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선생님께서는 방학만 되면 학생들에게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었다. 선생님은 일기 쓰기를 통해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기를 원했지만, 실상 학생들이 일기를 통해 향상된 것은 글쓰기 실력이 아니라 꾸미기 실력이었다. 그 시절에 필자는 방학이 끝나 개학 전날이 되어 여태껏 밀린 일기를 한 번에 다 쓰다 보면 기억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을 마치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꾸며서 쓰곤 했다. 그 시절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꾸며서라도 일기를 쓰던 그 때가 일기를 거의 쓰지 않는 지금보다는 나아 보인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일기쓰기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조선>의 발행인이었던 김교신(1901-1945) 선생에게는 일기쓰기가 그의 인생과 그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지난 2016년 홍성사에는 ‘김교신 일보-육필일기에 담긴 삶과 시대, 고뇌와 꿈’이란 제목으로 김교신 선생의 일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김교신 선생의 인생에서 극히 일부분인 1932년 1월부터 1934년 8월까지의 일기만 수록되었다. 그 이유는 일제시절 그가 쓴 일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어 그가 스스로 여태껏 쓴 모든 일기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홍성사에서 출판한 ‘김교신 일보’는 그 당시 기적적으로 불타지 않은 일기를 입수해 오늘의 독자를 위해 최대한 쉽게 풀어쓴 책이다.
김교신은 자신의 일기에 일보(一步)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저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의 한 걸음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추정된다. 그가 쓴 일기는 대부분 매우 간결하다. 그의 일기에는 그날의 날씨와 그날 읽은 말씀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한 정리와 평가가 담겨있다. 1933년 3월 1일에 김교신 선생은 이러한 일기를 썼다.
“아 올해도 두 달이 벌써 갔다! 책한 권도 읽은 것 없이. 일과를 새로 정하다. 3월 1일부터 12월 말일까지 기본 공부 외에 50권을 읽어내는 일. 기본 공부는 성서와 어학. 9시 반 등교. 2시간 수업. 오후 6시까지 졸업증서. 상장 등 처리. <성서조선> 제 50호 나오다. 류석동 씨가 와서 도와주어 발송이 아주 쉬웠다.” (135쪽)
김교신 선생의 일기에는 그가 교사로서 학교에서의 수업을 하고 발행인으로서 <성서조선>의 글을 쓰고 그리고 여러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내용이 주로 나타난다. 아마도 김교신 선생의 본업은 학교 교사였지만, 실제로 그는 거의 돈벌이가 안 되는 <성서조선>의 발행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성서를 조선 위에, 조선을 성서위에’ 세우겠다는 당찬 포부로 시작한 <성서조선>의 발행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조선>을 발행하기 위해 일제의 검열과 만성적인 재정적자 그리고 자신의 나태함과 매달 싸워야했다.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처럼 일평생 김교신 선생은 우직한 소걸음으로 진리를 향해 걸었다. 김교신 선생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김교신 선생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처럼 매일 일기쓰기를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전처럼 작심삼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독서는 그 자체가 기도이며 구원의 여정이며 진리를 향한 순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