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 음악가 부부 정요한·김예나 집사, "신앙은 우리 인생의 전부"
[인터뷰] 탈북 음악가 부부 정요한·김예나 집사, "신앙은 우리 인생의 전부"
  • 정세민 기자
  • 승인 2019.04.1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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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정권 무너지게 해 달라 매일 기도

내용을 정요한·김예나 부부는 2014년부터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이하 한정협, 사무총장 석사현 장로)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탈북민으로서 복음통일을 위해 하나님이 남한으로 불러주셨다고 믿는 이들 부부는 평양음악대학 선후배로 만나 함께 찬양간증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탈북한 정요한 집사와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대낮에 압록강을 건넌 김예나 집사에게 하나님이 인도하신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정요한 김예나 부부는 신앙이 인생의 전부라 고백한다. 정성경 기자
정요한 김예나 부부는 신앙이 인생의 전부라 고백한다. 정성경 기자

북한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나?

정요한 : 4살에 처음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때 할아버지의 기도로 시작했고, 5살에 전국방송예술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다. 또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김정일의 안중에 들었고, 평양시 국립교향악단 부설 영재음악학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이후 평양음악대학을 거쳐 러시아 차이코프스키음악원을 나와서, 평양음악대학 바이올린 교수로 지내면서 김정일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악단을 책임졌다.

나중에 동유럽에 교환교수로 나가게 됐는데, 당시 대사관에 나와 있는 국가보위부 요원에게 수입을 당자금(정치자금)으로 탈취 당했다. 북한에선 해외에 나가 돈을 벌수 있는 사람들을 압박해 그들의 수입을 당자금(정치자금)으로 탈취한다. 그 때 안색이 좋지 않은 나를 본 외국인 교수로부터 “교회 한번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였다는 사실을 처음 고백했다. 이후 주일마다 비밀리에 택시를 타고 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발각돼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

북한에서 인권이란 말은 너무 고상하다. 그것보다 더 무자비하다. 내가 아무리 부요하고 행복 속에 살아도 위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 지금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김예나 : 아버지가 공부를 많이 한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유의식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사회의 모순점을 10대 때부터 아버지와 이야기했다. 평양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음악피아노 박사원에 올라가 박사논문을 쓰며 리사이틀을 준비할 무렵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 하이레벨에 들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는데, 시장바닥에서 장사하는 분들의 삶은 말도 못한다.

중국으로 건너가려고 대낮에 압록강 앞에 섰을 때는 여기서 건너다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벽장에 하나 가득 피아노책이었는데, 그 중에 악보책 딱 하나 가지고 압록강 앞에 섰다. 그 절박감은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지금 남한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정 : 악기하고 악보책을 가지고 뛰쳐나왔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언제 붙잡혀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 때 가짜목사를 만나 악기, 악보책, 가족사진 등을 모두 빼앗겼다.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증거는 가족사진 한 장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몇 달 뒤 숨어 지내게 된 집에서 똑같은 사기꾼에게 당한 외국인으로부터 가족사진을 찾게 됐다. 이후 악기와 악보책은 한국에 와서 찾을 수 있었지만 너무 충격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내가 견딜 수 있는 고난만 주신 것 같다.

김 : 브로커를 통해 어머니와 함께 중국주재 심양한국영사관에 들어갔다. 그때 약속은 영사관에 들어가면 빨리 한국에 갈 수 있다 했지만 1년 8개월을 머물러야 했다. 2005년 6월에 들어가 2007년 1월에 나왔다. 탈북민을 데리고 있는 것이 대외로 알려지면 안 되니까 지하주차장에 임시거처를 만들어 머물렀다. 햇빛도 못보고 있었다. 6개월 정도는 아예 밖에 출입을 못했고, 이후 공기를 맡게 해 달라 요구해 밤 10시 넘어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식이었다. 피아노연습도 저녁에 회의실에 있는 피아노를 이따금씩 15분 정도 치곤했다.

북한 사람들이 50명 정도 같이 생활했는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24시간 한 곳에 있으려니 말도 못했다. 1년 8개월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자유라는 것을 얻는 게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은 너무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싶어 탈북한 정요한 집사. 정성경 기자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싶어 탈북한 정요한 집사. 정성경 기자

남한에 정착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정 : 교회에서 연결이 돼 컴퓨터 회사에 다녔다. 3년 동안 교회, 회사, 집만 정신없이 다녔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선택해 결정하니까 힘이 들긴 했지만 잠시잠깐이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갔다. 또 교회에서 오케스트라 악장을 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강압적인 우상숭배였지만 여기 와서는 우러나오는 음악을 하니까 굉장히 행복했다.

한편 북한말을 하니까 다시 한 번 쳐다보고, 기분 나쁜 일도 많았다. 그러다 힘들 때는 내가 나라를 버리고, 당을 배반하고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북한에서 받은 공산교육이 하루 이틀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것이 더 힘들었다.

김 : 정착은 힘들지 않았다. 1년 8개월 동안 묶여있다 나가니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에 와서 양천에 있는 좋은 목사님을 만나 교회 피아노로 밤새 연습을 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새벽기도 전까지 연습했다. 이후 시험을 보고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한정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정 :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만난 분이 탈북자도시체험을 인도하는 한정협 석사현 장로였다. 하지만 그때는 굉장히 싫었다. 비밀을 캐려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2,3년 동안은 연주요청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때는 몸만 왔지 북한에서 배운 습성이 그대로 있었다. 그게 다 무너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말씀 안에서 녹아내리는 데 5년 정도 걸렸다. 2014년부터 한정협에서 활동했는데, 3년 동안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여건 좋은 데서 섭외가 많이 왔다. 하지만 이들은 다 세상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러면 탈북한 의미가 없겠다 싶어 탈북민이 신앙으로 잘 정착하게 돕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2013년 12월 말에 한정협에 먼저 연락해 찾아가 탈북민이 신앙으로 잘 정착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다. 그때까지 한정협도 탈북민을 도와주기만 했지 동역자로 같이 사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한정협 홍보대사로 임명받고 활동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만났나?

정 : 여전도회 중보기도모임에 가서 아내를 만나 평양음악대학 동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 독주부는 다 외우고 있는데 반주부가 없다고 했더니 다 외우고 있다고 해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연주를 해보니 실력을 알 수 있었고 내 사람이다 싶었다. 그 때 아내는 이화여대 졸업을 앞두고 있어 소개가 많이 들어올 때였다. 지금도 남한에 빨리 정착하려면 남한 사람하고 결혼하려는 흐름이 있다. 북한 출신에다 같은 음악인이고, 같은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인생설계에서는 경계했다. 그래서 이화여대에 날마다 찾아가 집에 데려다 주곤 했다. 2년을 쫓아다니다 결혼은 2011년에 했다.

김 : 동질감을 느끼고 언어가 통한다는 것이 살면서 중요한 것 같다. 자라면서 형성한 생활배경이 10년 정도 살고부터는 굉장히 중요하다. 길게 봤을 대는 음악적으로도 호흡이 맞고,고향도 비슷하고,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착실한 사람하고 살아야지 생각했다.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대낮에 압록강을 건넌 김예나 집사. 정성경 기자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대낮에 압록강을 건넌 김예나 집사. 정성경 기자

두 사람에게 신앙은?

정 : 내 인생의 전부다. 시편 84편 4절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는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 전 세계 클래식의 뿌리는 다 찬송가다. 그래서 신앙에 올인 하는 것이다. 북한의 영혼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으니까 복음통일을 위해 대한민국에 불러주셨다 믿는다.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삶을 불태우려 한다.

김 : 신앙을 숨이라고 한다. 숨이 떨어지면 신앙도 떨어진다.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어주신 숨이 신앙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정 : 하나님 뜻 가운데 쓰임 받는 것이다. 자칫하면 매너리즘에 빠질까 두렵다. 사역하다보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바이올린인데 이걸 세상에서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고 협소하게 교회에서만 활동해야 하나’라는 매너리즘에 빠질까 제일 무섭다. 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려 한다.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이 항상 마음에 있다. 부부간에 클래식연주가가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세계에 유일하지 않나 한다. 부부 음악가로서 복음통일을 위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 세계 평화를 위해 격식을 차리지 말고 경중을 따지지 않고 오직 주님만 붙들고 나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련과 난관도 많지만 뚫고 나갈 힘은 기도밖에 없더라.

북한에서 오다보니 좋을 때고 나쁠 때고 추석, 설날 같은 명절 때면 부모형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 더욱 북한에서 하나님을 몰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날마다 제일 첫 번째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김정은 북한정권이 하루빨리 무너지게 해 달라 기도한다. 김정은 같은 살인마이자 사탄의 괴수를 미화 분식한다는 자체에 실망한다. 그래서 매일 삼대세습으로 내려오는 김정은 북한정권이 하루빨리 무너지게 해 달라 기도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음악으로, 찬양으로 하나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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