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맛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성분은 의외로 적다. 커피 한 잔에 녹아 있는 커피 함량을 알고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란다. 커피 함량은 TDS(Total Dissolved Solids)로 표시한다. 커피 한 잔에 녹아 있는 커피 성분을 이야기한다고 보면 된다. 에스프레소 기준 TDS는 1.8% - 2.0% 정도 된다. 나머지 98.0% - 98.2%는 물이다. 드립은 더 적어서 약 1.5% 정도만 돼도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적은 중에도 탄수화물, 클로로로겐산, 젖산, 탄닌산, 말릭산, 시트러스산 등의 함유량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우리 혀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예민하다. 같은 커피를 가지고 같은 기계에서 숙련된 바리스타와 초보 바리스타가 추출하는 커피 맛이 다르다.
몇 년 전쯤 아내가 갑자기 “도전”하면서 내 옆으로 왔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잠시 당황했다. 아내는 커피 드립을 6개월 정도 하고 나서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다. 자기가 내리는 맛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듯하다. 그날 세기의 대결이 끝난 후 아내는 한동안 커피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물줄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 맛이 달라진다.
늘 부끄럽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평소에 생두 60%, 로스팅 30%의 맛이 정해져 있고, 물의 종류, 물의 온도, 커피 분쇄도, 커피 추출 시간이 나머지 10%라고 한다면 바리스타가 물줄기를 잡는 것이야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하고 물 붓는 것을 소홀히 생각했었다. 함께 커피 공부하는 모임에서 한 지인은 내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커피를 내리냐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주장하던 대로 물줄기야 무슨 큰 영향이 있겠느냐고 교만하게 이야기 했을 때 그분은 조용하게 “눈을 그려 넣으셔야지요”했다. 정말 눈을 그려 넣은 커피와 눈을 그려 넣지 않은 커피는 하늘을 나는 새와 날지 못하는 닭과 같은 차이였다. 그 후에 드립 연습을 참 많이 한 기억이 있다. 수치로 따지면 2%의 1/100도 안 되는 차이이리라. 그러나 맛의 차이는 그렇게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커피를 가지고 똑같은 기계를 사용해도 맛은 같을 수 없다. 커피 알 하나하나가 생명체로 각자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같은 농장에서 난 같은 뉘앙스를 가질 뿐인 것이다.
종종 커피를 마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시는. 어쩌면 커피의 용존 양보다 더 적게 들어가는 것이 소금일 것이다. 커피는 색이라도 남지만 소금은 형체도 색도 없어진다. 다만 맛이 남을 뿐이다. 그것도 자기 맛이 강하게 나면 안 된다. 다른 맛이 더 잘 나도록 도와야 한다. 실제로 스페셜 티 커피에서는 종종 짠맛을 느낀다. 그 짠맛이 커피의 향과 맛을 더 훌륭하게 부각시켜 준다고 한다.
이 땅이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소금은 얼마나 될까? 물론 소금이 많으면 쓰임새도 많다. 음식의 맛을 내고, 상하지 않게 하고, 눈을 녹이는 데까지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최소한의 소금도 비축이 안 되어 있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소금이 되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내가 소금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소금이 되었어도 단단하여 녹지 않는 소금이 많은 듯하다. 단단하지 못하고 조금 맛이 덜 짜도 소금은 녹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많은 신앙의 선조들처럼, 우리 어머니처럼.
지난날 전도사 시절에 원경선 선생님(풀무 창업자)과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내 얼굴을 보시면서 “목사 되실라우?” 하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다음에는 “삯꾼 되지 마시라요”하셨다. 삯꾼과 목자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여쭈었을 때 명확하게 답을 주셨다. 식사시간이라 받아 적지 못해 성경 구절은 잊었다. 로마서 어느 구절을 말씀해 주시면서 “좋은 말씀을 들었을 때 삯꾼은 설교할 때 써먹어야지 하고, 목자는 정말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야요”하셨다. 평생 삯꾼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그 길은 너무 요원하다. 그저 소금이라도 되기를 소원하지만 나를 죽인다는 것은 정말 죽어도 안 되어 주님 앞에 무릎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