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논문]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위한 이야기치료
[이달의 논문]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위한 이야기치료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6.20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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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라 Th.D.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한국교회 현장에서 실천적 함의를 제공하는 논문을 매월 한 편씩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위한 이야기치료(2017)

조미라 Th.D.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실천신학(상담코칭학 전공)

논문요약

2016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하루 평균 자살자 수 37명(2018년 40명)에서 파생되는 자살유가족 수의 급격한 증가를 가늠해본다면, 자살유가족을 위한 효과적인 치료적 개입에 대한 연구는 매우 시급하다. 자살자의 수적 증가는 자살유가족의 급격한 수적 상승을 동반하고, 자살유가족의 수적 상승은 자살한 고인을 잇따른 가족의 연쇄자살로 인해서 다시 자살률이 수적 증가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의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비극적인 현상은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자살한 고인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남겨진 유가족이 기독교일 경우, 자살한 고인은 사망한지 수년이 흘렀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인 유가족이 속한 교회 및 신앙공동체로부터 여전히 비난, 정죄, 가십(gossip)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살로 인한 죄책감과 수치심, 낙인효과 등은 자살유가족의 종교적 성향 중에서 기독교인에게서 더 심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자살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신앙관은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규정하고 이를 흉악하고 끔직한 죄들 중의 하나로 여겨왔다. 성경은 자살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만 할 뿐 직접적인 자살행동에 대한 가치판단과 자살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교회는 역사적으로 자살에 대해서만은 매우 가혹했다. 자살을 영원히 저주받으며 절대 구원받지 못하는 죄로 치부하였다.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은 영혼의 ‘영원’이라는 종교적 신념과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 자살하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신앙적 도그마와의 조우로 인해 더욱 심각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내 사랑하는 자식이, 남편이, 가족이 자살하여 지옥에 갔는데 나만 홀로 천국에 간다면 거기가 지옥이다. 차라리 내 죽은 가족과 함께 고통 받으며 그곳에 있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심리적 현상이 나타난다. 또는 배교를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 자살하면 구원 받을 수 없다’라는 신앙의 도그마에서 파생된 여러 고통들은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위한 목회상담적 접근은 이제 성직자와 교회를 비롯한 사역현장에 핵심이슈로 작용하게 된다.

본 연구는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로서, 치료를 목적으로 심리, 상담을 진행한 임상적 사례연구이면서도 철저한 성경 및 기독교 문헌 고찰 등이 함께 이루어진 한 연구이다. 동양의 가족주의, 유교문화와 기독교의 자살관련 도그마가 조우하면서 형성된 거대담론 하에서 고통 받는 한국의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이야기치료기법을 활용하였다. 치료과정을 통해 기독교인 자살유가족 내담자들은 가족의 자살이라는 자신의 인생이야기의 핵심주제와 관련된, 각 내담자의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이야기를 외재화작업과 재저작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의 대안적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그들은 자살로 사랑하는 자를 상실한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회복 그리고 남은 삶을 의미있고 가치롭게 살아가기에 대한 동기의 회복이 이루어졌다. 본 연구는 최초의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을 위한 이야기치료로서 학문적 공헌과 의의가 있다.

조미라 박사
조미라 박사

 

연구자와의 인터뷰

대담자 옥성삼 교수(본지 기획위원)

-기독교에서 자살을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 한국교회는 어떤가?

루터의 종교개혁 전에 사제들의 말이 진리였다. 당시 시작은 생명의 존중에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초기 중세시대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자살하면 지옥 가니까 살아야 해”라는 말에 복종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그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먹고사는 문제로 자살하는 소작농이나 노예들로 인해 영주들이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다. 영주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의 니즈(needs)가 결합되면서 자살자들에 대한 사후 장례를 잔인하게 치르면서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것이 하나님께, 사람에게, 마을에게 저주받은 인생으로 굳어지게(dogma, 도그마) 된다. 한국교회는 유교문화권에 있던 당시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제사문제처럼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이 더 힘을 받게 된다.

교회는 자살에 대해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가지고 ‘자기 살인’이라고 반대하며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로 타당성을 갖는다. 그동안 자살 시도자나 자살자들의 심리부검을 해보니, 그들의 목적은 생명을 끊는 게 아니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이 심해서 그것을 끊는 게 목적인데 방법이 없으니 마지막 고통을 끊기 위한 수단으로 자살이라는 행위를 선택하는 거다. 자살의 목적이 하나님을 향해서 내 생명을 비관한다면 그 논리가 맞다. 문제는 자살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게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술 먹고, 마약하다 마지막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심리상담시 “자살하면 지옥간다”고 말을 하면 웃으면서 “사는 데가 지옥인데 사후세계 지옥을 걱정하겠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살인의 개념은 사람을 죽이는 건데, 원인과 목적이 다르다. 나는 논문에서 자살의 범위를 총 13개로 나눴다. 소방관 중에 누군가를 구하지 못해서, 대신 죽고자 하는 자살이 있다면 자살클럽 같은데서 행하는 유희적 자살이 있다. 모든 자살을 통으로 봐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신칭의다. 우리의 믿음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살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다. 그들이 자살을 선택할 때 ‘믿음 없을 때 선택했다’며 그들의 믿음을 부정하는데 실제 그들의 유서를 보면 크리스천들 중에 ‘하나님 죄송하다. 이렇게 밖에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달라’며 용서의 하나님을 믿기도 한다.

-한국교회에서 자살로 인한 갈등이나 이슈가 된 사건이 있나?

첫 이슈는 성도의 자살사건에 한 교회 목사가 장례식을 치러주면서다. 그런데 이후, 성도였던 그의 어머니가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담임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교회 갔더니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하는데 내 딸이 있는 곳이 나에겐 천국이다”며 “내 딸이 지옥에 있는데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한다. 그때 담임 목사가 “그는 지옥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은 비관적 자살이기 때문에 보장할 수가 없다”며 어머니를 붙잡는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유가족들이 연쇄 자살을 하는지, 기독교 자살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 도그마가 그들의 연쇄적 자살을 돕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연구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40분마다 1명이 죽는데, 1명이 죽으면 20명이 그 자살 영향력 아래 있다. 그 중에서 6~7명은 실제 가족이고, 친구, 친척까지, 그런데 여기서 1명이 자살을 하게 되면 또 20명이, 그 다음에 또 20명이 자살의 영향력에 들어간다. 이렇게 자살하면 유가족이 따라 죽고, 유가족의 유가족이 따라 죽는 순환구조가 형성된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에서는 유가족들의 연쇄 자살률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순환구조를 막아야 된다.

-한국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목회자들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것은 저주 선포가 아니라 ‘살아달라’는 호소라는 것에 동의한다. 자살의 단계에 있어 이러한 협박이 어느 단계에서 먹히지만 고위험군의 사람들한테는 안 먹힌다. 현실이 지옥이라는 사람들이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성경에 없는 문장 때문에 유가족과 가족의 가족이 자살한다면,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그 생명을 자살로 몰아간 것에 어떻게 할 것인가? ‘자살하면 지옥 안 간다’가 아니라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전제는 성경은 하나님이 밝히기로 한 부분까지 만이다. 하나님이 모든 진리를 다 밝힌 것은 아니지 않나. 자살에 대해 텍스트로 남겨주시지 않았을 때는 심판하고 정죄하고 또 다른 연쇄 자살이 일어날까봐 비밀로 감췄다는 거아닐가. 이 부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자신의 신비로 감춰둔 것인데 그런데 그것에 대해 아는 것처럼 연쇄자살을 부른다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법관의 자리에 앉아서 판정한다는 거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자. 하나님만 심판하는 거다. 하나님만 결정할 수 있다. 모든 교회 공동체에서 안타까워하지만, 수군대면서 가십거리로 ‘지옥 갔을 거다, 천국 갔을 거다’ 그러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없는 실정인데, 위 논문의 함의는?

성직자들이 하는 얘기들이 실제 현장을 모르고 성경가지고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 상담들은 성경에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 모른다. 나는 2가지 공부를 다 해서 사명으로 다가왔다.

자살은 자살사고가 들어갔다가 점점 진행되어 완수의 개념으로 간다. 하지만 유가족은 돌연사처럼 갑작스럽게 받아들인다. 유가족의 가장 큰 질문은 이들은 ‘도대체 왜?’라는 것을 규명하기 위해 자살유가족이 심리적 추격에 들어간다. 밖으로 나가야되는 비난이 자신에게 들어간다. 자살자는 죽었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정확한 사실에 대해 들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 문제화시키고 자기멸시, 자기파괴로 들어가서 자기 살인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본인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것을 바꿔주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자살하면 지옥가’가 영향이 있었다면 자살률이 떨어져야 되지만 여전히 높고 협박이 안된다.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이야기를 끝내야 된다. 무조건 끝낼 수 없고 새로운 이야기로 개정을 해줘야 된다. 주입이 아니라 개정이다.

이야기치료는 핵심적인 것은, 문제아에서 문제와 사람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없애야 되는 것은 문제지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 치료는 이슈를 없애고, 개정시키고 개정된 옷을 입게 하는거다. “네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가진 이슈가 문제인데, 왜 너를 죽이려고 하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네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가진 게으름이 문제구나 게으름을 없애볼까?” 라고 하는 것이다. 분리만 시켜도 그들은 숨 쉴 만 하다.

성경은 창세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역경 가운데서 절망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은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세상이 주는 ‘너는 무가치하니까 자살해’라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붙잡고 이겨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야기치료의 가장 큰 핵심은 파괴적이고 지배적인 이야기를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이야기로 바꿔주는 건데,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모델이 되어준다.

-위 논문을 통해 목회 현장에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나?

목회자들이 기독교인 자살에 있어서는 일반 심리상담가보다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성경이야기에 대해 누가 잘 알겠나? 그래서 그분들이 심리 상담적인 스킬은 없더라도 성경의 인물을 가지고 “너를 위해 하나님이 이 이야기를 써놓은거다. 네 이야기다. 이 사람은 2000년 전에 죽었고 네가 이 사람이 될 수 있어.” 라고 할 수 있다.

자살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슈나 죄의 목록에 접근하지 말고 그들의 삶의 라이프 스토리를 성경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나도 죽고 싶다. 자식이 죽을 때 아무것도 못했다”는 자살유가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수가 죽었고, 죽을 때 능력이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의 자식 잃은 마음 사람들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아신다. 하나님도 자식을 잃었다”라고 말해줄 수 있다. 자살 유가족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자식을 보내고 살아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이야기다. 그게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야기다. 그 하나님이 왜 보냈냐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다. “당신의 아들이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모르지만 성경 전체가 자식을 잃은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말해 줄 수 있다.

아직 기독교인 자살유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치료법은 많지만 현장을 무시한 목회적 관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기독교인 자살 유가족들을 대할 때, 목회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없다.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책도 출판할 예정이다.

<이후 기독교유가족 자살 관련 문의사항은 가스펠투데이 대표전화 02-743-7447로 전화해주세요.>

정리=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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