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말과 글이 삶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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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혁 객원기자
  • 승인 2018.03.12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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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순례⑥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를 걷다

지난 주 우리 국민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뉴스는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소식이 아니었다. 지난 주 국민들은 안희정 지사의 비서 성추행 사건에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비서 성추행 사건이 폭로되는 바로 그 날에도 안희정 지사는 국민들 앞에서 누구보다 정의로운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투 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주 국민들은 삶보다 말이 앞섰던 안 지사의 언행 불일치에 크게 실망했다.

20세기 신학의 역사에서도 안희정 지사의 성추행 사건처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바로 미국의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1927-1997)의 성추행 사건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강조한 미국 최고의 기독교 사회 윤리학자가 수십년 가까이 수십명의 여성을 집요하게 성추행 했기 때문이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는 바로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과 권력남용에 대한 메노나이트의 반응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복기 메노나이트 선교사가 번역하여 2018년 2월 13일 도서출판 대장간에서 출판하였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를 번역한 김복기 선교사는 이 책을 번역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가 존경했던 존 하워드 요더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것과 그에게 성추행 당한 사람들의 고백을 귀담아듣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이라는 야수의 송곳니를 뽑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소망했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는 한 사람의 저자가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을 조사해서 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미국의 메노나이트 잡지인 The Mennonite Quarterly Review의 2015년 존 하워드 요더 성추행 특집호를 번역하였다. 이 특집호에서는 여러 신학자들이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 사건의 실체와 성추행 사건의 경과 그리고 메노나이트 교단의 반응을 논문 형식으로 기고하였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교회 리더들에 의한 성폭력과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

-샬롬의 끈덕진 희망-성추행과 트라우마에 대한 회중의 반응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빛을 추구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

-아나뱁티스트 비전 쇄신

-왜 “화려하고 고상한 실험”이 실패했다 하는가?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는 단순히 존 하워드 요더만의 성추행을 파헤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왜 이토록 성추행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루스 크랄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여성들이 종속적이거나, 열등하거나, 남자들의 성적 재산이라고 여겨질 때, 성추행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을 향한 폭력이 행사된다. 자신들의 자리에 여성들을 끼워 넣는 것은 여성들을 유린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73p.

 

1970년대부터 존 하워드 요더는 미국에서 평화신학자로 명망을 얻었다. 요더의 유명세 덕분에 요더는 여성과 단둘이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더 쉽게 조성할 수 있었다. 1973년에 요더는 자신에게 페미니즘을 배우러 온 여학생을 자신의 차 옆자리에 앉히고, 칼빈신학교로 강의를 가는 길에 그 여학생을 성추행했다. 심지어 그 여학생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음에도 말이다. 요더의 성추행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신학적 명망을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그에게 여성은 신학의 주제였으나, 존중과 섬김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의 심리는 과연 어떠할까? 캐롤린 홀더리드 헤겐은 성추행 이후 피해자들이 받게 되는 트라우마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성추행으로 인해 초래된 트라우마는 온갖 상실감들을 단계적으로 경험하도록 만든다. 안전감 상실, 신뢰 상실, 자존감 상실, 장소의 상실, 존엄 상실, 가족 및 공동체의 상실, 순결함 상실, 사랑에 대한 기대감 상실, 관점의 상실, 기능 상실, 의미 상실, 목적 상실, 믿음 상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상실로 인해 텅 빈 인생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고, 그 자리에 죽음, 지속적인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 과민반응, 수치심, 우울증이 들어선다. -149p.

존 하워드 요더와 관련된 두 권의 상반된 책
존 하워드 요더와 관련된 두 권의 상반된 책

존 하워드 요더가 쓴 『예수의 정치학』은 미국의 “크리스챠니티 투데이”가 선정한 20세기 미국 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서 100권 가운데 5번째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책은 기독교 사회 윤리의 이정표를 제시한 기독교 평화주의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요더의 비폭력 기독교 윤리는 그의 폭력적 성추행으로 인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였다. 그의 평화신학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의 위대한 평화신학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건 부인할 수 없다. 존 하워드 요더의 모순된 삶을 통해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말보다 사람이 먼저다. 글보다 삶이 먼저다. 신학보다 신앙이 먼저다. 삶보다 말이 앞섰던 요더가 아닌 말보다 삶이 앞섰던 예수를 닮고 싶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독서는 그 자체가 기도이며, 구원의 여정이며, 진리를 향한 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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