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in Drama] 상실의 시대, 아무개 의인 in '미스터 션샤인'
[삶과 신앙 in Drama] 상실의 시대, 아무개 의인 in '미스터 션샤인'
  • 박형철 교수
  • 승인 2019.05.23 17: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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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의병이 되어야겠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매 회마다 되뇐 생각이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혼란의 시대, 많은 것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정체성 상실의 시대의 이야기가 아팠다. 그리고 그 시대 속에 우연히 합석한 미국인인 조선인, 일본인인 조선인, 잘생긴 조선인, 그들과 함께 이름도 빛도 없이 대의를 위해 살았던 아무개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미스터 션샤인 tvn 홈페이지 갈무리
미스터 션샤인 tvn 홈페이지 갈무리

영화보다 호흡이 긴 드라마의 이야기를 따라서 끝까지 흘러가다보면 하나의 단어나 문장 혹은 이미지가 남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나 연출가가 의도했던 바일 수 있다. 하지만, 매주 작품 속 시대로 들어가 인물들과 그들의 에피소드에 몰입하며, 스스로 반복적으로 느끼는 가운데 만들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동은 시청자 본인만의 주제를 생산해낸다. 중요한 건, 이런 주제가 삶과 신앙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을 매 회 볼 때마가 필자가 다짐한 삶의 주제, 반성과 감동의 반복을 통해 결단한 문장이 ‘나도 의병이 되어야겠다!’였다.

사실, 작품 속 극한 고통의 실존을 보고 느끼는 공포와 연민(phobos/eleos) 그리고 이를 극복하며 느끼는 위안과 감동의 카타르시스는 고대 비극의 중요한 감정요소들인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 중요한 삶의 활력소였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현대에 와서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매체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의 아픔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가상현실 시대극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고통과 슬픔-분노와 두려움-위안과 정화-결단과 적용) 또한 그에 대한 실제적 예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도 이런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상실과 시련 속에 살았다. 하지만 남유다이든 북이스라엘이든 수많은 의로운 선지자들은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외쳤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도 예수와 바울과 제자들 그리고 대의를 품은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회개와 구원의 복음을 외쳤다: 삶과 신앙의 가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소외된 자들의 평화를 위해. 성경역사 속 신앙 선배들의 위대한 인내와 연단을 보며 그리스도인들은 삶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결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의병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먼저 2019년을 살아가며 여전히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의 이야기가 더 이상 2~30대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사는 게 힘드니까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시대, 그래서 물질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시대, 서로 다른 것이 미워서 많은 것들을 잃어가는 갈등과 위기의 시대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이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교회의 청장년들의 삶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신앙과 공동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상실의 시대 속 아무개 의병이자 의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먼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시금 진리와 정체성을 붙잡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 칭함을 받은 구원받은 자녀들로서 ‘의인’이라는 것, 이름도 빛도 없는 아무개이지만 아픈 시대 가운데 소명과 사명을 지닌 ‘의병’이라는 것. 진리 속에서 신분과 역할을 기억하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한 자는 회복하고 결단하고 도전할 수 있는 존재임에 감사할 수 있다. 신앙의 본질을 붙잡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드라마와 성경 속 시대만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와 고통은 아닐 테니까. 아무개인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위안과 용기를 가지고 삶의 자리로(Sitz im Leben)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선물로 주어진 생명의 현장 속에서 열정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검은 새. 미스터 션샤인 tvn 홈페이지 갈무리
하늘의 검은 새. 미스터 션샤인 tvn 홈페이지 갈무리

‘하늘의 검은 새가 되고 싶다!’, 대감마님으로부터 땅을 보며 살라는 말을 들었던 천민소년이 하늘을 바라보며 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미군장교가 되어 돌아온 소년, 양반출신이자 의병의 딸인 스나이퍼 손녀, 친일파 아버지의 딸이지만 의병을 돕는 호텔 사장, 그리고 그들을 칼과 글로 지키려했던 두 청년, 그들 모두는 하늘의 검은 새였다. 그리고 자유로운 그 새들은 의로운 희생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지켰다. 그리스도의 향기이자 편지인 우리 또한 하늘의 검은 새가 될 수 있다. 아픈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하늘을 소망했던 바울이 될 수 있다(고후4). 하늘시민권을 지닌 아무개 의인, 바로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빌3).

신분과 계급이 어떠한 아무개이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8)인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의 역할을 감당한다면 세상과 교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 시대의 의병이자 의인으로서 은혜의 진리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이라면, 조금 아파도 참고 견디며 그렇게 담대할 수만 있다면, 땅에서는 Good Bye일지 몰라도 하늘에서의 See You Again을 소망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박형철서울여자대학교 특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형철 교수
서울여자대학교 전담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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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성 2019-05-24 17:01:02
교회의 청장년들의 삶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신앙과 공동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의인, 정의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분들을 보면 존경과 박수를 보내지만 우리 자신이 실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우리 교회의 모습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 질타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있으니.... 이런 모습에 돌아보며 반성하지 못 하는 지금의 우리 모습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쥴라이 2019-05-24 16:57:23
맞습니다. 이 시대의 의인이자 의병으로 살아야하는 정체성을 가진 자. 그것이 크리스천입니다. 하늘에서 see u again 너무 멋진 말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정스런 2019-05-24 13:28:28
대위를 위한 희생의 역할이라는 표현이 와닿아요.
요즘은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것에 있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지만 무한한 삶을 꿈꾸고 그것이 소망이 되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기쁘게 손해도 보고 희생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르지만 선한 영향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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