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의 아름다움(美)
아비가일의 아름다움(美)
  • 심광섭 목사
  • 승인 2019.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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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어링(Françoi Spiering), The Meeting between David and Abigail, 양탄자, 1620.
스피어링(Françoi Spiering), The Meeting between David and Abigail, 양탄자, 1620.

구약 사무엘상 25장을 열면 말씀은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아비가일은 이해심도 많은데다가 용모도 아름답다고 소개하는 반면, 그의 남편 나발은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하다고 말한다. 나발의 성품이 어떻게 꼬였기에 그런 평가를 받을까.

나발은 갈멜에 아주 큰 목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가축들을 치고 있었다. 다윗의 부하들은 나발의 일꾼들을 도와 외부의 적으로부터 양떼를 보호하였고 그것들을 치는데 협력하였다. 드디어 양털 깎는 날, 굉장한 잔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잔치음식을 좀 제공해달라는 안부의 편지를 나발에게 보낸다.

그러나 나발은 음식을 제공하기는커녕 다윗을 모욕하는 말을 하고 부하들을 강도 취급하는 막말을 한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25:10). 안면몰수에 은혜를 입고도 도리어 모욕하는 배은망덕한 말을 한 것이다. 이런 나발의 언행은 포악하고 야비하다. 다윗은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는 녀석이라고 판단했다.

다윗은 나발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태에 분기탱천한다. 다윗은 군사 400명을 인솔하여 나발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출정한다. 나발의 포악함이 다윗의 마음속에도 잠자고 있던 포악함을 건드려 깨운 것이다. “내가 내일 아침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남자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나 다윗은 하나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겠다.”(25:22)

다윗은 순간 치밀어 올라오는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이다. 다윗은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다. 다윗은 그동안 광야에서 배운 거룩한 아름다움을 잃은 것이다.

아비가일은 두 남자(나발과 다윗)의 포악한 행동을 직관한다. 그녀는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재빨리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긴급한 위험을 목전에 둔 위기상담이다. 과도한 행위는 위기를 초래한다. 다윗도 위기이지만 그녀도 위기를 맞았다. 그녀는 잔치 음식을 종류별로 나누어 나귀 여러 마리에 가득 싣고, 다윗을 영접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녀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과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내려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애원한다. 그녀의 애원은 24~30절까지 짧지 않은 명문장으로 기록된다.

우선 그녀는 나의 몹쓸 남편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시길 바란다고 하면서, 잘못의 책임을 자신이 떠맡는다. 그리하여 “이 종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간원한다. 그녀가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대접하고 무릎 꿇고 엎드려 용서를 비는 행위는 당연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나는 하이라이트는 하마터면 상실할 뻔 했던 다윗의 마음을 다시 일깨워 보전(保全)한 것이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당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마시라고 간언한다. “주님도 살아 계시고, 장군께서도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것으로부터 생명을 짓는 생명의 하나님이지 죽음의 하나님이 아니다. 당신은 “돌팔매로 던지듯이 팽개쳐 버리실” 쓰레기가 아니라 “주 하나님이 생명 보자기에 싸서 보존하실” 분이다. 이제 주님께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 하찮은 일에 현혹되어 분을 참지 못해서 나발을 상대로 싸우실 분이 아님을 강력히 일깨운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간언이 아니었더라면 시시하고 좁쌀 같은 보복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에 치명적인 흠집을 낼 뻔 했다.

다윗은 아비가일과의 만남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다시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다윗은 아비가엘의 아름다움과 슬기를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거룩한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하나님은 “오래고도 새로운 아름다움!”(Pulchritudo antiqua et nova)이다.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통해 바로 이 아름다움을 다윗과 아비가일 사이에 일어나게 하셨고, 아름다움은 두 사람의 삶을 통해 형태를 부여받는다(gestalten). 빛나는 아름다움의 사건 속에서 추함과 비루함은 봄볕에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성경은 나발이 술 취한 후에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열흘쯤 지났을 때에, 주님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25:37-38)고 쓰고 있다.

루벤스(Paul Rubens), David Meeting Abigail, c. 1620;
루벤스(Paul Rubens), David Meeting Abigail, c. 1620;

아비가일은 처음 다윗에게 몸을 숙여 엎드렸지만 지금 다윗은 마음을 숙여 엎드려 아비가일에게 청혼한다. 마음이 빠진 엎드림은 굴종일 수 있지만, 마음을 담은 엎드림은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 마음의 표현이다. 아비가일과 다윗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엎드림으로써 부부(夫婦)사이가 된다. 그 사이는 아름답다. 사순절기, 우리는 주님께 엎드림으로써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될 것이다.

아비가일은 주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아이콘(Icon)이다. 빛이 어둠에 비칠 때 어둠은 사라지듯이 용서와 자비의 아름다움이 비칠 때 포악한 앙갚음의 추함은 사라진다. 아비가일은 아름다움의 아이콘이다. 동남아시아 출신 작가 레인 리린(Rain Ririn)은 바로 아비가일의 아이콘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Rain Ririn, Abigail, 20c;
Rain Ririn, Abigail, 20c;

아이콘은 자신을 통해 신성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콘은 ‘거룩한 것’(聖事)이다.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비루한 우리가 참 아름다운 얼굴인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러러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통로이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다.

교리적 진리(眞)가 구원의 길을 설계하고, 윤리적 실천(善)이 구원의 길을 닦는다면, 신앙의 아름다움(美)은 구원의 전체형태(Gestalt)이다. 그러므로 ‘미감’은 논리적 지식과 윤리적 실천이 통섭되어 융합되는 존재 자체에 대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총체적 인식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진선(眞善)한 미(美)이다.

오늘 새벽 기도회에서 부른 찬송가는 우리의 전 심령을 밝혀 진선(眞善)한 미(美)를 맛보게 하는 영적 감각을 깨우는 찬송詩이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막혀진 내 귀 여시사 주님의 음성 듣게 하소서
봉해진 내 입 여시사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찬송가 366장)
 

 

심광섭 목사 전 감신대 교수(조직신학/예술신학)예목원 연구원
심광섭 목사
전 감신대 교수(조직신학/예술신학)
예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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