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 100년 전 그날의 ‘아우내 장터 봉화’가 재연된다
3.1운동 100주년 - 100년 전 그날의 ‘아우내 장터 봉화’가 재연된다
  • 김성수 기자
  • 승인 2019.02.24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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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봉화재연, 병천 매봉산 인근 24곳 봉우리에서 그날의 봉화가 타오른다
1.3%의 기독교인의 희생,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

아우내 장터와 가까운 매봉산과 인근의 24개 봉우리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100년 전 그 때의 3.1 만세 운동이 오는 28일 재연된다. 28일 오후 3시부터 7시 25분까지 만세운동 체험, 영화상연, 초청공연 등 부대행사가 진행되고, 오후 4시 50분부터 헌화 및 분향을 시작으로 식전행사, 기념사, 봉화탑 점화, 만세삼창, 횃불행진, 불꽃놀이가 저녁 9시까지 이어진다.

3.1운동 100주년 아우네 장터에서 봉화제가 열린다. (천안시 포스터)
3.1운동 100주년 아우내 장터에서 봉화제가 열린다. ㅡ천안시 포스터

100년 전 아우내의 만세 운동은 3월 31일 매봉산의 봉화를 신호로 4월 1일(음력 3월 1일) 정오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4천여명 군중의 함성으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60일 동안 전국적으로 1214회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의 수효는 50만 명에 이른다. 3.1운동은 초기에 기독교계 학교, 기독교와 천도교 등 조직체를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 종교인, 지식인 등이 선도하여 일반 민중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확산 전개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9년 일제의 무단정치와 폭정, 민족의 고결성을 짓밟는 고종 황제 시해 사건으로 촉발된 국권회복운동이 용수철처럼 폭발한 3.1만세운동이 경성과 지방을 잇는 교통 가교지였던 아우내(병천) 장터에서,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40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만세의 함성으로 타올랐다.

경성의 태화관에 모인 민족 대표 33인과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이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모여든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서울을 8개구로 나누어 시가행진을 펼치며 독립선언서를 나눠주고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던 유관순(이화학당 2학년: 공주 영명학교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앨리스 샤프(Alise H. Sharp)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 교사예비과정이었음)은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고 학교가 폐쇄되자, 13일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고향 병천으로 내려와 먼저 부친 유중권과 숙부 유중무에게 경성의 상황을 설명하고, 만세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만난 사람이 진명학교의 김구응 선생이었다.

김구응 선생은 유관순의 오빠 유관옥의 은사였으며, 청신의숙, 장명학교를 거쳐 병천 진명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고, 또한 진명학교를 운영하던 성공회 병천교회는 당시 지역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청년회 활동이 활발하였고, 또한 목천군에는 이 시기 보명학교, 수신학교, 녹동학교, 진명학교, 장명학교, 명진학교, 병진학교 등이 설립되어 매우 활발하게 교육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우네 장터 독립만세 함성의 재연 (2018년도, 천안시)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 함성의 재연 (2018년도, 천안시)

유관순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부녀자처럼 머리에 수건을 쓰고 다니면서 병천(竝川), 목천(木川), 천안(天安), 안성(安城), 진천(鎭川), 청주(淸州)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찾아가서 거사계획을 알렸다. 그리고 거사일로 정한 4월 1일(음력 3월 1일)의 하루 전인 3월 31일 저녁 매봉산에 횃불이 높이 올랐다. 이 횃불이 거사의 신호였다.

매봉산을 중심으로 우각산, 강단산, 백전리 돌산, 세성산, 갓모봉, 봉화대, 개목산 등 일곱 개의 산에서 불길이 솟아올랐으며, 거의 같은 시각에 광덕산, 덕산, 화산, 진천의 덕유산, 구도산, 서림산 동남편의 약사산, 청주방면의 수리봉, 남쪽의 백석봉, 남산, 발산, 망경대, 연기지방의 율산, 서남으로 마산, 장명리의 장산 등 모두 24개소에서 일제히 봉화가 타올랐다.

4월 1일 5일장을 맞아 아우내 장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3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오후 1시쯤에는 4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유관순은 준비한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독립의 당위성을 호소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김구응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행진에 나섰다.

큰 깃발을 들고 조인원이 앞장서고, 유중권, 김구응 선생, 김상헌, 김교선, 조병호 등이 뒤를 따랐다. 2시쯤 총검을 든 헌병들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 공포탄을 쏘며 해산을 종용하였지만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람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김구응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말아 쥐고 앞장서서 나아가며 일제에 대항하자 일본 경찰은 김구응을 향하여 총을 쏘고 쓰러진 김구응의 머리를 총검으로 짓이겨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이 때 김구응 선생의 나이 32세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구응의 어머니 최정철 여사가 달려와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다가 헌병의 멱살을 잡아채며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을 찾겠다고 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꾸짖자 어머니마저 칼로 찔러 죽였다(1920년, 김병조의 대한독립운동사략 76쪽).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만세의 함성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으며, 사람들은 순국자의 시신을 끌어안고 헌병 주제소로 몰려가 투석전이 벌어졌다.

이 날 그 곳에서 죽은 사람이 유관순의 부친 유중권과 모친 이소제를 비롯하여 19명이었으며,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부상당하고, 체포 투옥되었다. 유관순은 주모자로 지목되어 병천 유치소에 10일간 구금되었다가 공주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하여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되었다.

독립만세 전개 모습 환조 (병천 '아우네 독립만세 기념공원')
독립만세 전개 모습 환조 (병천 '아우내 독립만세 기념공원')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 투옥 중에도 갇힌 자들을 주동하여 옥중 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매질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으깨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을 남겼고 심한 고문과 투쟁으로 방광이 터지고, 유방이 파열되는 고통을 겪다가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사망에 이르렀다.

유관순 기념 매봉교회
유관순 기념 매봉교회

당시 조선 땅의 인구는 1700만, 기독교인 수는 30만에 미치지 못하여 전 국민의 2%가 채 되지 않는 적은 수의 믿는 자들이 왜? 어떻게! 생명을 바쳐 민족의 아픔에 참여하였을까? 그것은 민족과 이웃의 고통이 나의 아픔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한 사랑의 실천이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은 교세자랑이나 눈에 보이는 치적이 아니라 민족을 향한 사랑이 아닐까? 유관순을 키워낸 앨리스 샤프가 필요하고,  이소제와 최정철 같은 어머니, 김구응과 유관순 같은 청년, 유중권과 조인원 같은 아버지가 절실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민족의 어두움을 밝히는 봉화로 타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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