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목회모델]최양섭 목사(대죽교회), “교회역사, 교회가 말해야 한다”
[미래세대 목회모델]최양섭 목사(대죽교회), “교회역사, 교회가 말해야 한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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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순교한 김영학 목사를 알리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사회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진행 중이다. 학술대회나 강연회를 통해 3.1운동 역사와 기독교, 3.1운동 정신과 기독교, 3.1운동과 오늘을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발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서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는다.

김영학 목사 순교 86주년인 2018년 12월 20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헌액하고 순교비를 제막할 때, 최양섭 목사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정성경 기자

 

아이들 지역탐방 위해 시작된 역사연구

양양만세운동 주도한 김영학 목사 발굴

‘김영학목사기념사업회’ 발족 

블라디보스토크에 순교자 탐방길 개척

김영학 목사를 발견하다

최양섭 목사(대죽교회)는 양양에서 사역할 당시 양양교회 김영학 목사를 연구해 세상에 알렸던 장본인이다. 최 목사는 ‘일제하 양양지방 독립운동과 기독교인의 역할’이라는 논문에서 김영학 목사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양양지역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가장 큰 지도력과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간성구역장으로 양양교회를 담임하고 물치, 조산, 광정교회를 순행하며 목회한 김영학 목사이다… 1918-1922년 양양교회 목사로 시무할 당시 김 목사는 양양지역의모든 교회를 찾아가 설교하며 신앙을 지도한 것을 보아 그의 항일사상과 애국사상이 교회와 교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1919년 3.1운동으로 인해 국내의 지도급 민족운동 세력들이 일제의 체포로 대부분 투옥되거나 이를 면하기 위해 해외로 망명했다. 이때 국내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단체들이 결성됐는데 그 중 하나가 ‘대한독립 애국단’이다. 1919년 5월 서울에서 결성된 이 단체는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에 도단이 결성되어 임시정부 지원단체로 활동했다. 그해 8월 ‘강원도단’이 결성되는데 ‘양양군단’이 김 목사에 의해 조직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1월 철원에서 대한독립 애국단인 일제에 발각되면서 재판과정까지 신문에서 보도되면서 “철원애국단 사건”으로 불려졌다.

최양섭 목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김영학 목사의 순교행적. 교회 제공

체포된 김 목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삼일만세운동으로 6개월, 애국당사건으로 1년 6개월 도합 2년간 복역했다. 이후 가평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1922년 9월 ‘남감리교 조선연회’에서 시베리아 선교사로 자원하여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 신한촌에 해삼위 구역장으로 파송 받아 가게 됐다. 그곳은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으로 공산국가로 전환하면서 종교탄압이 있었다. 1925년부터 미국인 선교사는 철수를 시작했고 1927년 미국남감리교회 선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서비리아선교를 중단 했다. 그러나 조선남감리교회 한인선교사들은 김영학 목사의 지도하에 그곳에서 복음과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았다. 1929년 핍박에 계속되자 선교사들과 교인 300명이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중국 동홍진으로 탈출하면서 사실상 선교가 중단되고 조선에서 남,북감리교회가 1930년 조선감리교회로 통합되어 서비리아선교연회가 만주선교연회에 통합되었으나 아직도 그 곳에 남아 고난 속에서 “여기에 단 한 사람의 성도라도 남아있다면 어떤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떠날 수 없습니다”라며 끝까지 사역을 완수하고자 했다. 이런 김영학 목사로 인해 공식적 선교중단은 할 수 없었다.

1931년, 김영학 목사는 공산당으로부터 ‘악질반동분자’라는 죄목으로 강제노동10년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북쪽 나강(현,마가단) 노동수용소에서 영하 40-50도의 혹한에서 노동에 강제 동원되어 복역하고 있었다. 1932년 12월 죄수 및 물자이송을 위해 4m 두께의 바다얼음으로 인하여 먼 바다까지 얼음 위 눈을 치우며 갈라진 얼음 틈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 확보를 위해 앞장서 가다가 농가름(얼음틈새)에 걸려 현장에서 순교했다.

1933년 10월 순교한지 1년 뒤에서야 한국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처음으로 경성지방목회자회 이름으로 추도예배가 드려졌다. 정부는 김 목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고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물론 감리교와 지역에서조차 김 목사의 존재를 잊었다가, 최 목사의 연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 논문뿐만 아니라 ‘예수의 복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신 순교자 김영학 목사’라는 책자도 발간했으며, 2015년에는 ‘제자 옥한흠’, ‘잊혀진 가방’을 제작한 김상철 감독과 김 목사에 대한 영화 ‘순교’를 제작 개봉했으며 순교 86주년인 2018년 12월 20일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헌액하고 순교비를 제막을 하였다.

최양섭 목사는 교회 성도들과 어린이들에게 지역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지역문화탐방을 하곤 한다. 지난해에는 성도들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탐방했다. 교회 제공

 

그 시작은 지역문화탐방이었다

속초 조양교회에서 전도사로 첫 사역을 시작한 최 목사는 양양 남부교회에서 목회하며 교회 아이들에게 문화탐방을 시켜주기 위해 지역조사를 시작했다. 지역의 행정부터 유래, 특징, 산업 등을 조사하면서 양양만세운동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양양군에서 발행되는 ‘양주지’를 읽다가 감리교 목회자로 의문점이 생겼다. 1919년 당시 양양교회에 구역장 목사가 있어야 되는데 담임이 전도사로 표기된 것이다. 또한 당시 양양만세운동 상황을 강원도 장관에게 보고하는 보고문에는 ‘야소교를 중심으로 한 수 백명의 무리’라고 적혀 있는 보고가 3건으로, 4월 4일 첫 날과 4월 9일 기사문리 만세의 주도세력이 “야소교도들”로 보고되었으나 지역에서 발간하는 군지에 ‘유림’을 중심으로 기록된 만세운동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졌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최 목사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김영학 목사에 대해 열 줄 이상 기록된 것이 없었을 정도다. 당시 일제의 기록부터, 강원지역 뿐만 아니라 감리교 연회록까지, 5년을 집중 연구한 결과, 김영학 목사의 양양만세운동에 끼친 영향력뿐만 아니라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활동이 드러났다. 그리고 김 목사의 부인 안원정 사모의 자술서를 통해, 김 목사의 7남매 중 살아있는 한 명의 아들과 그의 손주들의 증언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들까지 밝혀지면서 비로소 김 목사의 활동이 논문으로, 책자로, 영화로, 그리고 탐방 주제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최양섭 목사는 "교회가 교회역사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경 기자

현재 이천시 대죽교회로 목회지를 옮긴 최 목사지만, 김 목사에 대한 연구는 놓지 않았다. 2012년부터는 ‘김영학목사기념사업회’를 발족해 ‘순교자 애국지사 김영학 목사 80주기 추도예식’을 시작했다. 또한 올해만 해도 김영학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탐방하는 비전트립을 두 번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신한촌(新韓村)과 우수리스크,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된 라즈돌라 역, 독립투사 이상설 유허비, 안중근의 단지동맹기념비, 고려인문화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기념관, 김영학 목사의 순교지인 마가단 등을 중심으로 양무리마을 이사 및 목회자들 10여명과, 그리고 이천남청년연합회 34명과 함께했다. 탐방 전에는 6주간 역사공부를 선행으로 한다.

최 목사는 신학생 당시에도 역사신학회 활동을 하는 등 특별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가 재밌었다는 최 목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채호 선생 또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현재는 과거로부터 흘러온, 축적되어온 시간으로 사건이나 생활패턴 등으로 이뤄진 집약체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세상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래서 최 목사는 특별히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지역사회에 대한 역사를 탐방을 통해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대죽교회 아이들도 지난 해 강원도 정선을 함께 탐방하며 문화와 역사를 몸소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최 목사는 주일 설교 중에도 시기나 절기에 맞춰 역사적인 사건들을 말씀으로 전한다. “역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시 1.5% 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앞장섰는데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인가. 십자가 없는 자신의 부귀영달의 안녕과 축복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아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영학 목사의 순교가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이나, 현재 우리나라에 20%가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최 목사는 “목회자의 몰역사성과 복음의 변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목회자가 먼저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하게 가르쳐야 한다. 목회자들이 먼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와 교회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또한 성도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만 하다 보니 신앙이 변질되고 수적으로 많아보여도 질적으로 힘이 없는 크리스천들이 양산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진행된 블라디보스토크의 두 번의 비전트립을 통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청년들보다 함께 간 어르신들이 김영학 목사의 순교의 길을 따라 걸으며 ‘내가 그동안 제대로 살았나 생각이 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앞으로도 김영학 목사 추도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림과 동시에 김 목사를 기념할 만한 비전센터를 세우고, 김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비전트립 루트를 개발할 예정이다.

역사 강사로 유명한 설민석 대표가 TV 한 프로그램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를 소개하며, 마지막 34번째 대표로 당시 제암리 학살 사건을 사진으로 찍어 외국에 전했던 스코필드(F. W. Schofield) 선교사를 ‘외국인’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최 목사는 “교회가 확실히 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나?”라며 물었다.

김영학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까지, 지난 2월 이천남청년연합회 34명과 함께한 비전트립. 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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