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들어서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일본의 경제보복은 우리나라의 대법원의 징용배상판결에 대한 대응형태로 나타났다. 우리정부가 맞대응을 선언하고 나오자 일본은 2차, 3차 보복을 예고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양국국민들의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이 고조되면서 한일관계는 당분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강대강의 대결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변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정치적 속셈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아베정권이 참의원선거를 이기기 위한 전략과 헌법 개정을 위한 수단으로 감행한 측면이 있다. 우리 정치권도 일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파적 속셈을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계산도 깔려있다. 한국의 경제적 아킬레스건을 공격해서 한국의 경제적 추격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국제정치적 노림수도 있어 보인다.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고, 한미일동맹의 틀 속에 묶어놓으려는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핵심은 과거사 문제이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관한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태의 본질이다. 물론 일본이 몇 차례 사과를 한 바가 있다. 일본천황을 비롯하여 여러 명의 총리들과 장관들이 사과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의 양심세력과 국민들도 사과도 하고 성금도 보낸 일이 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과거를 부정하는 교과서 개정문제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그리고 독도영유권 시비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그 진정성을 의심받아왔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의 과거청산과 관계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반일감정과 일본 내에 혐한감정이 짙은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는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온 슬로건이 있다. 바로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관계는 항상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처럼 지정학적으로 특수 관계에 놓여있는 나라와의 관계는 정말 잘 관리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이 왜 경제보복 카드를 내밀었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그 대응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제 3자적 관점 다시 말해서 객관적 관점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관점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면 오판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략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과는 지정학적으로 함께 하는 이웃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본과의 관계는 장기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관리해 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도광양회의 때와 굴기의 때를 전략적으로 정해서 국제관계를 관리하듯 일본에 대해 언제 참고 기다리며 또 언제 대등하게 맞설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전략적으로 설정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따라서 주도면밀하게 일본과의 관계를 관리해 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관계를 성숙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양국과의 관계를 과거를 청산하고 함께 미래지향적 관계로 성숙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깊은 대화와 신뢰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사과와 용서, 배상과 인정의 과정을 밟아서 과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을 해소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요동치는 국제관계의 상황변화에 따라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들의 지혜로운 대처로 속히 한일관계가 정상화되고 나아가 더욱 성숙한 관계로 발전해가기를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