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동식 목사, “한국교회는 무너져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터뷰] 신동식 목사, “한국교회는 무너져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8.05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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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청년수련회 '튤립컨퍼런스' 대표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얻을 수 없다.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이면서 문화와 설교연구원 대표, 프란시스 쉐퍼 기념 도서관장,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생활실천운동 본부장, 개혁파 선교 협의회 대표, 기윤실 생활실천운동본부장을 담당하고 있는 신동식 목사는 질문하는 목회자다. 신 목사가 맡은 직책뿐만 아니라 「정직한 질문 정직한 답변」(토라), 「변화는 가능하다」, 「기독교 세계관이 상실된 세상에서」, 「빠름에서 바름으로」, 「선교는 교회 세움이다」(이상 우리시대) 등의 저서들이 교회와 목사, 성도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하고자 함을 알려준다. 8월 8일부터 2박 3일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개혁주의 청년수련회인 ‘튤립컨퍼런스’ 앞둔 신 목사에게 목회자와 교회에 대해 물었다.

대담자 정성경 취재부장

 

"한국교회는 무너져도 그리스도의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동식 목사. 정성경 기자

 

“성도와 직분자로 용어 개혁이 필수

기독교정신은 자발적 불편

가나안 성도가 아니라

도피성도로 불러야…”

-이 시대에 목회자란 무엇인가?

목사는 설교자다. 한국사회가 급변하면서 목사의 정체성이 많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목사의 타락과 이에 대한 비판이 생기고, 은퇴할 때는 더 부끄러운 일이 생긴다. 목사가 설교자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직분의 동등성이 생긴다. 한국교회에서 용어의 개혁이 없으면 교회 개혁은 없다. 목사와 평신도를 편 가르기 하는데 그 자체가 심각하다. 이러한 구조는 로마 카톨릭이 만들어 놓은 사제주의, 사제와 평신도라는 계급주의에서 온 것이다. 한국 개신교가 아무 의식도 없이 받아들였다. 평신도가 교회개혁을 외치는 목적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건데, 주적이 목사다. 교회는 성도의 동등성과 직분의 동등성이 존재하고 다만, 설교자로서, 장로로, 집사로 질서가 있는 것이다.

교회개혁은 직분자 개혁이다. 개혁이라 하면 다들 목사나 장로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목사가 부패한 것은 맞다. 인정은 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교회가 건강하려면 직분자 개혁이 일어나야 된다.

-오늘날 교회가 감당해야 할 시급한 일이 있다면?

목사, 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고 기준이 흔들렸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건데 그러기 위해 먼저 교회에서 목사가 바른 말씀을 잘 전해야 하고, 교회가 지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교회가 철저하게 지역성을 가지고 지역민들에게 복음이 기쁜 소식임을 드러내는 일들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가족을 만들기 원한다. 가정교회가 좋지만 우리가족, 우리식구만을 위한 교회는 매우 위험하다. 우리교회 모토는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흩어지고, 교회가 되자’다. 모이는 것은 복음을 듣기 위해서고, 흩어지는 것은 복음을 나누기 위함이고, 교회가 되는 것은 복음을 살아내자는 것이다.

교회는 지역교회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갈라디아서에서처럼 믿음의 가정, 교회, 그리고 열방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가정에서 열방으로 넘어갔다. 가족중심이라는 것을 밖에서는 배타주의라고 부른다. 사회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지역적 무관심이다. 심각한 문제다.

성경을 잘 보면 된다. 안디옥교회를 보면 복음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공동체를 세웠는데 설교자가 없어서 바나바와 바울을 부른다. 교회가 형성되고 장로가 세워지니까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 지역에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1년 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보낸다. 지역에서 견고하게 되고 해외선교를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세우는 교회마다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중에 예루살렘이 어려워지니까 마게도냐 교회들이 예루살렘을 돕는다.

또한 기독교가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별히 종교개혁자들이 한 일이 칼빈이 제네바를 개혁하고 난 뒤에 제네바에서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고 브라질로 선교사를 보낸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안디옥교회와 같은 방식이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그림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것은 지역성보다는 정치성을 더 띠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발적불편이다. 목사의 영광은 가난함, 자족함이다. 칼빈처럼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은 비석 하나 남겼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유교주의의 입신양명에 빠져 큰 인물은 큰 교회를 해야 된다고 강하게 박혀져 있다. 목회자가 자발적 불편운동을 펼치는 것이 목회자가 사는 길이다.

-

교회개혁은 곧 직분자개혁이라고 말하는 신동식 목사. 정성경 기자

‘가나안 성도’를 ‘도피성도’라고 불러야 된다고 주장하셨다. 왜 그런가?

‘가나안’이라는 용어를 ‘교회 안나가’로 썼을 때 가나안 성도는 신학적으로 어패가 있는 용어다. 성도는 교회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건데, 교회 안 나가는 교회? 가나안 성도가 무교회주의를 추구한다면 쓸 수 있다. ‘교회 없다’는 것을 추구한다면 가나안 성도를 다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교회가 무엇인가 논의하면 되지만, 기존의 교회가 존재하고 교회를 안 나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라면 ‘도피성도’가 맞다. ‘나는 성돈데 교회로부터 도피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싫어한다. “내가 무슨 도피인가? 의지적으로 나간거지”라고 한다. 그래서 쓴 거다. 의지적으로 나갔다면 심각한거다. 왜냐면 신앙의 정의적 측면에서 떳떳하지 않은건데 떳떳한 생각을 갖는 것이 불충이다. 그리고 불편을 가져야 된다. 불편해야 돌아가려고 한다.

문제는 왜 도피했냐는 거다. 가장 큰 원인은 목사다. 목사가 목사로서 정체성, 소명이 없으니까 성도들이 상처받고 떠나게 되는거다. 또한 교회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투명하지 않을 때, 거짓된 교회일 때 참된 교회를 찾아가야 된다. 그래서 도피성도는 참된 교회를 찾는 여정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정이 길지 않았으면 한다.

-튤립컨퍼러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

10년 됐는데 핵심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생각하는 청년’들을 세우자고 하는 게 목적이다. 감성적이고 강제적인 신앙고백을 이끄는 수련회들을 보면 찬양 중심적이다. 나도 그동안 방방 뜨는 수련회를 해봤지만 무엇이 남았나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사경회 중심의 수련회를 하고자 했다. 드럼, 기타 없이, 피아노로 시편 찬송만 부르면서 성경으로 시작해 성경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에 맞게 교수나 목회자들을 통해 2박3일 동안 말씀을 듣고 조별로 의견을 나눈다.

TULIP은 칼빈주의 5대 교리 Total Depravity(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Limited Atonement(제한적 속죄), Irresistable Grace(불가항력적 은총), Five Points of Calvinism(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약자이다. 이 시대의 기독 청년들이 튤립처럼 화려하게 이 땅 가운데 쓰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이 시대에 개혁주의 신앙의 실천이란?

개혁주의신앙은 종교개혁적 신앙이다. 핵심은 오직 성경이다. 성경 중심으로 성경이 명령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 성경을 비평적으로 바라봐야 된다고 하니까 기준이 상실된다. 성경이라는 터와 기준이 흔들리니까 예수 믿으라는 자신감이 없어진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틀릴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시작이 기준을 해체 하는 거다. 기준은 사라지고 의견만 있다. 우리 인권의 기준은 성경이었다. 기독교인의 싸움은 기준을 세우는 싸움이다. 성경이 사라지면 세상과 우리가 다를 게 없다. 도덕적 기독교만 남으면 무너진다.

-오늘날 교회 성도와 직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한계시록 20장 말씀처럼, 한국교회는 무너질 수 있어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목회자들이 자신의 소명이 선명하면 좋겠다. 목사는 설교자다. 목회는 장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설교는 설교자로 소명을 받은 자만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어려운 시대에 쓰임 받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공부와 설교준비에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의 크고 작은 것은 주님의 소관이다.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분명한 소명을 가진 목회자들을 격려하고, 섬겨주면서 도와주면 좋겠다. 교회 성장주의는 끝났다. 서로 상생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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