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상처가 기도되어 소망으로 피는 곳
철원, 상처가 기도되어 소망으로 피는 곳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7.2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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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특집-'그곳에 가면 교회가 있다']
철원으로 떠나는 기독교 역사 여행
‘철원에서 한국교회의 아픈 어제와 소망의 오늘을 만나다’ 1937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철원제일감리교회는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현실 앞에 1950년 무너졌지만(사진 앞에 무너진 터) , 성도들의 기도와 소망으로 2013년 새롭게 세워진 철원제일감리교회 복원기념예배당. 정성경 기자

생명으로 지킨 복음과 교회의 현장

구국의 심정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북으로 향하는 자유와 평화의 기도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여름방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온 가족의 여름 휴가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알아본 지역이자, 한국 근대 역사와 기독교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철원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최북단이면서 6·25전쟁의 격전지로 유명한 철원군은 1953년 정전협정이 된 이듬해인 1954년부터 민간인 거주가 허용됐을 정도로 군사고장이며 DMZ 생태평화공원으로도 유명하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를 따라 북으로 가다보면 철원제일감리교회 복원기념예배당(이상욱 목사)과 그 옆에 신비로운 건물 잔해가 보인다. 외국에서나 볼 법한 이 건물 잔해는 1937년에 완공된 철원제일감리교회 두 번째 예배당이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1905년 장로교 웰번(Artker G. Welbon)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지만 1907년 선교구역분할협정으로 철원이 감리교 선교지역이 되면서 감리교회가 된다. 당시 교회는 영서북부 지역의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의 중심지의 역할을 감당했다. 1937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이화여대를 설계한 윌리엄 보리스(W.M. Voris)의 설계로 건평 198평, 1층은 교육관 10개의 분반공부방과 2층은 예배실로 완공됐다. 당시 성도수가 600명으로 철원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한강 이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유명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10일 철원제일감리교회 박연서 목사와 교회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으며, 3.1운동 이후에도 항일운동단체인 ‘철원애국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39년에 철원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강종근 목사는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으며, 특별히 그의 설교는 애국심과 독립에 관한 내용이 많아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1941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의해 구속되어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서대문 형무소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서

사랑을 외친 고 서기훈 목사의

순교기념비가 있는 ‘장흥교회’

순담계곡에 고 박경룡 목사가 세운

개신교 최초 ‘대한수도원’

1942년 6월 3일 당시 39세였던 강 목사는 “마음이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신사참배 반대거부 운동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해방이후에는 철원이 북한지역이었기에 공산주의에 저항하며 큰 수난을 겪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의 민족사의 비극 앞에서 철원과 철원제일감리교회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1937년에 건축한 교회가 무너졌으나 교회 건물의 아름다움과 신앙의 가치가 인정되어 2002년 근대문화유산 23호로 지정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2013년 무너진 구 철원제일감리교회 예배당 옆에 ‘철원제일교회 복원기념예배당’을 세웠다. 복원기념예배당에는 역사전시관이 있어 철원제일감리교회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교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철원제일감리교회 내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전시관. 정성경 기자

현재 철원제일감리교회를 담임하는 이상욱 목사는 “교회를 계승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라 그 교회가 만들어왔던 것들을 현재 가운데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철원제일감리교회의 복원은 교회건물을 건축할 뿐 아니라, 감리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선교적, 신앙적, 역사적 유적으로 복원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원제일감리교회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협력했던 아름다운전통, 독립운동을 통한 애국애족의 전통,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한 거룩한 신앙의 전통, 봉사와 계몽을 통한 지역선교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자한다”고 했다. 또한 복음통일과 남북의 화해, 한국과 일본의 화해의 장의 역할을 하며,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의 장소가 되어 이를 위해 교육하며 함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자 매주 목요일 오전11시에 철원목요통일기도회를 하고 있다.

노동당사. 정성경 기자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노동당사가 있다. 1946년 초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해 그 해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1,850㎡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6‧25전쟁 당시 곳곳에 포탄을 맞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노동당사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백마고지 위령비와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백마고지란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여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아군과 적군 2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장흥교회. 정성경 기자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동송읍 장방산길에 장흥교회(한찬희 목사)가 있다. 1920년 철원제일교회 지교회로 세워진 장흥교회는 한성옥 목사가 고봉기 성도 집에서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설립됐다. 이 곳은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명인 신석구 목사를 비롯해 서기후, 명관조, 박경룡 등의 목회자들이 거쳐 갔다. 12대 담임 목사로 부임한 박경룡 목사는 1940년 10월 한탄강 순담계곡 옆에 우리나라 최초의 기도원인 ‘조선기도원’을 설립하고 항일구국기도터전으로 삼았다.

대한수도원. 출처 한국기독교회사

순담계곡은 금강산 축소판이라 불렸으며, 일제말기였던 당시 기도원이라 할 수 없어 ‘군마양성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말 몇 마리를 풀어놓고, 장흥교회 교인들을 동원해 계곡 아래 토담집을 지어 기도원을 시작했다. 현재 대한수도원이라 불리는 이곳을 감리교신학대학교 이덕주 교수는 “과거 신비주의적인 기도원운동의 효시로서 한국 기도원의 은사집회의 모태 격이 되었다”고 소개한바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았지만 철원지역은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공산치하에 들어간다. 1946년 3월 장흥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반공단체인 ‘신한애국 청년회’가 결성됐으나 8월 체포되어 감옥에서 죽거나 함경도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다. 1947년 서기훈 목사가 부임해 교회는 안정되는 듯 싶었으나 유엔군의 도움으로 전선이 역전되면서 철원은 남아있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행해진 ‘신한애국 청년회’에 대한 보복으로 혼란과 갈등을 맞이한다. 이 때, 서 목사가 마을 청년들을 모아놓고 “내가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으냐?”라며 꾸짖어 공산주의자들을 풀어주도록 한다.

그러나 1950년 다시 철원을 점령한 북한군이 반공정신이 투철했던 장흥교회 청년들을 이유로 12월 31일 서 목사를 끌고 간다. 이에 앞서 서 목사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12월 13일 찾아온 권오창 장로에게 “死於當死 非當死 生而求生 不是生(죽을 때를 당해서 죽는 것은 참다운 죽음이 아니고, 살면서 생을 구하는 것은 참 생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1951년 1월 8일 71세로 순교했다. 서 목사의 마지막 말은 그의 순교기념비에 새겨져있다.

한찬희 목사는 “장흥교회나 대한수도원은 본질에 충실하려고 했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며 “성도들에게 상황은 늘 같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철원을 찾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곳에 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아는 만큼 감동을 수 있다”며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역사적인 이야기도 알고 간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에 도움과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상욱 목사도 “1950년 한국전쟁의 상흔이 69년이 지난 지금도 철원에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남과 북의 분단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철원”이라며 “이 땅에 다시는 한국전쟁과 같은 아픔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구국의 기도와 동시에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에, 복음통일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민족이 되게 해달라는 간절함으로 부르짖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며, 자유와 평화가 있는 민족이 되는 그 날까지 기도는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분단의 현장인 철원에 오셔서 눈으로 보시고 마음을 다하여 간절하게 기도함이 모아져서 통일의 역사를 이루기를 소망하며 평화와 통일의 땅 철원으로 순례자들을 초청한다”고 덧붙였다.

철원을 둘러보게 된다면 절벽과 협곡이 절경을 이루는 한탄강과 광복 직후 김일성 치하에서 시공되었다가 휴전 직후 이승만 치하에서 완공되었다는, 남북 합작의 아치형 다리 승일교(昇日橋), 강 중앙에 1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우뚝 솟아 있는 고석정도 방문하면 좋다. 또한 한탄강은 여름 레저 스포츠인 래프팅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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