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교회 시리즈]③양양교회, "성도를 품은 교회, 나라를 품은 성도"
[3.1운동 100주년 기념 교회 시리즈]③양양교회, "성도를 품은 교회, 나라를 품은 성도"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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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로 건축한 양양교회. 정성경 기자
2011년 새로 건축한 양양교회. 정성경 기자

강원도에서 가장 치열했던 양양의 3.1운동

신앙과 민족운동의 중심이었던 교회와 성도

김영학 목사, “예수 잘 믿고 나라를 사랑하라”

조화벽 여사, 버선 속에 ‘독립선언서’ 숨겨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구성사잇길 9에 위치한 양양감리교회(김한구 목사)는 1901년에 로버트 하디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성내리교회라고 불렸던 양양교회는 양양지역의 최초교회로 지역의 복음 전파는 물론 민족운동의 거점역할을 담당했다.

하디 선교사의 신앙과 양양교회

하디 선교사(사진)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캐나다 기독교청년회의 후원으로 1890년 한국에 왔다. 서울, 부산, 원산 등에서 의료선교 사역을 했던 그는 1896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겨 활동했다.

1901년 10월 5일 동해안 중간지점인 양양읍내에 양양교회를 세우고 영동 곳곳에 복음을 전했다. 1903년 8월 24일부터 1주일간 원산에서 선교사 연합기도회를 인도하며 회개기도와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며 성령 충만을 경험했다. 이로 인해 부흥집회가 1904년 2월 개성과 3월 서울 잣골교회로 확대되면서 8월 평양에서 감리교·장로교 선교사 연합기도회 등을 인도했다. 그렇게 진행 된 집회 중 1906년 열린 전도집회에서는 양양교회 5대 교역자였던 김영학 목사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또한 하디 선교사가 시작한 집회는 1907 한국교회 대부흥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양양교회에 그대로 이어져 민족운동으로 발전했다.

양양교회는 1919년 4월 초 양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 운동에 있어 인적, 물적 자원의 거점지였다. 양양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태극기 제작이며 독립선언서 등사와 제반 준비를 인적이 드문 교회 뒷산 상여틀 집에서 제작했으며 그곳이 거사의 모의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곳에서 태극기를 370여장이나 제작하고 일반인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양양만세운동과 김영학 목사, 조화벽 여사

2015년 김상철 감독과 최양섭 목사가 김영학 목사에 대한 이야기로 제작한 영화. '순교' 포스터
2015년 김상철 감독과 최양섭 목사가 김영학 목사에 대한 이야기로 제작한 영화. '순교' 포스터

2007년 강원일보사가 발행한 ‘강원항일사’에 따르면 1919년 서울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 진행에 있어 강원도에서 양양(4월4·5·6·7·8·9일, 5월9일)지역이 규모나 내용에서 도내에서 가장 치열한 곳이었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대중적인 운동이었다는 평가다. 당시 일제의 보고문에는 군내 7면 132동리 중 6면 82동리에서 4,600명이 참가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4월 4일만 해도 운동장소가 3곳, 운동 횟수는 최소한 7회로 군중이 많을 때는 4,000명, 연인원으로 1만 5천명은 넘었을 것으로 본다.

당시 양양교회에는 제5대 교역자였던 김영학 목사가 사역을 하고 있었다. 김 목사에 대한 연구로 논문을 발표한 최양섭 목사(대죽교회, 김영학기념사업회 사무총장)는 김 목사가 전한 “예수 잘 믿고 나라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통해 항일사상과 애국사상이 교회와 교인들에게 영향을 줬을 것으로 봤다. 최 목사는 “1919년 4월 4일 강원도 장관의 보고문에 보면 ‘야소교도를 중심으로 한 수백명의 무리’란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김 목사가 4월 4일 첫 만세운동에 참여해 교인들과 군중들을 지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3.1운동으로 국내 지도급 민족운동 세력들이 대부분 투옥되고, 일제의 체포를 면한 지도자들은 탄압을 피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해외로 망명한다. 3.1운동의 실패로 활동이 더욱 위축된 가운데 국내에서는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단체들이 결성되는데 그 중 하나가 ‘대한독립애국단’이다. 당시 ‘강원도단’이 결성되고 ‘양양군단’에 김 목사가 함께 한다. 그로 인해 김 목사는 1920년 1월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했다. 이후 김 목사는 시베리아에서 독립운동 사역을 끝까지 감당하며 최초 해외선교 순교자가 된다.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억 지사와 결혼한 조화벽 여사. 여성가족부 제공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억 지사와 결혼한 조화벽 여사. 여성가족부 제공

또한 양양군 남문리에서 태어난 조화벽 여사도 양양군 만세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1919년 당시 24세였던 조 여사는 개성에 소재한 호수돈여학교에 재학하면서 선배인 권애라 등 수명의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생으로 조직된 비밀결사 대원으로 참가한다. 3월 3일 개성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임시휴교조치가 내려졌을 때 조 여사는 버선목 솜 속에 독립선언서를 숨겨 바로 귀향해 양양교회 성도들을 주축으로 한 만세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양양만세운동 주동자를 검거하는 상황에서 양구로 피신했다가 공주에 소재한 영명학교 교사가 된다. 여기서 유관순의 두 동생을 맡아 돌보며 유관순의 오빠인 유우석의 옥바라지를 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된다.

우리의 과제, “기억하고 살아내는 것”

1919년 4월 9일 양양군 기사문리에서 1000여명의 군중이 관고개(지금의 만세고개)를 넘어 주재소 앞에 이르러 독립만세를 외칠 때 잠복하고 있던 일제 군경의 무차별 사격에 순국자가 발생했었다. 이곳에 ‘양양 3·1만세운동 유적비’를 세워 그날을 기억한다.

양양읍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이끄는 추상호 대표(한서교육문화재단)는 “양양교회가 양양만세운동의 성지였다”며 대표적인 인물로 김영학 목사와 조화벽 여사를 꼽으며 “종교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군민 모두가 함께한 운동”이라고 평했다.

양양만세운동에 있어 김영학 목사의 위치와 역할을 처음 조명한 최양섭 목사는 김 목사 관련 논문뿐만 아니라 “예수의 복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신 순교자”라는 책자도 발간했다. 최 목사의 조명에 힘입어 2015년에는 ‘제자 옥한흠’, ‘잊혀진 가방’을 제작한 김상철 감독과 김 목사에 대한 영화 ‘순교’를 제작하기도 했다.

양양교회에는 김영학 홀과 조화벽 기도실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위한 곳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재풍 원로 장로는 “우리교회가 양양군 만세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을 잊지 않고 어느 때보다 각성해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며 “이러한 역사와 신앙유산을 잘 전수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양교회에 있는 김영학 홀과 조화벽 기도실. 정성경 기자
양양교회에 있는 김영학 홀과 조화벽 기도실. 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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