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 장준식 목사
  • 승인 2019.07.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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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출처 : 픽사베이
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출처 : 픽사베이

‘별’과 ‘길’과 ‘떠난다’는 말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하늘에는 별도 참 많았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보다 더 큰 환희가 있었다. 별을 보면 시 한 구절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은 외로운 인생의 친구요, 팍팍한 삶의 희망이요, 희미한 미래의 비전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별’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으뜸은 ‘동방박사들 이야기(마태복음 2장)’이다. 동방박사들은 유대 땅을 기준으로 동쪽 나라에 살던 사람들인데, 어느 날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경배하러 유대 땅에 왔다. 그들이 보았다는 ‘그의 별’은 어떻게 생긴 별이었을까? 무슨 별을 보고 ‘그의 별’이라고 한 것일까? 그 별은 일시적으로 그때 그 곳에만 뜬 별이었을까? 아니면, 지금도 그 별은 하늘에 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런데 도무지 동방박사들이 ‘그의 별’이라고 가리켰던 그 별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그 별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대기는 점점 어두워졌고, 하늘의 별은 점차 줄어갔다. 별이 없어진 게 아니라 나쁜 공기가 하늘의 별을 가린 것이다. 하늘의 별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외로워졌고, 희망과 비전을 잃고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했다. 외로울 때 위로해 주는 친구가 없어졌으니, 팍팍한 삶에 빛을 비춰주는 희망이 없어졌으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비전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도시의 문명 속에서, 밤이 너무 환해서 하늘을 쳐다볼 수 없고, 별이 너무 없어 하늘 쳐다보는 재미를 상실한 우리들이 별을 보고 길을 떠난 동방박사들처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들은 좀처럼 길을 떠나지 않는다. 모험을 하지 못한다. 그저 머문 자리에서 안주하기에 바쁘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면서 산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낮은 이성이고, 밤은 상상력이다. 이성이 세상을 난도질하는 사이, 밤의 상상력은 자취를 감췄다. 밤하늘의 별은 상상력의 원천이었는데, 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도시 문명에 사는 우리들은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길 잃은 아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을 뿐이다.

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 멈추어 서지 않았다. 별이 멈출 때까지 계속해서 갔다. 중간에 헤롯 궁전에 들렀지만 궁전의 화려함과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엉뚱한 사람을 경배하지 않았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떠났기 때문에 하늘 아래 땅에서의 영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별이 머문 곳에는 헤롯의 궁전과는 대비되는 평범한 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헤롯 대왕과 대비되는 힘없는 산모와 아기가 있을 뿐이었다. 동방박사들은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려 가장 힘없고 연약한 산모와 아기를 경배했다. 그들의 시선은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자(산모와 아기)에게 머물렀다. 별을 보고 길을 떠나온 결과다.

밤하늘에 별이 별로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별이 없으니 길도 없고, 길이 없으니 떠나는 사람도 없다. 머문 자리에 안주하여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으니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다툼만 늘어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하늘의 별을 되살려 놓는 일이다. 별이 하늘을 수놓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외롭다고 울지 않을 것이고, 사는 게 팍팍하다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별을 본 사람은 동방박사들처럼 길을 떠날 것이다. 별을 보고 길을 걷다 별이 머문 곳 아래 놓여 있는 연약한 생명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값진 것을 내어 놓으며 생명을 보듬고 보살피는 방식으로 경배할 것이다. 구원은 ‘별’과 ‘길’과 ‘떠남’이 만드는 신비이다.

 

장준식 목사(북가주) 세화교회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장준식 목사
(북가주) 세화교회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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