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에 심어 주신 당신의 기쁨,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운 저들의 기쁨보다 크옵니다.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여호와여, 내가 이렇듯 안심하는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시편 4:7-8, 조선어성경)
아시아에서 태어난 인물 중에 최초로 191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타고르는 ‘밤의 영성’을 가진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고르가 쓴 ‘기탄잘리’에는 그가 어두컴컴한 밤에 깊은 고요를 느끼며 쓴 시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타고르의 시에는 전등이 환하게 어둠을 밝힌 현대도시에서는 나올 수 없는 ‘새벽감성’이 있다. 타고르가 어두운 밤에 깨어 그 깊은 고요를 즐기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세계적인 시인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시편에 있는 수많은 시 중에서 ‘밤의 영성’을 간직한 대표적인 시를 한편 꼽자면 시편 4편이 가장 첫머리에 꼽힐 수 있다. 시편 4편은 시편 3편과 비교했을 때 쌍둥이처럼 닮은 부분이 있다. 시편 3편과 시편 4편 모두 다윗의 시로 알려졌고, 시편 3편이 다윗의 아침기도라면 시편 4편은 다윗의 저녁기도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때 시편 3편을 읽고, 밤에 눈을 감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시편 4편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시적인 하루도 없을 것이다.
시편 4편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달라”는 간청으로 시작한다. 사랑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반응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4편의 시인은 고난 중에도 자신이 여전히 사랑하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그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랑으로 따뜻하게 반응하시길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시편 4편 6절에서 시인은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달라”고 말하며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자신의 큰 기쁨이라 말한다. 심지어 이 기쁨은 풍년의 때에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로부터 얻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크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에게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말한다면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사랑고백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그 상대방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최고로 아름다운 존재는 아닐 수 있다. 다만 내가 보기에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끼기에 과장법을 써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라고 고백한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우리도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즈음해 자기 전에 다윗처럼 하나님을 향해 진심어린 사랑고백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날만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평안과 함께 깊은 숙면을 허락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