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무 많이 해서, 무얼 얻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떠들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가 거의 100%이다."
지난 주일(3일)도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갔다. 보통 예배는 찬송가로 마치는데 국경일은 애국가를 부르고 마친다. 100주년 3·1절이 지난 주 금요일이지만 예배시간에 3.1절 설교를 하였다. 설교한 뒤 초대형 모니터 위에 뜬 태극기와 ‘하느님이 보우하사’를 ‘하나님이 보우하사’로 고친 가사를 보면서 애국가 1절을 부른 후 예배를 마쳤다. 그동안 절기 예배, 국경일, 기념일 예배를 하지 않아서 씁쓸했는데 이날은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국민 된 도리로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시간을 봐서 찬송가를 1절이든 2절이든 줄여 부르는 게 옳겠지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국민 된 도리보다는 하나님 나라 백성 된 도리가 먼저이니 교회 법도를 따른 것이 옳다. 또 애국가를 1절만 부르는 게 사회에서도 ‘관례’가 된 지도 오래이기도 하다. 교회에 출석한지 서른 해가 넘지만 이런 일 가지고 설교 시간에 잡생각에서 못 벗어나는 건 여전하다.
‘일 절만 하기’는 꽤 오래전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작된 유행어다. 애국가를 줄여 부르는 데서 비롯했을 터인데, 했던 이야기를 또 하거나 비슷한 말을 다른 이야기인 양 다시 시작하는 친구에게 “얘, 일 절만 해라. 일 절만!” 식으로도 쓰인다. 되바라진 아이들은 부모님이 타이르는 말씀을 잔소리로만 듣고 “아빠 엄마, 제발 일절만 하시라구요. 일 절만”이라고 눈을 파랗게 뜨고 덤벼들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러지는 않았다.) 좋은 유행어는 세대 불문하고 유행하는 법. 요즘에는 나이 지긋한 분도 말 많은 친구에게 “일 절만!”을 당부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상대방의 말을 자를 때 “자, 그건 거기까지!”라고 하는 분도 더러 있는데, 이건 “일 절만!”의 변형이다. 하지만 “일 절만!”이라며 남의 말을 막고는 자기는 3절, 4절까지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일 절만 하기’를 범 국가, 범민족, 범사회 운동으로 추진해야겠다 싶은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같은 이야기를 너무 되풀이해서 너무 시끄럽고 너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무 많이 해서, 무얼 얻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떠들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가 거의 100%이다.
제일 가까운 예가 경남지사 김경수 법정구속에 대한 여당의 반응이다. 판결 불만은 한 번만 말하면 됐지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같은 말을 한다. 그러니 여론이 좋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사안이 법정구속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항소심 판결을 지켜보겠다.” 이 정도로 딱 한 번만 했어도 겁먹을 사람은 겁먹었을 거다. 무슨 뜻에서 그러는지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계속 같은 소리를 옥타브를 높이고 있으니 항소심 판사 겁주는 거 말고도 무슨 다른 속셈이 있지 않나 의심을 사고, 결국에는 자기네 지지율을 떨어트리고 있지 않나, 제1야당 사람들도 청중이 싫어하는 많은 노래를 자주 부르고 있다. 최근은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 같은 말은 일 절도 부르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헌재와 대법원에서 결정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은 자기 잣대로 대지 말고 이 나라 사법부를 믿었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은 여당이 김경수 법정구속을 놓고 헛발질을 해대자 “법원 판결에 그렇게 반대하면 되겠냐”고 하더니 며칠 만에 똑같은 행동을 했다.
이밖에도 일 절만 했으면 좋았을 일이 여야 모두에게 많다. 일일이 다 쓰자니 나에게도 “여보시오, 당신이나 일 절만 하시오”라고 삿대질할 사람이 나오지 않나싶어 그만두겠다. 요즘 젊은이 유행어를 일찍 받아들인 사람들은 “TMI!”라고 소리치겠다. 이건 “Too much information!”을 줄인 거다. 아무튼, 애국가만 빼놓고 일 절만 부르기 운동은 정착돼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예전 어른들이 요즘 세상을 보신다면 “째마리들이 벌이는 찌그렁이 짓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말할 것 같다. 째마리는 ‘사람이나 물건 가운데서 가장 못된 찌꺼기’를 말하는 것이고, 찌그렁이 짓은 ‘남에게 무턱대고 억지로 떼를 쓰는 것’이다. ‘TMI’라고요? 천만의 말씀. 아직 한 마디 더 남았다. 명언 제조기이기도 했던 아인슈타인이 째바리처럼 살지는 말라고 한 명언을 한 번 들어보시라. “약한 자는 복수하고 (Weak people revenge.) 강한 자는 용서하고 (Strong people forgive.) 생각 있는 자는 무시한다.(Intelligence people ignore.)”라는 말을 곱 씹어보시길.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방송국 재단이사
보성평생대학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