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꽃
고난의 꽃
  • 박혁순 목사
  • 승인 2019.07.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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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는 탑이다. 금이 가고 흠이 있어도 그대로 멋지고 그대로 아름답다. 출처 : 픽사베이
당신과 나는 탑이다. 금이 가고 흠이 있어도 그대로 멋지고 그대로 아름답다. 출처 : 픽사베이

신적 은총에 맞서는 악과 고난의 이유에 관한 해명은 신학적으로 가장 난해하고 까다로운 논제다. 특히 의롭고 무고한 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 사람들은 간혹 냉정한 무신론자가 된다. 반면 인간이 역사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을 견지할 때, 아픔과 불안과 결여가 오히려 우리에게 선한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고 종국적인 완전을 가져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악과 고난이 하나님의 은총과 지혜를 드러내는 배경이 된다고 설명하곤 한다. 이를 테면 시편과 잠언 기자의 다음과 같은 고백,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언 16:4) 하는 진술 가운데 우리는 넌지시 고난과 악의 역설(paradox)를 엿보게 된다. 이러한 각성이란 악과 고난이 인간의 실존에 성숙과 고양을 가져다준다는 교훈과 다름이 아니다.

악과 고난은 인간이 예기치 못한 작품들을 초래한다. 삶의 평온과 권태가 악과 고난으로 인해 전복되고 기경(起耕)되면서, 인간은 긴장감 넘치는 모험 속에서 낯선 아름다움과 위대한 서사(敍事)의 주인공이 된다. 그 과정을 감내하고 맞설 때 얻게 되는 것들이란, 마치 모래를 씹어 진주를 만드는 조개처럼 고통을 씹어 만드는 인생의 진주들이다. 비련과 수치와 소외의 재료가 참신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이 되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역설을 두고 독일어에서는 ‘앙스트블뤼테’(Angstblüt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곤 한다. 이것은 ‘불안’을 뜻하는 ‘앙스트’(Angst)와 ‘꽃, 개화, 만발, 정수, 정화(精華)’를 뜻하는 ‘블뤼테’(blüte)의 합성어로서 ‘고난 속에 핀 꽃’이라는 뜻이다. 사실 앙스트블뤼테는 자연생태의 현상이다. 생명 개체가 자신의 생존 조건이 어려워지거나 극렬한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사력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유전자를 후대로 이어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령 뿌리가 뽑힌 꽃나무가 만개한다거나, 뿌리로 번식을 하는 대나무가 죽기 전에 꽃을 피워 내거나, 향유고래가 소화하지 못한 토사물을 고통스럽게 게워내어 값진 용연향을 선사하는 일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 신비로운 현상과 비슷하게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는 절망의 시간을 인고하여 경이로운 생애의 작품을 창출했던 예들 역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남자로서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한 사마천, 정신질환으로 고생했던 니체와 고흐, 청각장애로 말년을 살았던 베토벤을 떠오르자면 쉽게 수긍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으로 귀결된 사례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고통에 처한 당사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뿐더러 대체적인 경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해피엔딩을 그리면서, 혹은 위대한 걸작을 기대하면서 이를 악무는 것은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할 수 있다. 차리리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사는 내 모습 이대로도 우주에 아로새겨진 소중한 예술이요 위대한 걸작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부활을 염두하지 않고서도, 십자가에 달린 비련한 예수가 사랑스럽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과 비슷한 시상을 갖는 시 한 편을 근래 읽게 되어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해리

이끼도 끼고 군데군데 금 갔다 / 꼭대기 층 한 귀퉁이는 떨어져 나갔다 / 떨어져나간 곳을 푸른 하늘이 채우고 있다 / 도굴과 훼손과 유기의 질곡을 / 온몸으로 받들고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은 / 견디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 오래 견딘 침묵은 좀 / 깨지기도 해야 아름다웠다 / 고난의 상흔도 보여야 미더웠다 / 언제부턴가 온전한 것이 외려 / 미완이란 생각이 든다 / 깨진 곳을 문질러 가슴에 갖다 댄다 / 이루어지는 것 드물어도 /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가슴 층층에 쌓여 / 바람 부는 폐사지에 낡아가고 있다면 / 당신도 나도 다 탑이다

그렇다! 당신과 나라는 탑(塔). 금이 가고 흠이 있고 이끼로 더러워진 그대로 대지 위에 서 있는 우리, 그대로 멋지고 그대로 아름답지 않은가? 시인의 관점처럼, 오히려 우리 인생에 고난의 상흔도 보여야 도리어 미더운 일이고 멋진 일이다.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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