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호 주필칼럼] 하늘 끝에 닿을 바벨탑을 쌓을 수 없을지라도
[45호 주필칼럼] 하늘 끝에 닿을 바벨탑을 쌓을 수 없을지라도
  • 이창연 주필 장로
  • 승인 2019.03.21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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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 크다.”

2019년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정상 회담이 결렬되고 말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양측 통역까지 배석한 가운데 있었지만 실패했다. 201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토착어의 해’(international year of indigenous languages)다. 하늘에 가 닿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이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는 바벨탑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전 세계가 하나로 묶이고 있는 21세기에 다양한 언어가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워싱턴의 대통령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사고 싶다는 제안을 보내왔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사고 팔수 있다는 말을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저 신선한 공기와 반짝거리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는데, 당신들은 어째서 우리에게 그것을 팔라고 하는가?” 마지막 북미 원주민 추장이었던 시애틀(seattle)이 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설이다.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한 신대륙 정복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 자연과의 공존을 중히 여긴 원주민들의 시각과 정복자의 끝없는 탐욕을 극명하게 대비시켜주는 이 말은, 한 문화의 핵심가치가 고스란히 담긴 그릇으로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북미 원주민 언어에는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이는 원주민들이 마르크스주의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와 물, 땅과 같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자원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믿음이 그들의 말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지역에 흩어져있는 북미 원주민인 쿠터네이(kutenai)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 생물학자 에이프릴 샬로(April Charlo) 박사도 2015년 어느 강연에서 자신이 연구하던 부족 말에 소유권의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느꼈던 것을 피력한바 있다. 샬로 박사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내 언어를 원주민들에게 강요했을 때, 그것이 그들 문화의 본질을 영원히 변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것이 세계각지에서 사라져가는 토착어를 지킬 뿐만 아니라 사라진 언어를 되살려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는 이유라 했다. 2014년부터 전 세계 언어의 공공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는 위키팅 프로젝트(wikitongues, org)에 써있듯 “라틴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불어가 생길 수 없었고, 영어는 고대 색슨어(old saxon)가 사라진 빈자리를 새로 채우며 성장한 언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가 펴낸 ‘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를 보니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230개의 언어가 영구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특히 국경 내에 소수민족이 있는 정부들이 국가통합이라는 명목으로 공용어(national language)를 설정하고, 그 속에 담긴 언어 및 주류집단의 문화를 소수민족에게 강요하는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수많은 원주민 문화와 토착어가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의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고대 마야민족의 후손인 라칸돈(Lacandon)원주민의 언어를 연구하는 제임스 D, 네이션(James D, Nation)박사는 ‘미디엄’에 쓴 자신의 글에서 “숲에 있는 수백 종의 식물과 새, 곤충 이름을 라칸돈어로 줄줄 꿰고 있는 80세 할아버지의 11살 난 손자는 스페인어로 방영되는 디즈니TV를 끼고 살며 곤충 이름대신 라칸돈어에 있지도 않은 헬리콥터나 비행기 이름을 줄줄 외운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라칸돈의 원주민이 카카오, 고무, 아보카도 등의 나무를 활용해 같은 경작지에서 현대농법에 비해 많게는 15년까지 더 오래 수확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는 비법을 밝혀냈다.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 크다.”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에서 나오는 대사다. 민들레홀씨가 널리 퍼져 곳곳마다 꽃을 피우듯, 작은 힘을 모아 우리문화를 지키고 독립을 쟁취하자는 뜻의 이 말은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려는 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70억 인류가 사용하는 7천여 개의 언어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거나 사라져야 마땅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인류가 비록 통일된 언어로 하늘 끝에 닿을 바벨탑을 쌓을 수 없을지라도, 서로 다른 수백 수천가지말로 저마다의 하늘을 아름답게 노래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방송국 재단이사

보성평생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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