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현장! 동네 흔한 아저씨들이 가해자들이었다
미투 현장! 동네 흔한 아저씨들이 가해자들이었다
  • 고기복 기자
  • 승인 2018.03.09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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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 한국사회가 관심 가져 달라 호소하다
피해 사실조차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주여성 현실에 주목해야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장에 적힌 이주여성 미투!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장에 적힌 이주여성 미투!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로 시작하는 시 ‘괴물’을 쓴 최영미 시인의 폭로는 시작이었다. 한국 문단을 대표했던 고은 시인이 그동안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던 성추문이 끝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투가 이어짐을 보며 ‘시인은 모름지기’를 썼던 김남주 시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9일(금)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미투’ 간담회장은 많은 참석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가운데도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해 당사자들을 대신해 증언하는 활동가들이 사례를 읽어 내려가다 울컥할 때마다 지켜보던 이들도 표정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언론이 주목한 미투운동 가해자들은 유명인, 권력자들이었다. 고은, 이은택, 조재현, 안희정.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던 이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이주여성 미투 현장에서 거론된 가해자들은 그런 이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주여성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은 마사지 업체 사장, 공장 사장·감독관, 농장주와 같은 평범한 한국남자들이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빠요, 아저씨인 사람들이었다.

#사례1

2016년에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이 결혼식에 친정가족을 초청했다. 결혼식 45일 전에 입국했던 피해자는 결혼식 4일 전에 형부 될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는 필리핀 처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1심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은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례2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어머니를 초청했다. 이 여성의 여동생도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살고 있다. 두 딸이 있는 한국에 왔던 피해자는 딸의 요청으로 사돈댁 농사일을 도우러 갔다가 사돈 친구에게 강간당했다. 친구가 강간하는 동안 사돈은 밖에서 망을 보았다.

#사례3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캄보디아 여성은 입국한 지 두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사장에게 처음 성폭행 당했다. 피해자는 이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부끄러워서 누구한테도 얘기 못했다. 비록 억울했지만 참고 넘어가기로 생각했다. 그러자 사장은 이후로도 반복해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았다.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없었다. 피해여성은 사촌언니에게 도움으로 이주여성쉼터를 알게 됐고 7개월간 법률 공방을 벌여야 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때 사업주 동의가 필요하다.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미등록(불법체류)신분이 된다. 사업주가 가해자일지라도 이주여성노동자가 성폭력피해를 입증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피해여성들을 상담하거나 통번역활동을 하며 지원활동을 해 왔던 이들은 피해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사회에 호소했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통번역을 하는 태국 출신 결혼이주민 니감시리 스리준 씨의 말이다.

“가해자가 평범한 한국남성이라는 점이 이주여성 피해 사건에 관심이 덜한 이유 같다. 이주여성들 피해사실이 더 밝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기를 원한다.”

필리핀 출신 오혜진 씨는 마음이 힘들고 가족까지 걱정하는데도 당하고 있지만 않을 거라며 용기를 낸 피해 여성들을 응원했다.

“어릴 때 성희롱을 당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되는지, 말하면 믿어줄 것인지 걱정을 많이 했었다. 당했다는 것이 증거가 없기 때문에 말로만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까봐 그 답답한 것을 가슴 속에만 담아뒀었다. 피해 이주여성들은 비록 즉시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참 용감한 여성들이다.”

대한민국에서 간혹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이주민들은 주제넘은 패배한 전사들로 치부된다. 혹자는 ‘외국인은 대한민국에서 자기 권리, 인권을 주장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땅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주름살과 상처투성이의 기구한 삶, 피해를 당해도 침묵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이주여성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이는 시인은 찾아볼 수 없다.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삶일진대, 그 누가 다소곳하게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문단 어른 대접받던 시인마저 괴물인 세상에서 ‘관심 가져 달라는’ 호소에 귀 기울일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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