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기획] "사랑해서 기도합니다!"
[스승의 날 기획] "사랑해서 기도합니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5.23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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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교사-마지막
김재호 교수(부산대학교),
박향선 학장(한국개혁신학원),
정연철 교수(한국해양대학교)
학생들을 사랑해서 기도한다는 정연철 교수, 박향선 학장, 김재호 교수. 정성경 기자 

5월 한 달 동안 제 8회 2019 Holy Generations in Education(이하 HGe)이 국내외 12개국 45개 지역에서 열렸다. ‘교육에 거룩한 세대를’이라는 주제로 한 가지 소원을 올려드리며 24시간 찬양과 중보기도를 하는 대회다. 홍보도, 후원교회도, 조직도 없는 기도대회가 45개 지역에서 열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10일 부산 순복음세움교회에서도 이 대회가 진행됐다.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해 준비한 ‘존경받는 교사’ 시리즈 마지막으로, 거룩한 세대 중보기도대회(Intersessory Prayer’s Conference for Holy Generations)를 통해 다음세대의 회복과 캠퍼스의 부흥을 맛보고 있는 김재호 교수(부산대 전자공학과), 박향선 학장(한국개혁신학원), 정연철 교수(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부)를 부산대학교에서 만났다.

 

박향선 학장,

지식 가르치는 교수에서

진리 전하는 목회자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나?

박향선 학장(한국개혁신학원)

박향선 학장(이하 박) : 고2때 교회에 처음 갔다. 학생회 부회장까지 했는데 당시 목회자들의 알력 다툼으로 교회를 떠났다. 그래도 성경공부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다. 그러다 남동생이 먼저 미국에서 목사가 되고, 10년 전에 다시 제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57살이었다. 부산경상대학교에서 영어과 교수를 하면서 번역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엘리베이터에서 “하나님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절규했었다. 그러다 신학교에서 초대 기독교 역사에 대한 번역의뢰가 들어왔는데 서울에서는 돈이 안돼 나한테 온 것이다. 기독교 초기 고생했던 선진들의 스토리를 보면서 기독교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들이 풀렸다. 이미 뜨거워진 마음으로 교회에 갔기 때문에 권사처럼 교회를 섬기는 것을 보면서 목사님께서 나로 인해 많이 기뻐하셨다. 너무 많은 세월을 탕진하고 왔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싶었다. 2년 반 전에 교수를 그만두고 목사가 됐다. 남편도 나의 영성을 알아보고 허락했다.

김재호 교수(이하 김) : 40살에 하나님을 만났다. 아내가 16년 동안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는데 병원에서는 낫지 않고, 교수 중 한 명이 “저기 가서 안수기도 받으면 낫는다”고 말했었다. 그냥 잊어버렸는데 아내가 자꾸 아프고, 병원에는 답이 없어서 갔다. 그런데 안수 받고 나서 낫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난 공대 출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지 실험을 했다. 결과가 영 이뤄질 수 없는 확률로 계신 걸로 나왔다. 그래서 믿기 시작했다. 그게 20년이 넘었다. 교회 나가면서 찬양을 하는데 갑자기 내 죄에 대해 용서를 구했는데 용서해주셨는지 안 믿어졌다. 교회는 일방적으로 믿으라고 하는데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어느 날 찬송가사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나오는데 바로 전까지 안 믿고 있었던 내가 그 순간 믿고 있었다.

정연철 교수(한국해양대학교)

정연철 교수(이하 정) : 16살에 시집 온 어머니가 10년 동안 자녀를 못 낳다가 불공으로 10년 만에 나를 낳으셨다. 그래서 절에 내 이름을 등록해놓고 제를 올렸다. 초등학생이었을 때 교회 간적이 있는데 성경에 칠해진 빨간색도 그렇고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고등학생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목사님 아들이어서 그의 간곡한 부탁에 고2때 다시 교회에 나갔다. 여전히 목사님 말씀도 이해가 안되고 적응이 안돼 1년 후, 친구에게 “더 이상 못다니겠다.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고향이 강원도 영월인데 대학교를 부산해양대학교로 와서 대학 3학년 때 다시 부르셨다. 승선실습으로 미국에 갔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을 만났다. 주한미군이었던 남편과 한국인 아내였는데, 꿈이 다시 한국 전방에 와서 개척교회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내도 나에게 전도를 했지만, 그분들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귀국해서 교회를 갔다. 대학 4학년 때였다. 몇 번 가다가 재미없어서 또 돌아섰다.

졸업하고 8년 정도 승선 생활하는데 3년째 되던 1982년도에 북태평양을 항해하다가 큰 태풍을 만나 침몰 직전까지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파도였다. 긴박한 순간에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하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다시 항해실에 올라가보니 바다상태가 나아졌다. 자정 12시에서 4시까지 항해 근무를 서는데 캐나다를 출항한 배는 북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다. 너무 신기해서 항해실에 올라가 기도응답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해도와 기상도를 꺼내놓고 연구를 했다. 태풍 위치와 본선의 위치를 보니, 태풍이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고, 우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항해하고 있었는데 배가 항해를 불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져 정면 충돌로 만나는 35마일까지 접근을 했다가, 기도한 시간에 태풍이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기상 정보를 계속 봤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율이 느껴지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선박이라는 환경이 신앙생활 할 수 없는데 그 다음 배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이 계셔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게 26살이었다. 외아들이고 아들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있어서 부모님도 문제 삼지 않고 다 교회로 오셨다. 25년 동안 기도했더니 아버지는병석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정연철 교수,

캠퍼스 내 기도 운동

제자들 5명이 목회자의 길로

 

-교수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시면?

김재호 교수(부산대학교)

: 24살 때, 카이스트 시험을 보는데 전공 문제 25개 중 4개 밖에 몰랐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문제를 다시 풀기 시작했는데 계시가 임하듯이 문제가 풀리는 것이다. 거의 다 그렇게 풀었다. 그날 이후로 어떻게 된 건지 궁금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일을 잘하고 있는데 은사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삼성전자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생각이 없었지만 집도 부산이고, 아내가 좋다고 해서 교수를 시작했다. 나중에 깨달은게, 하나님이 컨닝시켜주신거였다. 특별하게 은혜를 주셨다. 교수되고 나서 윤인구 박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16년 전에 왜 컨닝 시켜준지 알았다. 처음엔 별명이 가가멜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들을 잡아먹을 듯이 했었는데, 하나님 믿고 변화되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 대학4학년 때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승선 생활을 8년 했는데, 승선 경험이 있는 졸업생 중에 해당자를 교수로 뽑는다고 해 처음으로 학위 없이 교수가 됐다. 여건이 좋지않아 승선했던 건데 이를 통해 교수로 세워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왜 교수로 세워주셨는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는데 “아이들을 돌볼수 없겠느냐” 말씀하셨다. 배에 기독학생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어 그때부터 같이 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 태풍이 사라지고 외국에 나가면 노방전도 하는 선교선을 하게 됐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다보니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 석사 마치고 바로 됐다. 시간강사 한 번도 안하고. 사람들이 특혜 받았다고 깜짝 놀란다. 중고등학교 경험은 있지만 부산상고, 중학교 7년 하고 석사 마치고 바로 됐다. 남편 따라 부산대 교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경상대에서 상처받은 학생들을 세워주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놀랍게 나아지는 것을 봤다.

김재호 교수 ,

우울증 앓던 제자가

진리 안에서 자유함 누려

-대학교에서 어떤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지? 대학교에서 만난 학생들 이야기를 해주시면?

: 교수들하고 조찬 기도회를 매주 20년 가까이 하고 있다. 해양대학교 학생들의 신앙지도도 하고, 모든 학과마다 기도회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실습선에서는 현장전도를 하고 성경공부를 한다. 학생들이 하나님을 체험하니까 도전을 많이 받았는지 목사가 된 제자들이 5명이나 있다.

박 : 스승의 날이라고 전화 온 2명이 선교사로 사역의 길을 가고 있다. 하나님을 만난 후 나에게 학생들을 돌보기를 원하셨다. SFC를 새롭게 일으키는데 나를 사용하셨다. 교수실에 학생들을 위한 간식을 마련해놓고 아이들한테 언제든지 와서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상처 받은 아이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자 아이들의 자존감이 살고, 토익점수도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래서 학교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목사가 되면서 떠나왔다.

김 : 윤인구 박사를 알기 전에는 잡사였는데 그를 알게되고 1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이전처럼 살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수로서 가장 완벽한 모델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들만 보면 붙잡아서 열심히 진리를 전했다. 요즘 애들은 우울증이 너무 많다. 자포자기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고 교회 다니는 애들도 똑같다. 내가 정신 차리고 보니까 정신 차린 애들이 없다. 교회도, 어느곳에서도 애들에게 한번도 진리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 7주 동안 진리와 자유, 힘 있는 인생을 살아야되는 것을 이야기하면 먼저 아이들의 우울증이 날아간다. 나의 경험을 가지고 공과적인 데이터로 7주 만에 훈련을 시키는데, 순종 훈련을 시킨다. 교회는 말씀을 주고 이게 진리인지 아닌지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주고 일주일 동안 살게 한다. 그러면 1주일 후 간증을 적어온다. 한 아이는 시험기간인데 기도하면서 시험 보라고 했더니 수석을 했다. 한번은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간증을 하기 위해  간증문을 한 학생에게 적어오라고 했는데 첫줄이 “나는 요즘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서자로 태어났습니다”였다. 그 아이는 가정 속에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새 학기에 들어와서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복 누나가 욕설을 하고 가는 바람에 안절부절하는 상황에 나를 만났다. 간증을 읽을 수 있겠는지 미안해 하는 내게 그 아이는 괜찮다며 간증을 읽고 내려왔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한 아이는 불안한 가정 환경으로 자존감도 낮고, 알바하면서 학교를 다니느라 성적도 엉망이었다. 그 아이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회복이 되니 힘을 차려서 성적도 올랐다.나중에 완전히 회복됐을 때, 집을 회복시키라고 숙제를 내줬다. 그렇게 했더니 가정도 회복됐다.

한번은 선교사 딸이 다 망가져서 집에서 자살하려고 노끈 들고 나오다 엄마한테 잡혔다. 우울증 지수가 –50으로 거의 산 송장이었다. 딸 아이를 살려달라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일단 맛있는 것을 사주고, 멘토링을 해줬다. 어느 교회 중고등부 헌신예배 강사로 초청받아 가면서 그 아이에게 함께 와 말씀을 들으라고 했다. 예배가 끝나고 그 아이가 “교수님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앙교육과 달랐던 선교사인 부모님의 삶이었다. 회복되고 나서 그 친구는 총신대학교에 입학했다.

다음세대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교수들. HGe 제공

-앞으로 비전과 소망이 있다면?

: 은퇴가 2년 남았는데, 젊었을 때 하나님께 그런 소원을 드렸다. 베풀어주신 게 많은데 학교에서 교수로서 하는 거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고. 현재 포도원교회에서 아내와 함께 35세 이상 미혼인 청년사역도 하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함께 돌보고 있다. 은퇴하면 케냐에 해양대학을 세우기 위해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다른 방법이 아닌 기도를 방법으로 삼고 있다.

: 국내에서 사역을 늦게 했기 때문에 어떻게 이끄시든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자연스럽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한 사역을 해나가고 싶다. 영어권에서 씨름하는 선교사들을 단기간에 회복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 연구년을 맞아 1년 동안 동남아 4개국, 아프리카 4개국을 돌아다니며 ‘거룩한 세대 중보기도대회’를 세우고 있다. 남은 곳이 중동이랑 유럽, 미국, 영국인데 8월까지 열심히 다닐 계획이다. 윤인구 총장의 자서전인 ‘부흥의 우물’을 세상에 드러내라고 하셔서 이분을 소개하고 어떻게 살아갔는지 증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고치신다는 약속을 믿는다. 기도가 단순히 기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증거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윤인구 총장의 이야기를 통해 교육을 고치시겠다는 약속을 믿는다.

중보기도를 통해 캠퍼스의 복음화와 다음세대의 회복을 경험한다는 정연철 교수. HG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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