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저널리즘과 예언자적 비관론
비판적 저널리즘과 예언자적 비관론
  • 옥성삼 교수
  • 승인 2019.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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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한류의 눈부신 역사를 만드는 오늘, 한국 정치는 촛불 혁명과 수차례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대립적 진영논리와 갈등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2%도 안 되는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3.1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한국교회는 인구의 20%에 이르는 양적 성장에도 세상의 빛과 소금보단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교회 안의 목소리는 반기독교적인 시대 문화가 주된 요인이라고 말하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실천해야 하는 에클레시아(교회)의 본질적 현실에서 본다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근래 주요 언론의 한국교회 관련 빅 뉴스에는 이웃을 품고 삶을 위로하는 구원의 메신저 소식은 없고 교회와 성직자의 ‘반시대적이고 비윤리적’ 사건 보도가 대부분이다. 최근 2년간 주요 언론의 종교 관련 보도 성향을 살펴보면, 천주교는 긍정 성향의 보도 비율이 높고, 불교는 긍정과 부정 성향의 비율이 함께 높으며, 개신교는 부정 성향의 보도 비율이 연평균 23% 이상으로 높으면서 긍정 성향의 보도 비율은 1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부정적 사건 자체의 보도 빈도수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유사한 사건의 보도일 경우 3대 종교 중 개신교 관련 기사가 가장 부정적으로 전달될 개연성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를 조명하는 사회언론의 시선이 절대적 객관성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언론의 부정성 강화는 방치할 수 없는 중요한 현안이다.

개신교에 대한 언론의 부정적 프레임이 고착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학자, 종교사회학자 그리고 현장 언론인의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한국 개신교 보도에 있어 부정적 프레임이 고착화되는 이유를 4가지로 관점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 시각은 사회문제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1970년대부터 일간지 문화면에 종교란이 고정화되면서 종교 관련 기사가 증가하였고, 1990년대부터 기독교 관련 기사가 급증하면서 사회일원인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개신교의 사회적 위상 및 가시성이 높아지고 대형교회 중심으로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눈에 잘 띄는 대형교회와 유명 목회자 중심으로 “부자. 보수. 기득권, 권위주의, 불통, 세속화” 등의 부정적 시선으로 교회를 보는 프레임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3대 종교 중 기독교인이 약 970만명으로 가장 많고, 300개 넘는 교단 수에 12만명이 넘는 목회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정치인, 사업가, 명사 중에 크리스천 비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비판적 시각이 작용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천주교 및 불교에 비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소통 창구가 없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개신교와 언론 간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과 이에 대한 개신교계의 대응 부재가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본다. 네 번째 관점은 “세계화, 탈 근대화, 정보통신 사회의 고도화” 등 사회 구조적 변화에 교회가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본다. 신자유자본주의 세계화의 가속도와 경쟁에 내몰린 21세기적 생활환경에서 종교가 주는 “안식, 성찰, 힐링, 참여, 공감, 진정성, 본질성” 등에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가 시대착오적인 문화 지체를 보이고 있다는 관점이다.

첫 번째 시각은 1990년대 이후 종교사회학자와 언론학자 등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한 관점이고, 두 번째는 크리스천 언론학자 및 현장 언론인을 중심으로 넓은 공감대를 가진 시각이다. 세 번째 시각은 저널리즘 현장에 있는 기자와 개신교의 언론 관련 논의의 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관점이다. 네 번째는 사회학자와 일단의 문화신학자가 보는 시각으로 세계화, 4차산업혁명, 소셜미디어 등 문명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 개신교의 구조적 현상으로 본다. 단기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언론과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적 저널리즘이 고착화되는 오늘, 한국교회가 정말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은 네 번째 시각이다. 100년 전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며 민족에게 꿈과 위로가 된 교회가 이제는 유효기한이 지난 중세교회처럼 체질적이고 패러다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판적 저널리즘에 대한 한국교회 차원의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들어야 한다. 신앙 의례 및 문화를 전수하는 제사장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 혹은 선지자는 메신저로서의 일상 그리고 하나님의 신탁을 대언하는 메시지 선포가 언제나 수행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동시에 모세, 사무엘, 엘리야, 이사야 등이 그러했듯이 시대를 분별하는 안목과 부단한 성찰을 통하여 메시지의 구체적 의미 전달과 청중과의 소통에도 권위가 있어야 했다. 하여 예언자의 메시지는 그것이 선포되는 대상에게 나쁜 소식이든 좋은 소식이든 신적 메시지로서 선포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예언자적 비관론이란 전달 할 메시지에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와 심판이 담겼을 때 가지는 예언자적 아픔이고, 또 선포된 메시지에 변화된 결과가 없을지라도 자신의 삶을 걸고 충실한 메신저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사장은 많은데 예언자도 메시지의 권위도 없는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적 저널리즘의 소리가 뭘 말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더욱이 맘몬이즘의 위력과 이권 집단으로 비춰진 한국교회의 오늘을 난도질하는 비판적 저널리즘의 소리를 무시하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가르며 다가서는 하늘의 메시지가 있다면, 설령 말씀의 검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소식 일지라도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전적으로 엎드려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신앙공동체의 도리요 내일의 최악을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옥성삼 교수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크로스미디어랩 원장  가스펠투데이 기획편집위원
옥성삼 교수
연대연합신학대학원 책임교수크로스미디어랩 원장
가스펠투데이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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