌안으로 돌아온 뒤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 황해도 해주에서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여기서 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1947년 평양으로 들어와 조선인민군 구락부장을 지냈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됐다. 그리고 6,25전쟁 중인 19509월 중국으로 갔다가 12월에 중국인민지원군의 일원으로 돌아와 전선 위문활동을 전개했다. 1951년 저우언라이의 요청으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음악활동에 몰두하던 중 1956년 북한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되는 것으로 보고 중국 국적을 얻어 정착했다. 이후 중국에서 작곡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협박과 함께 그의 친구들에게서 받은 원고들을 수색당해 많은 악보들이 유실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러다가 마오쩌둥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베이징 근교의 한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 도중 심장병으로 쓰러져 6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광복을 그토록 원하여 항일의 시대적 숙명 앞에 음악가로서, 혁명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정율성, 그러나 조국의 해방 뒤에도 계속되는 내부 혼돈으로 인해 북한에 정착할 수도, 고향 광주로 돌아갈 수도 없던 그는 결국 중국으로 들어가 힘들게 살다가 끝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연안송-정율성 이야기를 쓴 박건웅은 전쟁으로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일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끈은 바로 예술이었다.”결국 한 사람의 노래는 총칼보다 강했고, 혁명 그 이상의 힘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한편, 중국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오른 정율성의 오페라 망부운(望夫雲)’이 지난 329, 30일 이틀 동안 광주문화에술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1962년 북경국립오페라단이 초연한 뒤 57년 만에 고향 광주에서 감격적인 첫 선을 보인 것이다. 한국 오페라의 거장 정갑균 감독과 한국, 중국의 정상급 성악가들이 2시간 동안 무대를 꾸몄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은 이 작품을 앞으로 광주 대표브랜드 오페라로 키워낼 계획이다. ‘망부운같은 대작을 대표브랜드로 육성하면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본격적인 문화교류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광주시 주도로 유적들을 재정비하고 정율성 기념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중국인들이 정율성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광주를 많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제 수탈에 이어 지금 침략의 야욕으로 악취가 진동하는 이 나라 한반도에 정율성 선생의 총칼보다 더 강하고 매서웠던 그 표효가 일본과 인간성을 상실한 이 시대 모든 이들을 향해 울려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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