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1813년 5월 5일에 아버지 미카엘 페데르센 키에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스다터 룬 사이의 7형제 중 막내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뉴토에서 태어났다. 키에르케고르는 일반적으로 실존주의 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로 평가되는데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에 깔려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임주훈의 ‘인간의 불안이해와 극복을 위한 기독교교육적 연구’에 따르면,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루터교는 덴마크의 국교이고, 그의 부모 또한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키에르케고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게 기독교 정신으로 훈련시켰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 밑에서 아주 슬기롭고 밝은 소년으로 자라났고 그의 아버지는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끔 친구들을 불러 철학적인 문제를 논의했는데 그 논의를 듣는 것이 어린 키에르케고르에게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1830년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그의 관심사는 신학에서 문학으로 그리고 철학으로 조금씩 변화된다. 1835년에 키에르케고르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 생각한 그의 아버지가 원래 하녀였던 키에르케고르의 친모와 결혼 전에 억지로 성관계를 맺어 임신시켰다는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의 두 아내와 다섯 명의 자식의 죽음이 모두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인생의 큰 방황을 경험한다.
방황의 끝에서 1838년 5월 19일에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아버지와 화해하고 기독교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레기네라는 어린 여인과 약혼을 하지만, 1841년 8월에 갑자기 약혼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키에르케고르는 거의 매순간 글을 썼고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책을 여러 권 출판했다. 키에르케고르의 작품은 당대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1855년 11월 11일에 그가 죽고 나서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이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성실한 자기고백이자 고민이며, 계속되는 실존을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인생과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참다운 자아발견과 인간이 가진 불안의 극복을 위해 철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