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호 주필칼럼] 한철골 박비향(寒徹骨 撲鼻香)
[41호 주필칼럼] 한철골 박비향(寒徹骨 撲鼻香)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19.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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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어야
비로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게 된다."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누군가 내게 보내온 짧은 글이다. 눈[雪]을 눈[目]으로 받아들여 눈이 녹으면 잔혹영화를 많이 보아온 소년은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했고, 산골 대자연에서 살아온 소녀는 눈이 녹으면 꽃이 핀다고 했다. 그렇게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겨울을 생각했다. 겨울을 모르면 봄도 잘 모른다. 중국 남조 양(梁)의 주흥사(周興嗣·470~521)가 지은 천자문에 봄 춘(春)자가 없는 것은 그 지역이 겨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라? 봄은 겨울의 시련과 고난을 거친 뒤에 맞는 계절이다. 한철골 박비향 (寒徹骨 撲鼻香), 매화는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어야 비로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게 된다.

겨울과 밤, 비올 때가 책 읽기에 적당하다는 독서삼여(讀書三餘)도 생각했다. ‘독서가 그러면 문학도 그렇겠지’ 하다가 작년에 국립한글박물관이 개최했던 ‘겨울 문학 여행’ 특별전이 궁금해서 찾아갔었다. 눈이 없는 겨울은 겨울 같지 않다. 우리나라의 132점을 비롯해 총 454점의 겨울문학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이었다. 겨울과 눈이라면 떠올릴 수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이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유종원(柳宗元)의 한시 ‘강설(江雪)’, 백석(白石)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을 요약본 발췌본 등이 나와 있었다. 이효석의 소설 ‘성수부(聖樹賦)’와 ‘벽공무한(碧空無限)’은 특히 눈에 잘 띄게 배치돼 있었다. 고난과 인내, 새로운 희망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들을 공들여 모은 전시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시공간이 작아 아기자기하다기보다 지나치게 오밀조밀하고 군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셋방살이하는 집의 옴치고 뛰기 어려운 부엌이 연상되기도 했다. 작품 선정에도 이의가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다 아는 건 아니고 내가 표준일 수도 없지만, 당연히 낄 법한 작품이 빠져 아쉬웠다. 문학인과 번역자, 주한 7개국 대사관의 자문과 추천을 거쳐 작품을 선정했다는데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푸슈킨의 소설 ‘눈보라’는 눈 때문에 일어난 일을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는 그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목록에 없었다. 주제나 내용이 겨울과 멀지만 눈이나 겨울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이유로 선정된 경우도 많았고. 번역에서도 아쉬운 게 많았다. 많이 알려진 시라면 시를 줄줄 외우는 독자들이 많다. 그런데 친숙하지 않은 번역이 눈에 띄었다. 또 하나, 여느 전시와 마찬가지로 틀린 것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스위스의 시인이자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의 ‘겨울밤’은 ‘숨넘어갈 듯 비명을 토해 내내’라고 돼 있었다. 우리 시조시인 장순하(張諄河)의 ‘고무신’은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全群街道)를 全群假道라고 써놓았다. 주최 측은 각 나라와 지역의 겨울문학에 대해 나름대로 특성과 의미를 규정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일과 감정을 회상하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현실을 깨달으며, 스위스와 독일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가 하면 북유럽에서는 혹한의 겨울이나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문학이 유명하다는 정도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문학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 인류 공통의 감성을 제공하는 겨울이 없거나 밤이 없으면 문학은 성립할 수 없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눈은 그런 예술에 정채(精彩)를 더해주는 하늘의 선물이거나 장치가 아닌가 싶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눈이 내리는데/웬일인가/내 품에 사랑하는 여자가 없네.’ 이런 작품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국(雪國)에는 ‘눈바램’이 있다. ‘설국’은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지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는 ‘눈바램’이란 말이 나온다. 여름에 입는 모시를 눈이 깊숙이 덮인 논이나 밭에 펴 널어 아침햇살이 밝게 내리비칠 때까지 여러 날 동안 바라기를 하는 것이다. 추위 속에 ‘눈바램’한 모시는 찬 기운을 품어 더운 여름에도 살결에 서늘한 촉감을 준다고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문장들은 ‘눈바램’을 한 것같이 서늘하기만 하다. 언제까지라도 찌르는 듯이 맑고 차가운 눈의 냉기를 품고 있다. ‘눈바램’은 늘 차가운 기운을 지닌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 속에서 늘 예수님의 따뜻함을 느껴야 한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방송국 재단이사

보성평생대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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