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단상
북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단상
  • 임재훈 목사
  • 승인 2019.05.17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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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 거칠게 표현해서 12세기 중반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Rediscovery of Aristotle) 이후 중세 스콜라신학의 흐름은 교부시대 이래 주류적이던 (신)플라톤-아우구스티누스 경향을 벗어나 13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이 시기 중세미술은 기독교신학의 변화를 반영해 로마네스크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전환하며 특히 고딕 자연주의(Gothic Naturalism) 미술은 아리스토텔레스 적 세계관의 가시적 구현이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Black Death)이라는 전무후무의 자연재해는 플라톤적 보편실재론은 물론 아벨라드와 아퀴나스가 견지해온 아리스토텔레스적 온건실재론 세계관에 기반을 둔 중세교회의 신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된다.

개별자, 개체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고는 상인과 부르주아 기반의 도시문명과 맞물려 결국 오캄(William of Ockham, 1288-1348)의 유명론(nominalism)으로 발전한다. 이후 중세 기독교세계의 지적통일성을 제공해온 스콜라신학체계는 토마스와 스코투스의 실재론에 기반을 둔 고대파(antiqui)의 ‘옛길’(via antiqua)과 오캄주의를 표방한 근대파(moderni)의 ‘새길’(via moderna)로 나뉘게 된다. 특히 이 시기 민중들을 위로해야할 교회가 오히려 아비뇽유수(1309-77)와 3명의 교황이 동시에 분립한 교회의 대분열(Schisma, 1378-1417)로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은 중세를 넘어설 대안으로 고전고대의 부활(rinascita)을 지향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운동이 피렌체를 중심으로 배태되게 한다.


알프스이남(cisalpine)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생한 15세기 초기르네상스(EarlyRenaissance)의 이념이 한 세기 안에 전반부에는 브루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72)를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문예이론으로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99),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신플라톤주의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시대배경을 전제한다. 알프스이북(transalpine) 플랑드르에서는 이와는 다른 방향의 사고(思考)와 미술현상이 나타났다. 개별자를 중시하는 유명론(唯名論)이 더욱 개화, 만개함으로 회화에 등장하는 개별자들의 지상적 위계를 인정하지 않고 개별자들 모두를 더욱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플랑드르 사실주의 미술이 발생한 것이다.

브뤼헤 전경
브뤼헤 전경

2. 사실(寫實)주의 미술(Realism)이란 형식과 내용이 모두 담긴 표현으로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 재현(representation)하려는 창작태도를 의미한다. 철학적으로는 ‘사물은 객관적으로 존재 한다’라는 존재론을 전제한다.
1420년 경 플레말의 대가(master of Flémalle, Robert Campin, c.1375-1444),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c.1395-1441)로부터 비롯된 국제고딕양식을 넘어서는 플랑드르 사실주의 회화는 사실(寫實)에 천착함으로 세부에 대한 극사실적 묘사를 특징으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세계를 드러낸다. 이는 상업과 수공업을 통해 부를 획득한 새로운 시민계급 부르주아들의 세계관에 상응하는 것으로 그들의 가열한 합리주의, 리얼리즘 정신에서 기인하였다. 극적인 장면에 정확함을 기하고 리얼리즘에 우아함을 더해 회화의 깊이를 구현한 플랑드르미술의 미학은 부르주아들의 현실인식을 모태로 출현하였다.

브뤼헤 벨포르트(Befort) 탑
브뤼헤 벨포르트(Befort) 탑

3. 알프스이남 피렌체의 초기르네상스가 고전고대의 회복을 표방해 고전주의의 흐름을 통해 중세와의 단절을 지향한 반면, 알프스이북 플랑드르 르네상스는 후기고딕의 흐름 속에 전개됨으로 ‘중세와 연속성’(요한 하위징아, 아르놀트 하우저)을 지니며 기독교적 세계관, 신자들의 경건의 분위기를 모태로 하였다.
15세기 북유럽의 경건(Frömigkeit)을 기반으로 한 플랑드르미술은 회화적 감수성을 통해 ‘모든 사물(피조물) 안에 있는 창조주의 흔적’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북유럽의 기독교적 경건은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미(Schönheit Gottes Werkes)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를 묘사하는 화가는 그 자신 역시 피조세계의 한 부분이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경건한 신심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인내력을 가지고 사물의 세부를 묘사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상업자본주의와 중세도시를 기반으로 직물업과 무역, 금융업을 통해 새롭게 부를 획득한 상인과 부르주아들의 세계관과 이에 따른 미(美)의식에 조응해 동시적으로 태동한 15세기 사실주의 미술의 남유럽과 북유럽 간의 차이는 사회경제적 요인만으로는 해명이 안 되는 기독교신학과 경건의 상이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초기사상 에 영향을 미친 ‘새길’(via moderna)의 사고와 후에 확립된 만인제사장설에 나타난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는 ‘개인’(Individuum)의 발견은 북유럽의 신앙과 정신이 추구하던 근대로의 길이었다.

한스 멤링, 성요한 세폭제단화, 1474-79, 패널에 유화, 176x332cm, 브뤼헤 한스 멤링 미술관
한스 멤링, 성요한 세폭제단화, 1474-79, 패널에 유화, 176x332cm, 브뤼헤 한스 멤링 미술관

4. 얼마 전 헤이그에서의 기독교미술 강연 후 브뤼헤(Brugge)에 다녀올 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래 도시조성 원리인 광장의 관청과 마주한 대성당의 첨탑 대신 도시민의 자존감을 상징하는 높다란 벨포르트(Belfort) 탑이 세워진 것을 대하며 플랑드르 지역의 가열한 시민의식이 느껴졌다. 대성당(Sint-Salvatorskathedraal) 북쪽 익랑 외부에 장미창 대신 15세기 영국 고딕양식의 특징인 수직양식(Perpendicular Style) 모티브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 국제무역의 활성화를 가늠할 수 있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한스 멤링 미술관(Sint-Janshospitaal), 그뢰닝게 미술관(Groeningemuseum)에서의 15세기 플랑드르 작가들과의 만남은 이 글을 적게 한 동기이다.

얀 반 에이크, 성모자와 수도참사회원 요리스 반 데어 파엘, 1434-35, 패널에 유화, 124,5x160cm, 브뤼헤 그뢰닝게 미술관
얀 반 에이크, 성모자와 수도참사회원 요리스 반 데어 파엘, 1434-35, 패널에 유화, 124,5x160cm, 브뤼헤 그뢰닝게 미술관

 

 

임재훈목사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임재훈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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