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통과 번제단
빨래통과 번제단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2.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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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28절

빨래통에 빨래가 쌓이면 가정주부의 근심도 쌓인다. 성장기의 남자아이들이 2~3명이 있으면 빨래통이 커야 한다. 빨래통은 보통 가정집에서 화장실에 두거나 베란다에 둔다. 빨래통이 있는 곳에는 세탁기가 짝하여 있다. 빨래통을 보면 근심이 쌓여가고 언제 빨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면에서 쉬지않고 소리친다. 빨래통에 쌓인 빨랫감을 보면 우리 사회 속에 쌓인 죄가 생각이 난다. 빨랫감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죄를 마음에 품고 느끼는 죄책감과 공통점을 가진다. 살인죄를 짓고 간음을 행하고도 합리적으로 잘 했다고 할 사람이 있는가? 그럴 수 없고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합리화이다. 죄인은 끊임없이 고개를 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빨래통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었다.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알료나 아바노브나를 사회악이라고 규정하고 도끼로 살해했고 목격자인 그녀의 동생도 살해했다. 돈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공포감 때문에 훔친 것을 써보지도 못하고 돌 밑에 묻었다. 사회악을 제거했기에 의식적으로 살인을 정당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는 죄의 고함소리를 막지 못했다. 살인자는 사람으로부터 숨고 정신 착란을 겪고 사회와 단절된다. 죄의 결과는 사회로부터의 죽음이다. 전쟁 중에 살기 위해서 하는 살인은 정당한 것인가? 국가가 공인한 살인은 불가피한 것인가? 나폴레옹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어떠한 형태의 살인에도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운동을 보면서 죄는 조건만 갖추어지면 고함소리를 지른다는 생각이 든다. 죄를 숨길 수는 없다. 특히 최후 심판을 하는 백보좌 앞에서는 숨길 죄가 없다. 우리 문학 중에 장화홍련전을 보면 죄는 원혼이라도 고발을 한다는 의식이 있다.

죄에 대한 의식은 시대별로 약했다가 강했다가 할 수 있다. 고난을 만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조사한다. 고난이 온 것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 포트만은 '죄의 역사'에서 9·11테러 사건으로 미국인들이 죄의 현재성을 부각시켰다고 한다. 죄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악행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성적 순결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덕목이었다. 당시에는 여성의 순결뿐만 아니라 남성의 순결도 강조되었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은 것도 간음했다고 말씀하셨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교육하고 실천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고대 교부 중에 히에로니무스는 일어나는 정욕을 다루기 위해 지옥을 상상하고 금식을 해도 소녀들이 가끔 자신을 에워싸며 춤을 추는 상상을 했다. 그럴 때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곤 했다고 한다. 예수님의 발에 눈물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그 눈물을 닦아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음란죄를 억제하려는 자신의 노력을 팬티 속에서 발기하는 성기가 비웃는다고 하며 음란죄와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많은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은 성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서 여자를 또는 남자를 해골로 상상하는 훈련을 한다. 이것은 성적 욕망을 자제하는 근육을 키우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이 의롭기를 원하셨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순결 명령에 따라서 살기를 원하셨다. 제자들이 아내에게 정조를 지키고 남편에게 정조를 지키기 원하셨다. 웨딩 드레스의 하얀색처럼 제자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순결하기를 원하셨다. 이것을 어기고 소돔과 고모라 시절처럼 성적으로 난잡한 것은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온갖 오물로 더럽힌 것과 같아서 신랑이신 주님을 화나게 하는 일이다.
 
번제단은 양 등을 도축하고 각을 떠서 올려놓고 태우는 곳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죄인과 제사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번제단은 길이 약 2.25m, 너비 약 2.25m, 높이 약 1.35m의 크기로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고 놋으로 싼 제단이다.(출애굽기 27:1~8) 이것을 성막 앞마당에 설치하고 그 위에 양, 염소, 소 등을 태워서 백성의 죄를 대속했다. 번제물이 타는 것은 곧 죄가 타는 것이다. 만약 죄가 번제단 불에 타지 않았다면 지옥 불에 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죄의 값을 다 치르셨다. 이 대속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서 죗값을 치러야 하고 지옥까지 허락하시며 죄를 없애고 의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번제단, 십자가, 지옥 불에서 보아야 한다. 성범죄자들이 번제단의 불, 십자가, 지옥의 불을 본다면 범죄의 욕망을 다스리는 근육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번제단


십자가형은 교형이나 참형, 능지처참보다 더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형벌 중에 제일 고통스러운 형벌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상대방의 성을 파괴한 자의 생각과 몸은 이렇게 파괴되어야 끝이 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여자의 순결이 극히 강조되던 때라서 부정이 발견되면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렇게 벌을 준다고 간음죄의 기억이 없어지지는 않고 기록으로 내려오고 있다.

김동헌 십자가 (출처 : 분도출판사 홈피)
김동헌 십자가 (출처 : 분도출판사 홈피)


죄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 시냇가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는 풍경은 흔한 것이었다. 박수근의 빨래터를 보면 여자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진다. 빨랫감에 비누를 칠하고 손으로 문지르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물에 헹구어서 때를 뺐다. 요즘 세탁기는 이러한 동작을 기계적으로 한다. 세제도 많이 발전하였고 때를 빼는 기술도 강력해졌다. 그래도 미세한 때나 얼룩은 빠지지 않는다. 피는 몸의 영양분을 온몸에 골고루 전달하고 몸속의 쓰레기를 다 청소한다. 세제 중에 피만 한 것이 없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영혼에 흘러서 세척 작용을 하고 죄의 얼룩이 남지 않게 한다. 죄 지은 마음이 죽고 의로운 마음이 예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결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박수근 '빨래터'
박수근 '빨래터'


하나님은 우리의 죗값을 다 치루어주셨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기에 희생하시고 손해를 보셨다. 빨래통을 보면서 번제단이 상상이 되고 십자가 상의 일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더 나아가 지옥에서 꺼지지 않고 타는 불도 생각이 난다. 마음 속에 빨아야할 죄의 기억은 방치해 두기에 부담스러운 것이다. 빨고 태워 없애고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같은 순결한 마음과 행위를 새롭게 가져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와 지옥불을 두신 하나님의 목적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목적이다.  

 

 

 

 

김한윤 박사 (미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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