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감추어진 하늘나라 셈법
밭에 감추어진 하늘나라 셈법
  • 문우일 교수
  • 승인 2019.05.17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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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으니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감추었고 그의 기쁨으로 나아가 가진 것들을 전부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상상하기에도 벅찬 ‘하늘나라’, 넓은 토지를 연상시키는 ‘밭’, 값비싼 ‘보화’, 슬픔이 아닌 ‘기쁨’, 일부가 아닌 ‘전부’, 밭을 사기에 충분한 재산, 마침내 그것을 팔아 보화 밭의 주인이 된 사람이 등장하는 이 비유는 언뜻 보기에 벼락부자 이야기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 읽으면, 풍요로운 언어 사이로 고단한 사람의 일상이 엿보인다. 남의 밭을 일구어야 했던 사람은 소작농이겠고, 부양가족이 딸린 가장일지도 모른다.

2천 년 전에 로마의 속주 유대에 살던 소작농의 고단함은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로마인들은 세금 할당액에 따라 속주들을 구분하였고, 세리들은 할당액 이상으로 유대인을 착취하였다. 분봉왕 아켈라오스 때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한 할당 세금 외에도 가족과 하인 수에 따른 부가세와 뇌물 및 부녀자까지 바쳐야 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308-309). 티베리우스 황제 때에는 “속주 시리아와 유대가 과중한 세금에 탈진하여 세금 감액을 탄원하였다”고 한다(타키투스, 『연대기』 2.42). 귀족들조차 언제 재산과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였고, 소작농들은 소작료까지 내야 했는데, 내지 못하면 노예가 되거나 가족까지 노예로 전락하였다.

당시에 소작농들이 중노동으로 얻는 대가는 보잘것없었다. 소출할 때, 세금과 소작료를 내고 남는 것으로 자신과 가족이 연명하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소출 시기도 아닌 때에 기대 이상의 놀라운 대가를 얻는다. 노동 현장에서 보화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슬그머니 보화를 캐어가지고 굶주린 가족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보화를 원래대로 밭에 감추어 둔 채, 기쁨으로 나아가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경영한다).

대체 어떤 보화이기에 밭까지 사게 할까? 밭에서 분리하는 순간 가치를 상실하는 보화일지 모른다. 감춘 행위는 단순과거형 동사로 표현하고, 팔고 사는(경영하는) 행위는 현재형 동사로 표현하였으니, 이 사람은 보화를 감춘 채로 모든 것을 팔아 밭 사기(경영)를 계속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보화’는 그리스어로 thēsauros인데. 이에 상응하는 영어 thesaurus는 온갖 비슷한말과 반대말이 담긴 ‘유의어사전’을 뜻한다. 그렇다면 보화는 누가 어떤 일터에서 발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드러나는 속성일지 모른다.

그 보화는 어느 지역 어떤 밭에 묻혀 있는가? 소재지가 어디든 보화는 남의 밭에 묻혀 있고, 남의 밭에서 일하는 사람의 눈에만 들어온다. 그렇다면 주인은 자기 밭에 보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만약에 몰랐다면 주인은 밭을 헐값에 속아 판 것이고, 알았다면 자기 밭에서 일하는 소작농에게 밭 값만 받고 보화를 선물한 셈이다.

그 밭의 가격은 얼마인가? 전 재산이 10원인 사람에게는 10원이고, 10조인 사람에게는 10조라고 할 수 있다. 가진 것이 얼마건 모두를 바치면 살 수 있는 밭이요, 무일푼인 사람에게는 공짜인 밭이다. 이런 밭이 세상에 어디 있나? 세상 전체가 그런 밭일 수도 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밭일 수도 있다. 하늘나라가 세상에 감추인 것처럼 보화는 밭에 감추어져 발견하는 사람의 눈에만 들어온다. 착취와 설움, 헐벗음과 굶주림이 일상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셈법은 벅찬 소망과 위로가 되었겠다. 하늘나라 셈법이 한국교회에서도 작동하고 있는가?

 

문우일 (서울신학대학교 조교수)
문우일 (서울신학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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