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영국의 역사학사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의 말이다. 지금의 부산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넘어서는 시대 한국교회의 선교의 태도를 생각해 보려면 선교유물이나 유적을 한번 방문해 볼 만하다. 하지만, 부산의 근대사에서 선교에 대한 역사를 남긴 박물관 전시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부산시민들과 외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부산시립박물관의 ‘부산관’이 작년 7월 11일 새롭게 오픈하였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1월에 시립박물관 기증실에 있던 선교유적이 처음으로 메인 전시관에 자리를 잡게 되어 방문해 보니, 개항기 부산의 풍경과 함께 찾아온 선교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따라가 보니,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바다의 물살을 헤치고 조선에 찾아왔을 때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다. 거센 물결 속 조선은 500년 역사를 품은 채 서구 열강이 주도하는 근대 세계의 급속한 조류 속에 빨려 든다. 일본전관거류지 설치 이후 각국 조계가 외국과의 조약 체결과 함께 속속 부산항에 설치된다. 먼저 1883년 조영수호통상조약과 조독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영선현(현 영주동) 일대에 영국과 독일 조계가 설치된다. 1883년 조영수호통상조약에서 외국인의 100리 이내의 통행 제한 조치가 해체되면서 각국 조계의 서양인들은 자유롭게 부산과 인근 지역을 유람이 가능하다.
특히 이 시기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선교사들은 서구 문화와 문물을 소개하는 주요 통로가 된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가까이 생활하면서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많은 역사적 흔적을 남기며, 그들이 보고 느낀 부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또한 우리가 마주한 서구 근대화에 대한 시선도 그들의 눈 속에 담긴다.
리차드 사이드 보텀(Richard Henry Sidebotham), 한국명 사보담(1874~1908)은 개항기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사다. 내한하여 첫 1년은 대구 지부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부산 지부로 옮겨 7년 동안 열정적인 선교활동을 벌린다. 그는 1907년 안식년으로 귀국하게 되었지만, 1908년 12월 3일 우연한 가솔린 폭발사고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못하고 별세한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나 사보담의 외손녀인 사라 커티 그린피드(Sarah C. Greenfield) 박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태어난 한국의 부산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어머니가 소중하게 보관해 오던 조부님의 유품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줘야한다는 사명을 안고 재차 한국을 들어온다. 그녀의 가방 속에는 때 묻은 꽃버선, 색동저고리, 얼룩진 태극기, 빛바랜 사진 등이 100년 전 우리의 모습처럼 고이 담긴다.
부산시립박물관 근대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개항기 부산' 선교사 유물 전시전에는 다음과 같은 유물들이 있다. '선교사와 신도들 사진', '종교지에 실린 선교기사', '사보담과 조사 고학윤의 사진', '한국소개 그림책', '여야용 색동저고리', '에피여사가 그린 부산항 그림지도', '의료선교사 어을빈의 약병', '어을빈 약품 선전 팜플랫' 등 이다.
사보담 목사의 부인 에피(Effie) 여사가 미국에 있던 시동생 로버터(Robert)에게 보낸 그림이 전시되었다. 이 책에는 한국인의 복식 풍습을 정감 있게 스케치한 삽화와 간단한 설명이 수록되었다. 성인남녀, 소녀, 소녀, 아기, 양반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옷들이 간결한 스케치로 그려져 있는데, 특히 여성 복식에 대해 여러 장을 할애하여 묘사하고 있다.
" 저고리와 치마 사이의 맨살이 춥지 않을까 생각하시죠? 모든 여자들은 이렇게 옷을 입어요. 색깔이 있는 치마를 입는 경우는 거의 드물지만, 어린 여자 아이는 한 때 잠시 이렇게 입어요. 매우 어린 여자 아이들도 자주 이렇게 입어요."
에피(Effie) 여사는 한국 복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남편 사후 선교지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순회 설교를 다닐 때면 아이들 (알프레드와 마가렛)에게 한복을 입혀 청중들에게 선보인다.
한국 특히 부산을 사랑했던 사보담 선교사, 남편을 잃고도 선교지를 찾아온 에피 여사,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근대기 부산의 모습이 사진과 수집품 그림을 통해 면면히 전해온다. 가난했던 그 시절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는 시대의 위기에, 우리 선조들에게 의료와 교육으로 섬기며 전해 주었을 그들의 메시지를 떠올려 보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