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교회모델] 박곡교회(김두만 목사),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 되야죠”
[미래세대 교회모델] 박곡교회(김두만 목사),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 되야죠”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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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분열의 역사를 겪은 성도들
신앙으로 하나 되는 길 선택
분열의 역사를 딛고 하나가 된 박곡교회. 3월 31일 주일오전예배에 참석한 성도들. 교회 제공

 

한 마을 두 교회로 분열된 역사

즐거웠던 명절이 불편한 시간으로

“남북통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죄송”

중립노선으로 무소속을 택한 교회

오직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교회로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2길에 위치한 박곡교회(김두만 목사)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6년에 세워진 박곡교회는 1962년 ‘합동측’과 ‘통합측’으로 분열됐다가 1990년대 초 다시 하나가 되었다. 현재는 무소속으로 건강한 성도들이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있다.

장신대 교회사 임희국 교수의 ‘청도군 박곡교회 사기’에 박곡리의 첫 기독교인이자 박곡교회를 설립한 김춘화 영수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박곡교회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김춘화 영수의 김광득 장로가 세운 기념관 액자에 “...1907년 봄 공은 대구 약전골목에서 미국 선교사의 노상전도를 듣고 감화를 받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깨닫고 1908년에 고향 청도군 금천면 박곡동에 교회를 개척하고 동년 4월에 미국 맹의와 선교사로부터 학습을 받고 같은 해 8월에 세례를 받았고 함께 영수직을 받았다...”고 적혀있다.

김광득 장로의 증언에 따르면 1904년 마을 사람 최운환이 안의와 선교사와 남성정교회(현 제일교회) 교인들의 전도를 통해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면 좋다더라”고 말했다. 그 이후 안의와 선교사가 순회목사로 마을을 찾아와 전도하고, 신자들이 신지마을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 박곡서당에 모였다가 이어 1906년 네 칸 규모의 교회를 설립했다. 교회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교회 밖은 분열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1938년 일제는 한국 장로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해 2월 9일 평북노회가신사참배를 국가 의식으로 인정하며 결의했고, 장로교 총회가 개최된 9월 9일까지 전국 23개 노회 가운데서 17개 노회가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장로교 제 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1945년 8‧15해방을 맞이했지만 신사참배를 뉘우치고 회개하고자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하나되지 못했다.

1946년 6월에 열린 장로교 총회에서 일제 강점기에 학교 운영을 위해 일제 당국과 타협했던 조선신학교를 총회 신학 교육 기관으로 승인하면서, 당시 신사참배 강요 거부로 평양의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 경남출신 목회자 주남선과 한상동이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그렇게 9월 ‘고려신학교’가 개교하고 끝내 하나 되지 못한 채 1952년 9월 11일 경남법통노회에서 목사 50명, 장로 37명이 총노회를 조직했다. 그렇게 ‘고신교단’이 나뉘었다.

그리고 1947년 봄, 조선신학교 김ㅡ재준 교수가 ‘성경 유오설’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장로교 제37회 총회에서 목사직을 박탈하고 그의 소속 노회인 경기노회에 제명을 지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6월 10일 조선신학교 측의 별도 총회가 열리면서 ‘기독교장로회’가 생성됐다.

그렇게 시작된 장로교의 교단 분열로 1954년 고려신학교파, 재건파, 복구파, 자유파 등으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1954년 5월 총회는 1938년 결의한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또 다시 분열의 역사를 남겼다. 1959년, 통합(연동측)은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저들이(승동측)이 주장하는 대로 ‘용공,  신신학, 단일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화평과 통일을 위해서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표 파송을 정지하기로 한다”고 결의했다. 반면, 합동(승동측)은 “세계교회협의회를 영구회 탈퇴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기로 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그 여파가 경상북도 산골마을 청도까지 미쳤다.

일제강점기도 신앙으로 잘 이겨낸 교회와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총회가 세계교회협의회 WCC 문제로 갈라지면서 교회도 나뉘었다. 나경인 장로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에큐메니컬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성도들이 각자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나눠지게 되었다”고 했다.

끝내 1962년 박곡교회 교인들 한편은 ‘합동측’으로 또 다른 한편은 ‘통합측’으로 갈라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회 재산을 서로 차지하려는 갈등이 시작됐다. 그리하여 합동측은 건물을 차지하고 통합측은 사택과 토지를 차지하는 것으로 싸움이 일단락 되었다.

3월 31일 주일오전예배에 참석한 박곡교회 장로들. 왼쪽 앞줄부터 김종영 장로, 최희수 장로, 나인경 장로, 안상훈 장로, 박동한 장로, 김인조 장로. 교회 제공

예수님 마음을 가진 교회로 하나 되게

한 마을에서 분열된 교회는 각각 자리를 잡고 성전도 건축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조상대대로 함께 하던 마을이 교회가 나뉘면서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들만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교회 성도들과는 못본체 하며 서먹하고 어색한 사이가 됐다.

최희수 장로는 당시를 “서로 불편했다”고 떠올렸다. 어른들만 어색한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어색해졌다. 게다가 예배가 있는 날 마을 잔치가 함께 앉아있다가도 일어나 서로 다른 교회로 향해야 했다.

어느 장로의 가족은 많은 친척들이 한 마을에 살고 있었지만 교회가 갈라지면서 집안 역시 양편으로 나뉘었다. 함께 예배드리며 교회서도 만나던 친척들이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을뿐더러 명절에 함께 모였다가도 서로 어색하게 앉아 있다 각자의 교회로 가곤 했다.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냈던 이들이지만 명절이 힘들고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중으로 반복되는 상황에 불편함이 더해갔다.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다며 양쪽 교회 장로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한 마을에게 분열된 채로 사는 게 하나님께도 죄송해졌다.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죄스러운 나머지 감히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두 패로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이 나라를 통일시켜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남북통일을 위하 기도하기 우리가 먼저 하나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해주옵소서.”

교회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고, 여러 번 모임을 가졌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하나 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

교회가 다시 하나 되게 되면 일단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지 말고 중립노선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대 초반, 30년 만에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

합동측이었던 교인들이 교회를 비우고 통합측 교회로 이사했다.

그렇게 박곡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분열의 역사를 끝내고 일치를 이뤘다.

교회 목회자는 합동측과 통합측에서 번갈아가며 초빙했다. 그러나 한 교단 소속 목회자가 오게 되면 또다시 내외부적으로 교단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지난 2010년 4월 27일 56세 나이로 구미시 장천교회를 일찍 은퇴한 김두만 목사를 초빙했다.

나인경 장로는 “김 목사는 한 교회에서 오래 있다 은퇴했고, 무소속이기 때문에 초빙하게 됐다”며 “너무 좋다”고 덧붙였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다 모범생"이라며 칭찬하는 김두만 목사. 정성경 기자

현재 박곡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행복한 교회로 이웃과 더불어 복음의 은혜를 나누는 교회'라고 소개한다. 휴무장로 1명, 원로장로 4명, 은퇴장로 2명이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다. 성도들의 평균 나이는 80대 중반이다. 오히려 김 목사가 어린 편이다.

그럼에도 장로들은 여전히 정정하게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다. 김 목사는 “우리교회 장로님들은 다 모범생”이라며 칭찬했다. 일례로 주일오전예배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모든 성도님들이 예배 준비를 마치고 착석한다. 30여명 남짓의 성도들이지만 1980년대 지어진 교회 건물과 사택을 보수하기 위해 성도들의 선뜻 헌금을 내기 시작해 8천 만 원의 공사도 진행했다. 또한 청도기독교총연합회에서 연합회관을 짓는다고 할 때 총 1천 2백 만 원의 헌금을 한 바 있다.

박곡교회를 통해 그라운드골프가 청도군에 시작됐다. 김 목사의 지휘로 시작된 그라운드 골프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박곡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70여명의 회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곡교회의 강점은 무소속으로 어느 교단과도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연합기관은 물론이고 통합이든 합동이든 상관없다. 초교파적인 교회로, 지역의 연합을 위한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인경 장로는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교단 상관없이 첫째 믿음으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들이 세속적인 가치고 갈등하거나 분열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기 바란다”며 “성도들이 바라는 것, 하나 될 수 있는 것을 교회가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희수 장로 또한 “자손들에게 늘 믿음으로 살라고 한다. 언제나 말씀에 준해서 생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박곡교회의 비전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교회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곡교회 앞에선 김두만 목사(오른쪽)와 최희수 장로. 84세인 최희수 장로는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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