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에 목마른 사회
‘공정’에 목마른 사회
  •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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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5장 15절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평창 동계올림픽이 패럴림픽으로 이여지고 있다. 4년간 피땀 흘려 노력한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는 감동 그 자체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선수들이 후회 없이 실력 발휘를 하고 경기 자체를 즐겼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국력 경쟁과 정치 논리로 변질된 지 오래지만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와 팬들이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벌어진 평창 올림픽의 가장 큰 화제는 남북 단일팀일 것이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찬반을 떠나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예상과 달리 남북 단일팀 구성이 올림픽의 압도적인 ‘씬 스틸러’(scene stealer)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세대인 2,30대의 부정적 반응은 놀랍기까지 했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던 점과 공정하지 못한 의사결정과정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통일과 평화 보다 공정이 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니 기성세대 입장에선 문화충격이라 해야 할까?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의미의 공정이 중요한 사회가치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공정을 중시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집착은 종종 측정 가능한 정량적 수치나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과 공정을 동일시하는 경향을 낳는다. 입시에서 학생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은 정성 요소 때문에 불공정하고 객관식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무한 반복의 문제풀이를 자초하고 창의인재 양성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수능을 (제한된 의미의) 공정하다는 이유를 들어 옹호하는 것이다. 주관적이고 정상적인 평가도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다면 공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과잉 경쟁의 일상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어려서부터 지옥 같은 입시와 취업 경쟁을 치르면서 배움과 경쟁 자체의 즐거움보다 결과에만 연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은 우리 사회의 신뢰(trust) 결핍에서 찾을 수 있다. 신뢰 부족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만큼 상태가 심각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균등과 과정의 공정함이 충족된다면 원치 않는 결과에도 승복할 것이다. 문제는 기회 균등과 과정의 공정함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속속 드러나는 공공기관의 취업 청탁과 부정, 대학교수들이 자녀를 논문 저자에 올린 사례 등을 보면 이러한 태도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 결과 OECD를 비롯한 국내외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과 신뢰 지수는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불신사회다. 타인에 대한 믿음과 관용(tolerance)이 없고 모두를 경쟁자와 적으로 삼는 사회는 불행할 뿐만 아니라 미래도 없다. 조속히 사회 신뢰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는 ‘헬 조선’의 오명을 영원히 벗어던지기 어려울지 모른다.

후쿠야마(Fukuyama)는 사회자본을 사회 내 존재하는 신뢰로부터 나오며 사람들 간의 협업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종교는 사회자본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신뢰 시스템 재건이라는 절박한 시대적 소명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을까? 201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국민 10명 중 2명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 답했으며, 기독교를 3대 종교 중 가장 신뢰하지 않는 종교라고 답했다. 게다가 사회통합에 기독교가 기여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이 더 우세했다. 사회 불신 못지않게 기독교에 대한 불신 역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세습과 부정 비리 등 일부 대형교회의 여전한 구태를 보면 그러한 기대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진다. 신앙인이자 교인으로 부끄럽고 절망스러운 것은 한국 교회가 사회 불신에 점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는 듯해서다.

 

 

 

문상현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2004년 - 현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1992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텔레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1997년)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박사 학위(2002년)
한국방송학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 이사
TV조선 시청자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분과 특별위원
<방송통신연구> 편집이사,  <언론과 사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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