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아, 이제 깨달아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신을 차려라. 경건되여 여호와께 례배드리고 두려워떨며 그 발아래 꿇어엎드려라.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 금시라도 터지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분께 몸을 피하는자 모두다 복되여라." (시편 2:10-12, 조선어성경)
신약학자 그레고리 빌은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는 책에서 “사람은 자신이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간다”(We become what we worship)는 명제를 강조했다. 우리가 누구를 예배하는지는 불가피하게 예배자의 인격과 성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음란하고 파괴적인 우상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는 우상을 숭배할수록 그가 섬기는 우상을 닮아 음란하고 파괴적으로 변할 것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예배를 드릴수록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편 2편은 히브리 왕조와 관련된 ‘궁중시’ 혹은 ‘즉위시’로 분류된다. 즉위식은 새로운 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그에게 공식적으로 율법서를 수여하며, 기름을 붓고 왕위에 올랐음을 선포하는 의식을 포함한다. 시편 2편이 다윗 왕가의 즉위식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은 시편 2편에 주로 나타난 표현이 나단에 의해 선포된 다윗언약과의 유사하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내가 친히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을 양자로 입양하시어 하나님과 다윗의 후손 사이에 부자관계가 형성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 2편 7절에 보면 “너는 내 아들, 나 오늘 너를 낳았노라”는 표현이 등장하여 시편 2편이 왕으로 즉위하는 다윗의 후손과 관련된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편 2편에서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오를 때 그를 대적하여 나라들이 술렁대고 민족들이 헛일을 꾸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름부음 받은 자가 철퇴로 질그릇 부시듯이 원수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원수들이 질그릇처럼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경건되여 여호와께 례배드리고 두려워떨며” 그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조선어성경에 “례배드리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는 기본적으로 섬기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아마도 여기에서는 이방 나라들이 속국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복종해야만 한다는 뜻을 가진다.
시편 2편은 결국 “그분께 몸을 피하는자 모두다 복되여라”는 시어로 마무리 된다. 안양대 김창대 교수는 시편 1편의 첫 부분과 시편 2편의 마지막 부분에 모두 복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음을 강조하며 시편 1편과 시편 2편이 패널구조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교수는 시편 2편의 주제를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어 종말에 임할 메시아와 함께 땅을 차지하는 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시편 2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만 예배하며 섬기는 기쁨이 참된 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