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9일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독일의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순교했다.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해 4월 30일에 죽은 것을 생각하면 본회퍼는 불과 20여일 차로 안타깝게 순교한 것이다. 본회퍼가 순교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칼 본회퍼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학자가 되고 싶었던 본회퍼는 튀빙엔대학교와 베를린대학교에서 이른 나이에 신학을 공부했다. 본회퍼의 생애는 1933년에 나치가 독일에 집권하면서부터 평범한 신학자의 길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본회퍼는 히틀러 숭배를 강요하는 나치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하고 오히려 나치를 옹호하는 독일의 제국교회에 실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회퍼는 나치에 저항하는 고백교회 운동에 앞장서게 되고 그곳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본회퍼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혐의로 1943년 4월 체포되었고, 2년간의 수용소 생활 끝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본회퍼는 신학자로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책은 산상수훈의 제자도를 강조하는 ‘나를 따르라’(Nachfolge)와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신도의 공동생활’과 같은 책들이 있다. ‘나를 따르라’에서 본회퍼는 “믿는 자는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는 믿는다”라는 말을 통해 행동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설파한바 있다.
수용소에서 본회퍼는 “이것은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언 그대로 나치가 그의 목숨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의 영혼은 죽이지 못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회퍼의 생애와 사상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